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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옥 기자의 딸아이 아토피 극복기1] "누나 기자 맞아?"

2007년 굿바이 아토피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포스트로
2월 한달 동안 총 8회에 걸쳐
매일경제 채경옥 기자의 딸아이 아토피 극복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연재될 내용은 풀무원의 웹진인 e-자연을담는큰그릇의
봄, 여름, 가을, 겨울호에 게재가 되었던 내용입니다.

채경옥 기자가 아이의 아토피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아토피에 좋은 식습관, 간단한 대처법, 그리고 근본적인 습관 바꾸기 등
아토피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들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나 기자 맞아? 저거 아토피 평생 안 낫는데…”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아주 기초적인
아토피 상식조차 없는 경우가 많
.
우리 큰아이(이제 여덟살이다)가 아토피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내용조차 어떤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연재를 결심했다.

 

왜 갑자기 내 아이가?

아이가 아토피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엄마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가 아토피 증상을 보이는 것은 태어난 후 돌이 되기 전 무렵이 대부분이라
은 엄마들이 태열 혹은 아토피 증상이 나타나면이게 오래가면 어떡하나라는 생각
먼저 하는 것 같다. (태열은)제 발로 흙을 밟기 시작하면 낫는다는 옛말에 기대
를 거는 셈이다.

 

나의 경우 큰아이가 다섯살일 때 급작스럽게 아토피가 발현됐기 때문에 더 당황스러웠다.
남동생이 우리 아이 얼굴을 보고얘 혹시 아토피 아냐?”라고 물었던 그
순간까지
아토피란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탐문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피부과와 한의원을
다니면서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왜 갑자기 다섯살이나 된 아이가
아토피 증상을 보이는 걸까.”라는 의문이었다.

 

미국 피부과의 첫 처방

우선 든 생각은 미국과 한국에서의 환경 차이였다.

큰아이는 네살 때(정확하게는 44개월)이던 2002년 12월 18 엄마, 아빠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어바인로 이주했다.
회사에서 연수 기회가 생겨
온 가족이 1년 휴가 삼아 떠난 셈이었다.

 

어바인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학군 좋기로 소문난 곳이어서 한국인들이 많이
이주해
오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바다에서 멀지 않아
여름에도 27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 쾌적한 곳이었다.
(LA
의 경우 여름에 38~39도가 예사고 같은 오렌지
카운티 내에서도
풀러턴 같은 곳은 41~43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살면서 큰아이와 함께 주로 했던 것은 물놀이였다.
아파트 내에 올림픽 수영장
사이즈의 수영장이 세곳 있었는데
바닷물과 민물을 섞어 물을 관리한다고 했다.
아이와 나는 5월부터 11월까지 거의 매일 수영장에 살다시피 했고
바다에서도 곧
잘 놀았다.

 

겨드랑이 밑의 건선 증상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과 잦은 물놀이 탓이었을까. 아토피가 발현하기 전에
이의 피부는 사실 많이 거칠어지고 건조해졌다.
아토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만큼 피부에 무관심했던 엄마 탓에
물놀이 전후에 로션 등 보습을 해준 적도 없고
썬크림 정도 발라준 게 고작이었다.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인 2003 1월경 아이는 겨드랑이 밑 옆구리에 건선 증상을 보였다.
미국에서 피부과에 갔지만 별것 아니라며 유써린 크림(바셀린과 비슷한데
약간 업
그레이드된 제품)을 처방해줬다.
아이의 건조해진 피부에 유써린 크림을 발라주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정말무지그 자체였다.


1
3개월 간의 미국 체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말 그대로 고행 그 자
체였다.
갓 태어난 둘째(불과 생후 40일짜리)를 안고 큰애를 앞세워서 부모님(나의
산후조리를
돕기 위해 친정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미국에 오셨었다.)을 모시고 오는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글/채경옥(매일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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