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월,
늦겨울의 꽃피는 봄을 시샘하듯
꽃샘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봄 분위기가 나는 것 같네요.
이제 봄 꽃들이 매력을 뽐내는 시기가 오면
우리 마음은 흩날리는 꽃잎처럼 살랑~살랑~
겨우내 잠들어 있다가
3월의 따뜻한 햇살을 찾아
만개한 봄꽃처럼
맛을 뽐내는 제철 식재료들이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봄.
제철 벚굴,
제철 도다리,
통통한 멸치....
전국 각지에 퍼져있는
봄의 식재료들을 찾아
한번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우선 오늘은
풀반장이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
[미식유람] 벌써 기다려지는 봄 밥상
본업은 여행작가인데 어찌된 일인지 TV나 라디오에서는 주로 먹는 이야기를 한다. <식당 골라주는 남자>의 저자 노중훈 작가가 때마다 보내오는 미식유람기. 허름하고 오래되고 정겨운 식당들이 자주 등장할 예정이다.
길고 길었던 겨울도 끝물이다. 꽃샘추위의 시샘은 있겠지만 머지않아 봄꽃이 앞다퉈 망울을 터뜨릴 것이고, 화신은 서서히 북상할 것이다. 이미 남쪽 지방의 공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봄이 기다려지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봄 밥상’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역시 제철 음식의 맛이 빼어난 법이다.
봄 햇살처럼 부드러운 ‘벚굴’
서울 연희동의 ‘카덴’이란 일식집을 자주 찾는다. 회도 좋고, 튀김도 잘하고, 탕도 준수하다. 카덴을 책임지는 정호영 셰프는 봄이 되면 자신의 SNS에 “강굴을 시작한다”는 귀한 정보를 올려놓는다. 강굴은 민물과 짠물이 몸을 섞는 섬진강 하구에 주로 서식한다.
벚꽃 필 때 가장 맛이 좋다고 해서, 또는 입을 벌린 모습이 벚꽃처럼 하얗고 아름답다 해서 벚굴이란 별칭이 붙었다. 일반 굴보다 몸집도 크고 영양가도 훨씬 높다. 바다 굴보다 덜 짜고 덜 비린 벚굴은 봄 햇살처럼 부드럽고 봄나물처럼 산뜻하다. 보통 4월 말까지 채취하는 ‘한정 상품’이라 그런지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통영의 봄맞이 메뉴 ‘도다리쑥국’
해산물이 풍성한 경남 통영에는 회와 밥을 함께 내어주는 식당이 있다. 부산에도 이런 식의 회백반을 판매하는 곳이 더러 있기는 하다. 항남동의 ‘수정식당’에서 회정식을 주문하면 공깃밥과 밑반찬 몇 가지가 먼저 놓인 다음 광어회, 농어회, 멍게가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물론 철마다 다른 횟감을 사용한다. 혼자 먹기에 양도 섭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숙성회가 뿜어내는 감칠맛이 도드라진다. 복국이나 도다리쑥국 같은 국물도 공깃밥 옆에 마련해준다. 이 모든 게 단돈 만 원이다. 도다리쑥국은 그야말로 봄맞이 메뉴이다.
도다리의 살은 위태로울 정도로 노글노글하고, 섬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쑥은 투명한 국물 속에서도 진한 향을 풍긴다. 봄빛을 닮은 개운한 국물이 몸속을 파고들면 어제 마신 술이 남김없이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다. 식당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통영에서는 5월 초까지 도다리쑥국을 먹어요. 이후에는 도다리에 기름이 많이 올라 보통 회로 먹죠”라고 입을 모았다.
갓 잡은 봄 멸치로 푸짐하게 한 쌈, ‘멸치쌈밥’
연중 때를 가리지 않고 밥상에 오르는 멸치에 따로 알맞은 시절이 있을까마는, 이 칼슘 덩어리에도 제철은 있다. 바로 3월부터 5월까지다. 이때가 어획량이 풍부하고 맛과 영양이 월등하다. 가을 멸치는 크기가 작아 주로 말려 먹는데 비해 어른 손가락 굵기만 한 봄 멸치는 회를 뜨거나 구워 먹어야 제격이다.
갓 잡은 생멸치를 미나리, 양파, 청양고추 등과 함께 초고추장에 비벼내는 멸치회무침은 비린내가 전혀 없고 달착지근한 맛이 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무난하다. 우거지를 듬뿍 넣고 바특하게 끓인 멸치를 상추에 싸서 먹는 멸치쌈밥도 인기 상종가다. 한 쌈 푸짐하게 밀어 넣는 순간,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작은 멸치 떼가 풍기는 힘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경남 남해군에는 멸치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이 많지만 삼동면의 ‘우리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미더덕이 주인공 되는 회, 덮밥, 된장국, 찜
창원시 진동면 고현리는 미더덕 양식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전국 생산량의 70% 정도를 담당한다. 실제 양식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1999년 이전까지는 굴 양식에 방해된다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미더덕이지만 지금은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리는 효자 상품이자 봄을 알리는 맛의 전령사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3월부터 맛이 들기 시작해 4~5월 절정에 달한다. 4월, 마을에서는 미더덕 축제도 열린다. 미더덕 껍질을 까는 일은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안쪽 막을 터트리지 않은 채 꽃잎처럼 얇은 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강철로 만든 짧고 날카로운 전용 칼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마을 주민들은 미더덕 철이 되면 하루 10시간씩 이 고단한 작업을 해낸다. 봄철 고현리의 ‘청용횟집’을 찾았다면 당연히 미더덕을 이용한 회, 덮밥, 된장국, 전 등을 청해야 한다. 만년 조연이 아니라 당당한 주인공 역할이다. 미더덕회는 멍게보다 향이 진하지 않고 성게보다 느끼하지 않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멍게의 향이 혈기 왕성한 20대라면 은은하고 잔잔하게 퍼지는 미더덕 향은 원숙한 40~50대에 비유할 수 있다. 어금니 위에서 와그작거리며 부서지는 미더덕 소리는 듣는 사람의 귀를 세차게 자극한다.
곱게 다진 생미더덕에 오이, 김, 달걀지단 등의 고명이 가세한 비빔밥은 양념장 없이도 촉촉하게 비벼진다. 방송 촬영 덕분이긴 하지만 메뉴판에 없는 미더덕찜도 먹어봤다. 고사리, 콩나물, 파, 양파, 당근, 마늘에 손질한 미더덕을 올려 살짝 쪄낸 다음 들깻가루와 쌀가루를 더하면 완성된다.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해먹던 음식이다. 횟집 주인장이 할머니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데, 언제까지 명맥이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촬영협조. 수정식당(055-644-0396), 우리식당(055-867-0074), 청용횟집(055-271-3515), 카덴(02-337-6360).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노중훈은 여행 칼럼니스트다. 대학교 졸업 이후 가장 자주, 가장 많이 한 ‘업무’는 출장과 원고 마감이다. 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진행하고 있다.
ㅣ본 컨텐츠는 풀무원 웹진 <자연을담는큰그릇[링크]>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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