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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당신은 부엌은 어떤 모습입니까?....알베르토 할아버지의 부엌 이야기

풀사이 가족 여러분, '부엌'을 보면
어떤 추억이 떠오르시나요?

난생 처음, 된장찌개를 끓이며 두근거렸던 기억? 
힘들고 지치지만 
제비새끼처럼 입 벌리고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에
힘차게 가스렌지 불을 켜던 기억? 

멋들어지게 볶음 요리를 시도했다가
화르륵- 솟아오른 불길에 초가삼간 태울까 화들짝- 놀랐던 기억?
요리 하는 엄마 뒤에 앉아 재잘재잘 수다를 떨던 기억? 

부엌에서 차려낸 수많은 밥상만큼
부엌에 얽힌 수많은 추억을 갖고 계실 텐데요. :)

이렇게 '부엌'이라는 공간에 얽힌 이야기들을
셰프, 기자, 출판편집자, 마케터 등
다양한 직업군의 필자들이 풀어냈습니다.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맛있는 에세이' 라는 코너에 실린
총 4편의 에세이를 앞으로 소개해드릴 텐데요.

각양각색, 부엌에 얽힌 추억과 감회를 읽어보시면서
우리 풀사이 가족 여러분도 우리의 부엌을
정감어린 시선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
(풀반장도 부엌 청소하러 고고- 읭?)


오늘은 
첫번째 이야기,
<알베르토 할아버지의 부엌>편
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맛있는 에세이
알베르토 할아버지의 부엌 

우리에게 ‘부엌’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당대의 셰프, 기자, 출판편집자, 마케터에게 ‘부엌’이라는 주제를 던졌더니 네 가지 컬러의 미식 에세이가 돌아왔다.


베르토 할아버지의 부엌은 노란 알전구처럼 따뜻했다. 하루 종일 햇빛이 가득 차올라 부엌의 모든 냄비와 그릇, 나무 도마에서 햇빛이 일렁거려서 요리에도 햇빛 향이 밸 정도로 따뜻하고 환했던 그 부엌. 처음 그곳에 들어갔을 때, ‘만약 부엌의 이상향이라는 것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라고 혼자 단정했었다. 일흔이 훌쩍 넘으신데다 5년 전 부인을 잃고 아들과 딸은 독립해서 고양이 ‘템페스트라’와 단둘이 사는, 이를테면 독거노인의 부엌은 항상 음식 냄새와 햇빛이 가득했다.

베르토는 내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난 할아버지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도시 피렌체에서 한 20분 정도 구불구불한 언덕을 오르면 토스카나의 상징인 연필같이 생긴 사이프러스 나무가 펼쳐지면서 올리브 나무들이 그득한 할아버지의 작은 집이 나온다. 경마 선수와 첼로 연주가로 살았던 그는 20년 전부터 그 땅에 올리브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첼로를 켜는 올리브 농사꾼으로 살고 있다. 그의 집에 우연히 처음 들렀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은 부엌에서 솔솔 새어나오고 있는 음식 냄새였다. 찌그러진 냄비들은 겹겹이 벽을 덮고 조리 기구들은 몇 개의 팟에 가득하게 꽂혀 있고, 천정에는 마늘과 고추가 주렁주렁, 두 개의 장에는 엄청난 양의 접시와 그릇들이 쌓여 있어서 ‘이상한 나라의 폴’처럼 어떤 구멍을 통해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친구가 된 나는 다음 여행 때 그의 집에서 열흘간 머물며 그 부엌에서 요리를 배우고 함께 만들면서 할아버지가 한 끼 한 끼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그걸 즐기면서 먹는지 를 알게 되었다.

“프레스토, 프레스토, 안단테, 안단테. 빠르게 해야 하는 요리는 되도록 재빠르게, 시간이 필요한 요리는 서두르지 말고 최대한 느리게. 심플할수록 가장 멋진 요리가 되지. 인생처럼, 음악처럼.”

할아버지의 요리 원칙은 분명하고도 쉽고 위트가 넘쳐서 나같은 요리맹추도 요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좁고 깊은 냄비에는 파스타가 삶기고, 넓고 두꺼운 냄비에는 나무 주걱으로 스윽스윽 소스가 저어지고, 양푼처럼 커다란 볼에 담긴 채소는 마지막 순간 할아버지가 직접 짠 올리브 오일에 서걱서걱 섞이고…, 이 모든 과정은 10분이면 끝. 그 10분간 부엌에는 토스카나의 햇빛과 조리 열기와 맛있는 냄새와 재료들끼리 익고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여 과장해서 말하면 맛있는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침에는 에스프레소 향이 가득하고, 저녁에는 길고 느리게 완성되는 만찬이 있던 알베르토 할아버지의 부엌. 그리고 그 부엌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햇빛. 난 그 부엌과 햇빛을 엄마의 젖무덤처럼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글을 쓴 김은주는 <디자인하우스>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입으로 먹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글로 읽는음식에도 군침을 뚝뚝 흘리는 다독가이자 다식가이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