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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여러분은 어떤 부엌을 꿈꾸시나요?....셰프의 부엌을 엿보다

며칠전에 포스팅했던
부엌 에 대한 소박한 에세이,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D  

당신의 부엌은 어떤 모습입니까?...알베르토 할아버지의 부엌 이야기

고양이와 단둘이 사는 이탈리아 독신 할아버지의 부엌은,
노란 알전구처럼 따뜻했다, 라고 필자는 고백했었죠.
하루 종일 햇빛이 가득 차올라
부엌의 모든 냄비와 그릇, 나무 도마에서 햇빛이 일렁거려서
요리에도 햇빛 향이 밸 정도로 따뜻하고 환했던 그 부엌. 크.. >.<  

여러분은 어떤 부엌을 원하시나요? 
여러분이 꿈꾸는 부엌은, 어떤 모습인가요?


오늘 소개해드릴 부엌은,
알베르토 할아버지의 부엌과는 약간 대조적인,
그러나 많은 분들이 '부엌에 대한 로망' 을 꿈꿀 때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 반사적으로 떠올릴 법한 부엌입니다. ㅎ_ㅎ 

바로, 셰프의 부엌이죠. 후후...

모든 조리도구가 빼곡히 정리되어 있고
수많은 스탭들을 거느리고
뜨거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사이로 
긴급한 오더가 날아다니는 살아있는 공간!  
각종 드라마나 영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본
셰프의 부엌을 슬며시 떠올리면서, +_+

박찬일 셰프가 단숨에 적어내려간
'셰프의 부엌' 에 대한 작은 고백에 귀를 기울여보실까요? ^ ^ 

(왠지 '단숨에' 적으셨을 것 같은 느낌~)

맛있는 에세이 - 부엌
셰프의 부엌

우리에게 ‘부엌’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당대의 셰프, 기자, 출판편집자, 마케터에게 ‘부엌’이라는 주제를 던졌더니 네 가지 컬러의 미식 에세이가 돌아왔다.

왕이면 음식 맛있다는 칭찬을 해주면 좋으련만, 손님들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은 따로 있다. “와! 부엌이 참 넓군요.” 이런 말을 들으면 송구하기까지 하다. 월세 비싼 서울에서 식당을 하면서 부엌과 홀의 너비가 비슷하니까 말이다.

리사라면 잠실운동장처럼 넓은 부엌에 대한 로망이 있다. 이태리에 있을 때,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행복했다. 주로 땅값 걱정 없는 시골에 있는 식당들을 전전한 터라 부엌에서 족구 한 판을 해도 될 지경이었다. 주방장이 나를 부르기 위해 메가폰을 써야 할 때도 있었다. “로베르또! 어디 있나? 응답하라!” 물론 농담이지만, 전혀 새빨간 거짓말도 아니다. 말썽부리는 파스타 담당이 숨어버리면 거짓말 좀 보태서 찾는 데 이삼십 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귀국해 청담동의 한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아아- 그야말로 장기수의 고통을 몸소 느껴야 했다. 한여름, 시뻘건 숯이 이글거리는 그릴은 700~800℃ 정도로 불타오르고, 오븐은 저대로 잔뜩 흥분해 벌겋게 온도를 올리고 있는 곳에서 7~8명의 요리사가 등을 맞붙이고 일을 했다. 땀에 흠뻑 젖은 요리복을 서로 맞붙이고 일하는데, 가끔은 그 옷의 등판이 서로 들러붙기도 했다.

뉴욕만큼은 아니지만 그렇게 좁고 더운 곳에서 일하다가 그릴 담당은 간혹 넋을 놓기도 했다.“형, 내가 지금 돼지를 굽는지 내 팔뚝을 굽는지 모르겠어.” 그래, 네 팔뚝 맞다. 그의 전완근은 순전히 고기 뒤집기에서 단련되었는데, 부숭부숭한 털이 치솟는 숯불에 그을려 머리카락 타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흔히 직업적인 부엌을 군대 같다고 표현한다. 엄격한 위계질서(국자로 머리통을 얻어맞거나)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그거, 망친 놈이 다 X먹어) 따위 때문일 것이다. 그것만도 아닌 다른 무엇이 있는데, 바로 좁은 면적도 그렇다. “군대 부엌은 넓지 않아요?”라고 묻진 마시라.

바로  해군 잠수함 부엌을 말하는 것이다. 잠수함의 부엌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영화에서 몇 장면을 본 적은 있다. 걸작인 <특전 유보트(1981)> 라는 독일 영화에서 잠깐 나온다. 희한하게도 천장에 걸어 놓은 살라미 소시지가 흔들거리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최대한 덩치를 줄여야 하는 잠수함의 특성상 콤팩트한 설계는 기본이다. 부엌은 최대한 다단식으로 효율적으로 꾸며지기 마련이다. 이 잠수함의 부엌을 흉내 내는 것이 도심지 식당의 설계자들이다. 냉장고는 삼사단으로 꾸며져 손만 뻗으면 즉시 재료를 꺼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모든 소스와 양념은 손아귀에 착착 들어오는 위치에 놓는다. 모든 동선의 최대 효율을 고려한 테일러리즘의 완벽한 구현이다. 그런 곳에서 요리사들은 요리가 아니라 생산을 한다. 주문이 쏟아지는 피크타임에 요리사들은 무아지경에 빠져 그야말로 요리를 ‘조립’한다.

높은 이익을 포기하고 넓은 부엌을 만들고 나니 요리사들이 신이 났다. 생산이나 조립 대신 요리를 한다. 그렇다. 우리는 요리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닌가. 그걸 알게 된 것이다. 우리 부엌에서는 그래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글을 쓴 박찬일은 이태리에서 요리를 공부했으며, 서울의 몇몇 식당을 거쳐 지금은 홍대 앞 이태리식당 <라꼼마> 셰프로 일한다. 지은 책으로 <보통날의 파스타> <어쨌든 잇태리> 등이 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