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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인생의 쓴맛과 아메리카노, 그리고 뜨거운 초콜릿.....맛에 대한 에세이

커피 좋아하시나요?

뭐 요즘 '아이러브커피'라는 소셜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물음은 의미가 없는 것이겠죠? ㅎㅎ

다들 좋아하는 커피지만
그 이유와 좋아하는 커피 종류는 모두 제각각!

하지만 정작 커피 특유의 쓴맛이 좋아서 먹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하네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 풀사이 가족분들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그러고보면 달달한 초콜릿도 커피와 참 닮아 있습니다.
초콜릿의 원료이기도한 카카오가 70%가 넘어가면
이미 그건 단맛 보다는 쓴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되니까요~

단맛을 느끼기 위한 쓴맛이라고나 할까요? ㅎㅎ

초콜릿에서 커피를 배우고
커피에서 인생을 배웠다는 패션디렉터가 남긴
커피에 대한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입안의 네 가지 맛
아메리카노와 뜨거운 초콜릿

우리의 혀에 즐거움과 놀라움을 가져다주는 미각 중 쓴맛과 단맛에 대한 짧은 글.     



나는 오랫동안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판기 커피나 커피 믹스처럼 가장 대중적인 것부터 커피 애호가들에게나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무수한 고급 커피들까지, 그렇게 천차만별의 풍미로 다양한 취향을 담아내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지만, 내게는 도무지 아무런 매력으로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질 좋은 녹차에 끌릴 때가 더 많았다.  갖가지 품질 좋은 허브 티들도 항상 나의 휴식과 함께하곤 했다.   담백하거나 상냥한 음료들에 비하면 내게 커피란 솔직히 그 쓴맛에 ‘적응을 요하는’ 조금은 불친절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왔었다. 

때문에 국내에서 커피 문화와 시장의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커피 문외한에 가깝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전혀 불편하거나 불만스럽지도 않다. 커피에 관한 한 ‘커피 한 잔 마시는데 무슨 수식이 그렇게 많아야 할까’라는 다소 투박한 정서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어쨌거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던 내가 지금은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아니면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좀 힘들게 되었다.
사정인즉슨 이렇다. 작년 10월 홍콩 침사추이의 한 작고 어두운 바에서 마셨던 ‘70% 카카오’라는 이름의 뜨거운 초콜릿 음료가 나를 쓴맛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음료라기보다는 한약의 그것처럼 원액에 가까운, 지독하게도 깊은 단맛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쓴맛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중요한 인터뷰의 녹취를 실수로 다 날리고 무척이나 의기소침한 상태였는데, 그 기분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목으로 넘기는 것조차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던 그 단맛의 음료는 그보다 더 오래 전 밀라노 출장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 도피오의 맛과 거의 일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랬다. ‘단맛과 쓴맛은 하나’라고. 사람의 감각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 모양인지 그 맛들은 이런 공감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고, 단맛과 쓴맛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지금은 ‘내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드러내기 위해 모두가 핏대를 세우는 세상이지만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는 누구나 외롭고 누구나 똑같이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달다고 생각하는 맛이 사실 가장 쓴맛일 수 있는 거다.

겉으로 보아 아무 문제도 없고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위기의 때일 수 있음을 아는 것, 그로 인해 다만 살아 있음에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가슴 깊이 감사하며 매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의 ‘단맛’을 제대로 누리게 해주는 ‘쓴맛’의 역할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른 아침마다 진하고 씁쓸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잠을 깨우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몸도 정신도 깨어 있자. 오늘도 파이팅!’

글을 쓴 강정민은 럭셔리 쇼핑 매거진 <에비뉴엘>의 패션 디렉터이다. 매달 ‘럭셔리’한 세계를 탐구하고 독자들에게 친절히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제품보다는 ‘명품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가격 대비 좋은 질을 갖고 있고 사용하는 사람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생활 명품’들에 더 애정이 많은 소소한 취향의 사람이기도 하다.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가을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