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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신사의 품격' 부럽지 않은 어느 싱글남의 부엌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아시나요?
(어흑; 아쉽게도 올림픽으로 인해 지난주엔 결방이 됐었죠.)

40대에 갓 입문한 싱글남들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인데요.

4명의 남자 주인공들 모두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만큼
그들의 생활 수준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음.. 극중 이정록은 좀 다른 방식으로 성공하긴 했죠~ ㅎㅎ)

사무실, 패션, 자동차, 집...
무엇보다도 
부엌!

잠깐 잠깐 스쳐지나가는 싱글남 4명의 부엌은 정말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ㅎㅎ

남성미 물씬 느껴지는 짙은 컬러의 원목 수납장,
그 위는....무려 대리석으로 마감이 되어 있더군요! 'ㅁ'

윤이 오빠가 임메알을 위해 윗선반에서 내려준 세련된 식기들도,
아일랜드 부엌 위의 그 윗선반들도,
(도대체 그 위의 먼지는 누가 닦으러 올라간단 말입니까!)   
로맨틱한 장면의 조연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_+ 

그곳에서 하는 요리라고는
커피를 내리는 것연인을 위한 스파게티 만들기 정도라 해도
싱글남들의 부엌은 참 멋지고 탐나지 말입니다. ㅎ_ㅎ 

물론 모든 싱글남들의 부엌이
'신사의 품격' 같지는 않겠지요. ㅎㅎ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도
싱글남 특유의 분방한 매력이 넘치는

어느 싱글남의 부엌을 조명해봅니다. 함께 보실까요? :)  

맛있는 에세이 - 부엌
싱글남의 부엌

우리에게 ‘부엌’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당대의 셰프, 기자, 출판편집자, 마케터에게 ‘부엌’이라는 주제를 던졌더니 네 가지 컬러의 미식 에세이가 돌아왔다.

글의 부엌은 극과 극이다. 실용주의와 낭만주의 사이를 격하게 오간다. 잘 생긴 남자를 심하게 좋아하는 스물아홉의 회사 여자 후배가 ‘현재 가장 아끼는 요리도구나 식기가 뭐냐’는 질문에 “집게와 가위! 도마, 칼 안 쓰고 음식 자르기 좋아서”라고 쿨하게 답을 보내왔다.

자들이여, “저런 정서 말라비틀어진 싱글이라니!”라고 비아냥거리지 마시길. 단언컨대 ‘가위 사랑 후배’는 놀 줄 모르는 대부분의 기자들과 달리 틈만 나면 클럽에 달려 가는 춤꾼이고, 가격대비 최고의 맛을 내는 부르고뉴 와인을 찾는 법을 알며, 마음에 드는 남자를 발견하면 과감히 부장에게 거짓말을 하고 저녁 야근을 도망쳐 나올 줄 아는 멋진 후배다. 제법 할 줄 아는 요리 가짓수도 꽤 된다.

지만 지드래곤이라고 침대에서 팬티와 런닝과 헤드셋을 ‘깔맞춤’ 하겠나? 아무리 작은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늦은 저녁 혼자 배고플 땐 앞뒤 가리지 않고 그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주린 배를 채울 방법만 고민하게 된다. 아무리 멋진 요리를 만들어도 그걸 같이 먹어주고 그 노력을 인정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면, 미슐랭 3스타 셰프도 햄버거를 주문하지 않겠냐는 거다.

2010년 9월, 아직 정치부에 있던 시절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방출장을 다녔다. 가을바람이 불자 어머니가 해주신 고추장아찌가 몹시 그리웠다. 9월 1일, 간장을 끓여 청양고추에 부었다. 그렇게 1차 발효한 고추장아찌의 간장을 따라낸 다음 한번 더 끓여 다시 냄비에 부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은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9월 13일 새벽, 헐레벌떡 들어와 뚜껑을 열었다. 젓가락으로 통통한 고추를 건지는 순간, 좁쌀 같은 게 꾸물거렸다. 잘 익고 있었던 건 청양고추가 아니라 구더기였다. 묘하게도 그때 처음 든 생각은 고추장아찌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싱글남이 고추장아찌를 만들다 실패했다는, 나름 절절한 사연을 옆에서 지켜봐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마음을 더 서늘하게 했던 것 같다.

쯤 되면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키가 <스토리>에서 썼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시체를 목격한 일은 잊힐 수도 있겠지만, 햄릿의 죽음은 영원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에 의해 형식화되지 않은 인생 그 자체는 혼란스러운 경험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길거리 프랜차이즈 빵은 잊힐 수도 있겠지만, <제빵왕 김탁구>는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리는 생존을 위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흡입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아무도 없을 때 싱글남의 부엌은 오로지 저 건조한 목적에 복무한다. 싱글남의 부엌이 화려해지고 식탁에 숨겨둔 와인잔이 올라가며 ‘가위 사랑 후배’가 기꺼이 손에 올리브유를 묻히는 일은 애인을 집으로 초대해 그 남자에게 요리를 해주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때이다. 로버트 맥키식으로 말하면, 스토리가 만들어질 때 요리는 흡입행위를 넘어선다. 스토리의 주인공이 매번 달라지는 것 또한, 싱글의 특권이다.

글을 쓴 고나무는 <한겨레> 주말 섹션 esc에서 음식 기사를 썼다. 기사 쓰기가 재미있을 수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사람들의 스토리에 더 끌린다. 2011년 맥주를 소재로 한 첫 책 <인생, 이맛이다> (해냄)를 펴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