여름이면 떠오르는 여름의 맛!
맛이라는 것이 워낙 주관적인 것인지라
백인백색의 각기 다른 대답이 나오기 마련인데요.
한번 맞춰 보시겠어요?
글쓰는 요리사로 유명한 박찬일 셰프는
'여름의 맛'으로 어떤 식재료를 꼽았을까요?
바로바로~
오이~ 오이입니다!
오이의 수분 함량이
등산하는 사람들이 수분 보충용으로 활용할 정도로 높아
여름철 채소로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너무 흔해서 좀 의외죠? ㅎㅎ
하지만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고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글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가
여름의 맛으로 오이를 꼽은 이유...
그것이 알고 싶으시다면~
스크롤 따운~!
맛있는 에세이 - 여름의 맛
오이
비오는 날 부침개가 생각나듯 여름이 오면 늘상 입에 달고 사는 음식이 있다. 땡볕과 더운 바람에 지친 우리의 미각을 깨워줄 뜨겁고 시원한 여름의 맛, 네 가지.
사물은 이름을 획득하면, 형상과 명명이 원래부터 일치되었던 것 같은 기운을 풍기게 마련이다. 토마토는 누가 뭐래도 빨갛고 둥근, 탐스럽고 악마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입술을 쭉 내밀고서 “돼지”라고 발음하면 꿀꿀거리는 그 녀석들의 주둥이가 연상되는 식이다. 그중에서도 드물게 오이는 제 모습에 너무도 걸맞다고 느끼게 되는 채소다.
“오이” 하고 발음하는 순간 청명한 외관과 엽록소의 푸른 맛, 차갑게 이빨 사이에 씹히는 아삭한 촉감이 동시다발로 연상된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태리 말을 잘 발음하지 못했는데, 오이에 해당하는 낱말은 금세 기억해버렸다. “쳇트리올로!” 요리학교 선생은 깜짝 놀라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 녀석. 이 발음을 쉽게 다 하네, 뭐 이런 눈빛이었다.
오이는 요리사들이 몇 가지 칼 기술을 선보일 때 필수적인 채소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가사키의 이자카야에 들렀을 때, 훤히 들여다보이는 주방의 도마에서 나이 지긋한 요리사가 오이를 집어 들었다. 이역에서 온 손님에게 뭔가 보여주려는 듯, 칼을 도마에 대고 오이를 밀어서 굴려 껍질을 까는 신묘한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는 커다란 회칼로 오이의 껍질을 돌려 깎는 기술도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보라는 듯 해치웠다. 그가 말아준 오이와 참치가 들어간 초밥은 아삭거리는 식감과 함께 번쩍이던 회칼이 춤을 추는 장면이 뒤섞여 나가사키의 귀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이는 어려서 서울 변두리 야산을 무대로 놀던 나의 좋은 간식이었다. 칡은 삽이 없으면 캘 수 없었고, 감자는 비려서 날로 먹는 건 힘들었으나, 오이는 언제든 밭주인에게만 들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좋았다. 흰 꽃을 아직 대가리에 달고 있는 어린 오이를 똑똑 따서 개울 바위 밑에 눌러두면 두어 시간 후 딱 먹기 좋게 시원해졌다. 아삭아삭 씹으면 청량한 즙과 새벽의 이슬 매달린 풀냄새 같은 여운이 입안에 가득 찼다.
멋대로 휘어지고 가느다란 몸집의 그런 오이는 보기 참 힘들어졌다. 호박처럼 두툼한 근육질의 오이를 보면, 그래서 더욱 어린 날의 궁색한 오이가 그리워진다.
엄마의 국수에 방점을 찍는 것도 오이였다. 소면을 삶아 펌프물에 헹구고 오이를 씻어 통통통, 썰던 엄마의 도마 소리. 비린 멸치국물을 씻어내는 오이의 향을 맡으면 여름이구나, 자욱한 더위 따위도 그렇게 이겨냈었다. 호사가인 내 친구는 ‘짜장면에 오이를 얹어달라는 마니아 서명운동’이 실제 있다고 얘기했는데, 나는 그게 있다면 기꺼이 펜을 잡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짜장면에 얹어져 있던 오이채를 잘 볼 수 없게 됐다. 짜장면은 영원히 가격 감시의 눈초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야말로 천덕꾸러기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오이 따위를
채 썰어서 얹어주기에는 ‘인건비’가 안 맞는 것일 테지. 짜장면도 ‘자장면’에서 복권되었는데, 오이도 그렇게 되살려주면 안 될까. 오이 애호가로서 나의 작은 소망이다.글을 쓴 박찬일은 이태리에서 요리를 공부했으며, 서울의 몇몇 식당을 거쳐 홍대 앞 이태리식당 <라꼼마> 셰프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 <보통날의 파스타> <어쨌든, 잇태리>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LOHAS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맥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는 무엇일까요?....여름의 맛, '맥주의 마리아주 배틀' (2) | 2012.08.28 |
---|---|
아미산에서 뛰노는 유기농 소와 건강한 우유!!....[산지탐방] 올가 자연방목 유기농 우유 목장 (0) | 2012.08.21 |
한여름, '이토록 뜨겁게 차가운' 보리차의 매력.....보리차 끓이는 법! (0) | 2012.08.09 |
야심한 밤, 올림픽 본방사수로 입과 손이 심심하다면?!...유기농 견과류와 건과일!![품평기] (2) | 2012.08.06 |
'신사의 품격' 부럽지 않은 어느 싱글남의 부엌 (0) | 2012.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