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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맛있는 에세이 - 오, 나의 가난한 부엌

맛있는 에세이 1편
알베르토 할아버지의 부엌편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보러가기] 

토스카나의 햇빛과 조리 열기 속에 느껴지는
맛있는 냄새, 그리고 재료가 익어가는 소리...

작지만 생기 넘치는 알베르토 할아버지의 부엌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봐도 뭔가 따뜻함이 가득한듯 합니다.

이번 에세이는 주부님들이라면 뭔가 공감할 듯한 내용인데요.

스무살부터 꿈꿔왔던 혼자살기의 로망을 중국 유학을 통해 이룬 그녀.
손에 물 안묻히고 사는 날이 또 올까 싶어
요리를 하는 대식 학교밥으로 끼니
를 때우곤 했다는데요.

결국 그녀는 손에 물을 묻히게 되었을까요?
아니면 그녀의 바람대로 '요리로부터의 해방'을 이뤘을까요?

그 결과가 궁금하시다면~!

지금부터 이어지는 맛있는 에세이 - 부엌의 두번째 이야기
<오, 나의 가난한 부엌>편을 읽어~ 보시죠!


맛있는 에세이 - 부엌
오, 나의 가난한 부엌

우리에게 ‘부엌’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당대의 셰프, 기자, 출판편집자, 마케터에게 ‘부엌’이라는 주제를 던졌더니 네 가지 컬러의 미식 에세이가 돌아왔다.


무 살부터 꿈꿔온 혼자 살기의 로망은 내 나이 마흔 한 살, 상하이 한 대학의 외국 학생 기숙사에서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첫날, 수속을 밟고, 짐정리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반나절을 뛰어다니다가 한숨 돌리려 침대에 기대어 앉자 그제야 뒤늦은 허기가 몰려왔다. 시계를 보니 밥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고, 순간 나는 정말 혼자임을 실감했다.

상에, 밥 때가 되어도 밥 달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퀴즈!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밥은? 물론 남이 해주는 밥이다. 김훈은 일찍이 죽을 때 까지 때가 되면 먹어야 하는 그 진저리나는 밥 때문에, 역시나 벗어날 수 없는 <밥벌이의 지겨움>에 비통해 했지만, 지겹기로 말하자면 밥하기도 밥벌이 못지않다.

팔자에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는 날이 언제 또 올까 싶어, 첫 학기 동안은 냄비 하나 안 사고 잘도 버텼다. 중국 친구들처럼 아침엔 비닐봉지에 든 빠오즈(중국식 만두) 물고 수업 들어가고, 저녁엔 밥 위에 이 반찬 저 반찬 마구 섞어 올리는 학교 식당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정말 못 먹겠다 싶을 때는 패스트푸드와 칭다오 맥주로 저녁을 대신했다.

제는 두 번째 학기부터였다. 방학 동안 먹은 집밥 때문인지, 사먹는 밥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때마침 귀국하는 후배가 한국산 압력밥솥을 주고 가기에 제대로 된 밥이라도 먹자 싶어 부엌 출입을 시작했다. 기숙사 부엌은 말이 부엌이지 둘이 서면 더 들어설 곳도 없이 손바닥만 한데다, 공용 냉장고, 개수대, 전기를 꼽아 사용하는 핫플레이트 두 대가 살림의 전부였다. 게다가 두 층에 하나씩 있기 때문에 밥 한번 하려면 냄비부터 생수까지 모두 챙겨 들고 계단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다. 하지만 여러 나라 말과 냄새가 뒤섞인 그곳에선 묘한 활기가 느껴졌다. “와 냄새 좋은데? 재료가 뭐야?” 옆에서 끓고 있는 냄비에 참견하며 낯선 음식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려한 솔로로의 복귀를 꿈꾸었으나 실상은 대부분 단조롭고, 때로 외로운 늙은 유학생 생활에 요리는 중요한 오락거리가 되었다. 도구라야 압력밥솥과 냄비 하나뿐이었지만 못하는 요리가 없었다. 동지에는 생전 처음 끓인 팥죽을 같은 층 친구들에게 돌렸다. 새알심 만들고 남은 찹쌀가루와 대추로는 화전을 부쳤다. 미식의 욕망은 끝이 없는 법. 어느 날, 외국인들이 주로 가는 바에서 처음 마셔 본 따뜻한 와인 칵테일 ‘뱅쇼’가 미치게 마시고 싶었다. 레몬껍질, 팔각, 시나몬, 설탕, 그리고 와인, 재료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팔각, 시나몬이야 중국 요리에 빠지지 않는 향신료라 싸구려 와인 한 병만 준비하면 끝. 찌개 끓이던 냄비에 와인 덥히려니 좀 찝찝하긴 했지만 맛은 바에서 마신 것 못지않았다.

난해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밥벌이와 밥하기의 세계로 다시 복귀했다. 그리고 동지 팥죽도, 뱅쇼도 맛보지 못하고 겨울을 보냈다. 그러면서 때때로 나의 가난한 부엌이 그리웠다. 함께 요리하고 기쁘게 나누던 그 친구들까지.

글을 쓴 김수희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성지의 기자와 단행본 편집자로 일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다시 한 번 학창 시절을 보내는 행운을 누렸다. 현재 풀무원 식품 마케팅 본부, 커뮤니케이션 이노베이션팀의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