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에서 만난 사람들
아름다운 중독,'걷기'에 빠지다 2부
제주 속살 속으로 들어가다
처음 제주에 갈 때는 2월이었다. 2월이라 해도 남쪽이니까 따뜻할 것으로 생각했던 필자의 생각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취재 시작 지점인 서귀포 외돌개에는 비 그칠 기미가 안 보이고 파도가 격정적으로 휘몰아쳤다. 비 때문에 취재에 어려움을 겪는 촬영팀에게는 미안했지만 사실 너무 매력적인 날씨였다. 하늘은 어둡고 짙은 회색 구름에다가 내 몸엔 '톡톡' 우비 위로 비가 내린다. 파도는 휘몰아치는데 검디검은 현무암 바위 안쪽으로는 에게해 뺨칠만한 옥빛 바다 조각이 있다. 그건 마치 포토샵으로 죄다 흑백 처리한 후 바다색만 옥빛으로 남겨놓은 것 같았다. 그 풍경을 본 나는 걷고 싶어졌다. 유년 이후 처음으로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난생처음 와본 제주도에 깊이 매혹되었다. 내가 그 속살로 우산도 없이 걸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걷다가 먹는 '몸국'의 맛!
날씨 때문에 촬영은 다시 4월로 밀렸지만, 필자는 자비를 털어 3월에 또 제주 올레 길을 찾았다. 본격적인 취재를 하기 전, '걷기'의 매력이 무엇인지 체험해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이틀 내내 15킬로미터 정도씩 두 코스를 걸었다('제주 올레'는 여러 개의 코스로 나뉘어 있고, 매달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유채꽃이 만발했고, 꽃향기가 계속 들숨으로 들어와 날숨으로 나가며 내 몸을 휘저었다. 한걸음 돌아서면 바다였고 한걸음 돌아서면 척박한 땅에서 노력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계단식 밭이었다. 필자는 걸음마다 풍경에 취했다. 날씨는 걷기에 좋았다. 비도 오지 않고 해도 들지 않았다.
가수 양희은 씨도 온다는 행사 공지 때문이었을까? 네 번째 길 열기 행사에는 제주 올레 운영진도 생각 못한 수백 명이 참가했다. 참가비는 없었다. 다만, 길 중간 지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당 마을 부녀회에서 '몸국'이라는 것을 식사로 대접해주었다. '몸'은 파래, 톳, 감태 따위처럼 해초인데 비교하자면 전라도 남해안의 매생이처럼 가늘고 여린 해초다. 제주에서는 고기도 쇠고기는 드물고 돼지고기를 위주로 경조사에 쓴다. 돼지고기 음식이 많기도 하지만 특히 몸국은 돼지의 '족잡뼈'라고 하는 갈비 옆의 가느다란 뼈를 오랫동안 푹 끓여서 국물을 낸다. 몸국은 돼지의 작은창자와 막장을 썰어 넣고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에 해초인 '몸'을 넣고 끓이는데 필자는 이 국을 먹고 진정 '몸을 살리는 국'이라 생각했다. 생전 운동이라곤 안 하다가 이렇게 장거리를 걸었는데 몸국 한 끼에 몸이 다시 날았다. 신선한 재료들을 바다나 육지에서 천연으로 구할 수 있는 제주 환경 덕일까? 노동력이 부족해 양념 무칠 시간이 없어서일까? 몸국을 비롯한 제주 토속음식들은 담백하고 맛있었다.
오감을 자극하는 길, 풍경, 바람
4월 다섯 번째 길이 열렸다. 이번에는 오래 걷고 싶었다. 그래서 첫 번째 코스부터 걷기 시작했다. 5코스 개장 전날 시작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걸었다. 걸을 때마다 몸이 힘들었지만, 분명히 다른 에너지가 생기고 있었다. 확실히 몸이 걷기에 집중하는 동안, 잡념과 상념이 뒤로 물러났다.
육신이 피로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도시에서 걸을 땐 지루했다. 아파트가 이루는 스카이라인이 여기나 거기나 별다르지 않았고, 숨을 쉴수록 건강에 나쁜 것 같았다. 제주 올레 길들은 걸음마다 풍경이 달라진다. 들꽃 보랴 파도 소리 들으랴 새소리 들으랴 바람 느끼랴, 오감을 다 작동하느라 걷는 걸 잊을 정도다. 그러는 동안 도시에서 묻어온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제대로 사는 법, 제주도에서 걸으니 깨닫게 되었다.
사람에 반하고 걷기에 매혹되다
제주 올레 행사 당일엔 유독 많은 사람이 보인다. 혼자 걸을 때는 고즈넉하게 민가의 돌담을 끼고, 풀벌레와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함께 걸을 때는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서로 가져온 주전부리를 나누기도 하면서 말이다.
필자가 서귀포 오일장에서 산 강정을 드리자 한 중년부부께서 자신들이 가져오신 천혜향을 답례로 주셨다. 그러면서 시작된 대화. 항상 질문은 "어디서 오셨어요?"로 시작된다.
"아, 저희는 서울 사람들인데 남편 직장 발령으로 제주도에 온 지 1년 됐어요."
제주은행에서 근무하시는 김영길 씨와 아내 문성자 씨. 언제 서울로 가시느냐고 묻자 직장 일이 끝나더라도 제주를 떠날 생각이 없단다. 집을 그대로 두고, 오가며 제주에서 노후를 보내시겠다고. 하긴 서울 공기 마시는 것보다 제주 공기 마시는 게 보약보다 나을 것 같다. 게다가 천연의 아름다움을 걸음마다 느낄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문성자 씨는 제주 올레 행사 1코스부터 빠지지 않고 참여한 올레 '개근생'. 호젓하게 부부만 걸으시는 것도 좋을 텐데 왜 굳이 행사에 참가해서 걷는지 물었다. "둘이 걸으면 힘들 때 쉬고 포기하게 되잖아요. 그 길에 숨겨진 얘기도 잘 못 듣고. 여기 분들이 길 트면서 생기는 이야기들도 좋고, 함께 걷는 것도 흥이 나고 그러니까요. 친구도 사귀고요."
'아름다운 중독, 걷기에 빠지다' 3부로 이어집니다
글을 쓴 이종혜는 가뭄에 콩 나듯 잡지에 글을 쓴다. 열심히 일한 적도 없으면서 떠날 궁리만 하는 그녀는 한심해보이지 않기 위해 날마다 책을 읽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중독,'걷기'에 빠지다 2부
제주 속살 속으로 들어가다
처음 제주에 갈 때는 2월이었다. 2월이라 해도 남쪽이니까 따뜻할 것으로 생각했던 필자의 생각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취재 시작 지점인 서귀포 외돌개에는 비 그칠 기미가 안 보이고 파도가 격정적으로 휘몰아쳤다. 비 때문에 취재에 어려움을 겪는 촬영팀에게는 미안했지만 사실 너무 매력적인 날씨였다. 하늘은 어둡고 짙은 회색 구름에다가 내 몸엔 '톡톡' 우비 위로 비가 내린다. 파도는 휘몰아치는데 검디검은 현무암 바위 안쪽으로는 에게해 뺨칠만한 옥빛 바다 조각이 있다. 그건 마치 포토샵으로 죄다 흑백 처리한 후 바다색만 옥빛으로 남겨놓은 것 같았다. 그 풍경을 본 나는 걷고 싶어졌다. 유년 이후 처음으로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난생처음 와본 제주도에 깊이 매혹되었다. 내가 그 속살로 우산도 없이 걸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 길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건강 검진은 필수!
걷다가 먹는 '몸국'의 맛!
날씨 때문에 촬영은 다시 4월로 밀렸지만, 필자는 자비를 털어 3월에 또 제주 올레 길을 찾았다. 본격적인 취재를 하기 전, '걷기'의 매력이 무엇인지 체험해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이틀 내내 15킬로미터 정도씩 두 코스를 걸었다('제주 올레'는 여러 개의 코스로 나뉘어 있고, 매달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유채꽃이 만발했고, 꽃향기가 계속 들숨으로 들어와 날숨으로 나가며 내 몸을 휘저었다. 한걸음 돌아서면 바다였고 한걸음 돌아서면 척박한 땅에서 노력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계단식 밭이었다. 필자는 걸음마다 풍경에 취했다. 날씨는 걷기에 좋았다. 비도 오지 않고 해도 들지 않았다.
가수 양희은 씨도 온다는 행사 공지 때문이었을까? 네 번째 길 열기 행사에는 제주 올레 운영진도 생각 못한 수백 명이 참가했다. 참가비는 없었다. 다만, 길 중간 지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당 마을 부녀회에서 '몸국'이라는 것을 식사로 대접해주었다. '몸'은 파래, 톳, 감태 따위처럼 해초인데 비교하자면 전라도 남해안의 매생이처럼 가늘고 여린 해초다. 제주에서는 고기도 쇠고기는 드물고 돼지고기를 위주로 경조사에 쓴다. 돼지고기 음식이 많기도 하지만 특히 몸국은 돼지의 '족잡뼈'라고 하는 갈비 옆의 가느다란 뼈를 오랫동안 푹 끓여서 국물을 낸다. 몸국은 돼지의 작은창자와 막장을 썰어 넣고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에 해초인 '몸'을 넣고 끓이는데 필자는 이 국을 먹고 진정 '몸을 살리는 국'이라 생각했다. 생전 운동이라곤 안 하다가 이렇게 장거리를 걸었는데 몸국 한 끼에 몸이 다시 날았다. 신선한 재료들을 바다나 육지에서 천연으로 구할 수 있는 제주 환경 덕일까? 노동력이 부족해 양념 무칠 시간이 없어서일까? 몸국을 비롯한 제주 토속음식들은 담백하고 맛있었다.
올레 길 중간에 마을 부녀회에서 식사로 대접하는 제주 토속 음식 '몸국'
오감을 자극하는 길, 풍경, 바람
4월 다섯 번째 길이 열렸다. 이번에는 오래 걷고 싶었다. 그래서 첫 번째 코스부터 걷기 시작했다. 5코스 개장 전날 시작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걸었다. 걸을 때마다 몸이 힘들었지만, 분명히 다른 에너지가 생기고 있었다. 확실히 몸이 걷기에 집중하는 동안, 잡념과 상념이 뒤로 물러났다.
육신이 피로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도시에서 걸을 땐 지루했다. 아파트가 이루는 스카이라인이 여기나 거기나 별다르지 않았고, 숨을 쉴수록 건강에 나쁜 것 같았다. 제주 올레 길들은 걸음마다 풍경이 달라진다. 들꽃 보랴 파도 소리 들으랴 새소리 들으랴 바람 느끼랴, 오감을 다 작동하느라 걷는 걸 잊을 정도다. 그러는 동안 도시에서 묻어온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제대로 사는 법, 제주도에서 걸으니 깨닫게 되었다.
제주 바다가 보이는 5코스 길
사람에 반하고 걷기에 매혹되다
제주 올레 행사 당일엔 유독 많은 사람이 보인다. 혼자 걸을 때는 고즈넉하게 민가의 돌담을 끼고, 풀벌레와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함께 걸을 때는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서로 가져온 주전부리를 나누기도 하면서 말이다.
필자가 서귀포 오일장에서 산 강정을 드리자 한 중년부부께서 자신들이 가져오신 천혜향을 답례로 주셨다. 그러면서 시작된 대화. 항상 질문은 "어디서 오셨어요?"로 시작된다.
"아, 저희는 서울 사람들인데 남편 직장 발령으로 제주도에 온 지 1년 됐어요."
제주은행에서 근무하시는 김영길 씨와 아내 문성자 씨. 언제 서울로 가시느냐고 묻자 직장 일이 끝나더라도 제주를 떠날 생각이 없단다. 집을 그대로 두고, 오가며 제주에서 노후를 보내시겠다고. 하긴 서울 공기 마시는 것보다 제주 공기 마시는 게 보약보다 나을 것 같다. 게다가 천연의 아름다움을 걸음마다 느낄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문성자 씨는 제주 올레 행사 1코스부터 빠지지 않고 참여한 올레 '개근생'. 호젓하게 부부만 걸으시는 것도 좋을 텐데 왜 굳이 행사에 참가해서 걷는지 물었다. "둘이 걸으면 힘들 때 쉬고 포기하게 되잖아요. 그 길에 숨겨진 얘기도 잘 못 듣고. 여기 분들이 길 트면서 생기는 이야기들도 좋고, 함께 걷는 것도 흥이 나고 그러니까요. 친구도 사귀고요."
'아름다운 중독, 걷기에 빠지다' 3부로 이어집니다
글을 쓴 이종혜는 가뭄에 콩 나듯 잡지에 글을 쓴다. 열심히 일한 적도 없으면서 떠날 궁리만 하는 그녀는 한심해보이지 않기 위해 날마다 책을 읽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본 기사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2008년 여름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블로그에 맞게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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