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 입 안 가득 퍼지는 인생의 단맛! '부사'....올가 '껍질째 먹는 사과' 산지 탐방기!

혹시 사과밭에 가본적 있으신가요?

그럼, 양쪽으로 늘어선 사과 나무에서
빨갛게 익은 사과를 "똑" 소리나게 비틀어 따서
한입 가득 깨물어 보신 적은요?

그때 입 안 가득 퍼지는 그 달콤~~하고 새콤~~한
사과의 즙과 과육의 향을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흠..실은 풀반장도 없습니다만,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의 산지 취재를 다녀온
nina+님이 바로 그렇~게 자랑자랑을 하시더군요. 킁.
(심지어 왜 이브가 사과를 먹고 아담에게 권했는지를
이해하겠다는 발언까지..헉..)
(다음엔 풀반장도 산지취재 갑니다, 가요! `ㅁ')

일전에 예고해드렸던
<산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 그 첫번째 포스트는,
올가홀푸드의 '껍질째 먹는 사과'의 산지,
충주 엄정면 괴동리로 떠난 얘깁니다.

바.로.지.금.~! 

입 안 가득 퍼지는
인생의 단맛! 부사

교통 체증과 휴대폰 벨 소리와 저녁 식단에 대한 부질 없는 고민을 뒤로 하고
충주의 드넓은 사과나무 밭에 이르렀을 때 나는 알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온통 맑은 바람과 제대로 따사로운 햇살이 안식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여문 부사를 따서 한 입 베어 물자 입 안 가득 인생의 단맛이 퍼져 왔다.

사진 톤스튜디오

사과 밭을 향하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연신 울려 퍼지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와 더딘 교통 신호로 인한 스트레스 탓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던 서울 시내에서 고작 1시간 반 남짓을 달려왔을 뿐이다. 시원스레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어느 순간 충주로 진입했나 싶었는데, 사위는 가을빛을 잔뜩 머금은 산과 숲으로 가득했다.
추수를 마친 콩밭에는 듬성듬성 키 작은 콩 줄기들이 흔적처럼 남아 있었고, 한적한 시골 마을의 붉은 벽돌 집에서는 마른 장작나무를 지펴 굴뚝 연기를 피워 올렸다. 올들어 가을이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진 풍경은 처음이었다. 회색 빛 도시를 빠져 나와 가을 안으로 성큼 들어선 듯했다.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마을 어귀에 슬며시 차를 대자마자 ‘노상 사과 작목반’ 어르신들(드넓은 과수원의 사장이자 스스로 일꾼이기를 자처하는!)이 반가운 눈인사를 보내며 뛰어나왔다.

“잘 오셨어요. 올해는 작년보다 사과가 좋아요. 여름에 비가 많았는데도, 봄볕이 좋고 가을 바람이 좋아서 그랬나 봐요. 며칠 뒤면 완전히 부사를 털 겁니다!”
먼저 자신의 4,000평 규모의 사과 밭으로 길을 안내하던 정연덕 씨는 ‘사과 알이 환상적’이라며 수능시험 잘 치른 자식 자랑하듯 얘기했다. 그의 잔뜩 주름진 검은 얼굴 속에서 사과 속살 같은 환한 미소가 반짝였다.


‘대구 사과’는 옛말, 이제는 ‘충주 사과’!
사실 과일의 여왕, 사과를 언급할 때 먼저 떠오르는 지방은 충주가 아니라 대구이곤 했다. 풋사과를 닮아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많다는 분지 도시 대구에 대해 얼마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들었던가. 하지만 신문 보도에서 ‘대구 사과는 옛말’이라는 헤드라인을 사용할 만큼 판도가 바뀐 지는 오래다. 실제로 1970~1980년대 ‘대구 사과’라는 이름으로 전국 사과 생산량의 20퍼센트를 차지했던 경상북도 영천 지방의 사과는 현재 그 생산량이 3퍼센트대로 줄었다. 1998년 1,333헥타르였던 재배 면적도 지난 2006년 통계에 의하면 842헥타르로 줄었다니, 3분의 1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원인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다.

1, 2 일교차가 큰 충주는 사과 재배에 있어 최적지로 손꼽힌다. 3 저농약 재배로 소문이 자자한 충주시 엄정면의 과수원.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 밤 열대야 현상이 기승을 부리는 우리나라가 어느덧 아열대 지역으로 흡수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사과는 생육기(5~10월) 평균 기온이 20~30도, 성숙기(10월 초순~11월 초순)에는 일교차가 10도 이상 돼야 좋은 색과 맛을 내는 법. 기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열매가 맺히는 비율인 착과율이 떨어지고, 강한 자외선에 과일이 타는 ‘일소’(日燒)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좋은 색이 나지 않고 성숙이 빨라져 쉽게 무르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사과 수확량을 보이고는 있지만, 더워진 기온만큼이나 농민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날씨 변덕 탓에 ‘대구 사과’는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사과 재배 지역은 경북 북부인 영주에서 의성과 거창, 밀양, 그리고 충주를 거점으로 옮겨 왔다(최근에는 강원도 영월과 양구까지 사과 재배지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충주는 일교차가 큰 지역으로 손꼽힌다.
“가을 수확기 동안 낮에는 따뜻하고, 저녁에는 서늘해야 당도가 제대로 축적되어 맛이 좋아집니다. 충주는 일교차가 좋은 지역이죠. 더욱이 사과는 재배지가 추운 지역일수록 모양이 위아래로 길게 자라서 보기 좋아요. 무더운 남쪽 지역으로 내려가면 사과가 옆으로 불룩하게 자라게 되니, 모양 면에서도 충주가 단연 으뜸입니다.”
올가홀푸드의 신선식품팀 서정호 팀장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충주 사과는 그 지역적 특성을 인정 받아 지난해 정부로부터 과실로는 전국 최초로 지리적 표시 등록을 받았으니 말이다.


저농약 재배로 소문난 ‘부사’
“물론 충주 사과라 하면 부사를 말하는 겁니다!”

4 부사는 바람을 많이 맞아서 껍질 표면이 거칠거칠한 것일수록 맛이 달다.

과수원 주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시에 700종이 넘는 사과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한다는 부사를 아름드리 사과나무에서 연방 따내어 내밀었다.
“저농약 재배로 튼실하게 키운 놈이니, 걱정 않고 많이 드셔도 됩니다!” 가뜩이나 깎아먹기가 귀찮아서 손이 잘 가지 않던 과일이 사과였는데, 농약 걱정 없이 마음 편히 맛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두 주먹을 포갠 크기보다 월등히 크고 동그란 사과는 누가 보더라도 빛깔 좋게 잘 익어 보였다. “아삭” 베어 무는 순간, 사과는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입 안 가득 단물이 퍼졌다. 달디단 과육이 씹히는 맛과 함께 새콤한 사과 향까지 코끝을 스쳤다.“와우!”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한 상자 구입해서 겨우내 먹어야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남·북반구 온대 지역이 원산지인 사과는 2000년 전부터 여러 가지 품종으로 재배되어 왔다. 최신판 백과사전에 따르면 전세계의 1년 생산량은 3,200만 톤에 이르며, 대표적인 생산국은 미국과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등지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재래종인 능금을 재배했는데,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재배법이 실려 있는 것으로 봐서 18세기 초에 많이 재배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사는 ‘후지’라는 공식 품종 명을 한자음으로 읽은 우리나라식 이름인데, 1939년 일본 과수시험장에서 국광에 데리셔스를 교배해 1962년에 최종 선발해 명명한 품종. 우리나라 과수연구소에서는 1967년에 도입해 1972년에 선발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오리나 홍옥, 국광과 같은 다른 종에 비해 늦은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완전한 과실이 익어 ‘겨울 사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황백색 과육은 다른 사과에 비해 월등히 과즙이 많고 육질이 치밀하다. 당도(14.6도)도 높지만, 산도까지 0.38퍼센트로 감산이 적당하게 조화되어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사과 과수원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품종이다.
“올해는 여름에 비가 많아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수확이 좋은 편입니다.” 역시 1만3,200여 제곱미터(구 4,000평)가 넘는 사과 과수원을 보살피고 있는 박창규 씨 역시 곧 수확을 앞둔 부사들을 둘러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과수원에는 참새 떼를 막기 위해 설치한 촘촘한 그물망과 조명 장치들이 주인의 노고를 드러내고 있었다.

5 수확을 앞둔 사과들을 ‘수능 치른 자식’처럼 흐뭇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충주 노상 작목반의 정연덕 씨. 6 과수원 안의 사과나무들은 보통 30년 동안 손이 탄 ‘가족’같은 녀석들이다.

표면이 거칠수록 단맛이 나는 이유?
사과 농사는 과실수 재배 가운데 가장 험난한 농사다. 봄이 오기 전에 묘목을 심거나 접붙이기, 가지 치기 작업 등의 기본 작업을 마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충해를 막기 위한 작업도 다져 놔야 한다. 보통 사과 과수원에서 1년 동안 12~15차례 정도 농약을 뿌리면서 병충해를 막는데, 저농약 재배로 소문이 자자한 충주시 엄정면의 과수원들에서는 그 반으로 인공적인 처리를 줄인 만큼 해충들이 싫어하는 기피제나 유인제를 가지 중간중간에 일일이 달아두는 수고로움까지 감내해야 한다. 과수원마다 1,500그루가 넘는 나무 가지를 쳐주고, 5~6월 사과 꽃이 피고 난 뒤, 가지 끝에 맺힌 사과 열매를 솎아주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보통 하나의 가지 끝에 두 개의 열매가 열리는데, 보다 저장성(밀도) 좋은 과실을 얻기 위해 하나를 떼내는 작업이 필수다. 과수원 곳곳에선 그 흔적처럼 바닥에 버려진 덜 여문 사과가 눈에 띄었다.
여름 장마철을 고단하게 넘어가면, 뻗어나온 가지를 버티게 하기 위해 받침대를 꼼꼼하게 세워야 하고, 가을로 접어들면 햇빛에 노출된 부분 외에 고루 붉은 빛깔이 나도록 사과를 직접 돌려주거나 바닥에 반사 필름을 깔아야 한다. 11월 첫 주에 잘 익은 부사를 수확해 사과 선별장으로 보내면 1년 농사가 일단락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겨우내 꽃눈이 맺히기 전에 다시 가지치기를 해서 나무 모양을 내주는 일과 거름 주는 일로 겨울이 분주하게 가는 것이다. 묘목을 심어 사과 열매가 처음 열리는 데 필요한 기간은 3~5년, 너른 과수원의 사과나무들은 보통 5~8년에서 많게는 30년 동안 손이 탄 ‘가족’도 있었다.
부사는 바람을 많이 맞아서 껍질 표면이 거칠거칠한 것일수록 단맛이 납니다. 추위를 견디며 당도를 쌓았다는 증거니까요. 깎았을 때 껍질이 두터울수록 맛이 좋은 것이고요.”
벌레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속설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백화점에서 파는 사과야 빛깔 좋고 모양 좋은 놈이 최고지만, 과수원에서 마을 주민들이 따먹을 땐 일부러 껍질이 거친 놈을 골랐다. 물론 그렇게 고른 사과마다 과육 안에 꿀 같은 과즙이 농밀하게 몰려 있었다.

7, 8 보통 나뭇가지 끝 꽃눈에 두 개의 사과가 열리는데, 보다 좋은 과실을 얻으려면 하나를 떼내는 작업은 필수다.

알츠하이머를 예방하는 붉은 사과
얼마 전 치매를 일으키는 대표 질환인 알츠하이머에 사과가 좋다는 반가운 소식이 거론됐다. 미국 코넬대학에서 사과에 풍부하게 든 케르세틴 성분이 알츠하이머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
케르세틴을 비롯해 비타민C, 페놀산과 같은 강력한 항산화 물질들은 유해산소인 유리기(free radicals)로 인한 세포나 조직 손상을 막아준다. 특히 케르세틴은 혈장 속의 과산화지질이 증가되는 것을 억제해 세포의 노화와 조직 손상을 억제해주는데, 덕분에 사과에 들어있는 케르세틴 성분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병 등 뇌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케르세틴 성분은 푸른 사과보다 붉은 사과에 많은 성분이라는 사실도 알아둬야 할 대목이다. 더불어 사과에 들어 있는 비타민C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서 유리기로 인한 세포나 조직 손상을 막아주므로, 항산화 물질이 많은 사과를 먹으면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는 학습 능력이나 기억력이 올라갈 수 있다! 두뇌를 위해서라도 성실하게 사과를 먹는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참고로 사과 껍질에는 과육보다 훨씬 많은 펙틴이 들어 있고, 사과의 비타민C 대부분은 껍질과 껍질 바로 밑의 과육에 함유되어 있다. 영양분과 당분이 대부분 이 부분에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사과는 껍질째 먹어야 좋은 것이 당연지사. 앞서 말한 케르세틴은 사과 껍질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니 더 이상 껍질을 벗겨낼 일이 아니다. 코넬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매일 껍질을 벗기지 않은 사과 1개를 먹으면 항암력이 커지고 뇌세포 파괴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했다. 물론 사과 껍질의 잔류 농약이 적잖이 염려스럽다면 최소한의 화학 처리만을 거치는 저농약 재배 사과를 고르는 선택이 필수적이리라.
“아침에 먹는 사과는 심신을 상쾌하게 할 뿐 아니라 위의 활동을 촉진시켜 위액 분비를 촉진시킴으로써 소화 흡수를 돕는 등 하루의 에너지원이 됩니다. 하지만 사과는 성질이 차고 섬유질이 많아서 장을 자극해 배변과 위액 분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밤에 먹으면 속이 쓰리거나 뱃속이 불편해서 잠을 푹 잘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세요.”
서정호 팀장은 충주 사과에 흠뻑 반한 주위 사람들에게 알뜰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9 과육 안에 농밀하게 몰려있는 꿀 같은 사과 과즙. 10 충주 부사는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올가의 껍질째 먹는 사과로 태어난다.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충주의 산기슭에 위치한 너른 사과나무 밭을 걸어 내려오며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고대 철학가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굳이 배나무나 감나무가 아닌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밝힌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365일 정성어린 재배를 통해 얻은 그 풍성한 과실 수로 더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건강까지 보살피고자 했던 속 깊은 심성이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스피노자가 사과나무와 더불어 각박한 삶 속에서 자연의 여유를 찾으려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부사의 단맛은 가끔씩 누려도 좋은 인생의 달디단 즐거움 같았으니 말이다.
사과의 당도를 높일 것 같은 알싸한 가을 바람이 스쳤고, 나는 후덕한 과수원 주인으로부터 커다란 부사 하나를 얻어 미의 으뜸으로 자리매김한 아프로디테처럼 자랑스럽게 손에 쥐고 과수원을 내려왔다. 뒤돌아보니 울창한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알맹이가 황금사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글을 쓴 정명효는 다큐멘터리 잡지<지오(GEO)>와 패션지<보그 코리아>, <럭셔리> 등에서 근무해왔다.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2007년 겨울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