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질서와 차례가 있는 법인데
일의 순서도 모르고
성급하게 덤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요.
비슷한 뜻의 속담으로는
보리밭에 가서 숭늉 찾는다,
싸전에 가 밥 달라고 한다 등등~.
그렇다면, 이런 말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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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밭에 가서 국수 달라겠다~!
흐흠, 아마 들어보신 적 없을 수도~!
바로바로 북한 속담이거든요~. ㅎㅎ
‘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의
북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그런데...
메밀밭? 국수? 라고요?
속담이란 예로부터 민간에 전해 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이고 보면
우리의 일상과 정말 가까이 닿아 있는,
지금으로 따지면 유행어라고 해도 될 텐데요.
그러니, 보리로 숭늉을 내는 일처럼,
쌀로 밥을 짓는 일처럼,
메밀로 국수를 만드는 일 또한
정말 흔하고, 일상적이며, 당연한 일!
미식과 건강의 상징이자,
귀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린
지금의 메밀, 메밀면, 메밀국수가
대대로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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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백석이 사랑한 국수, 메밀국수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겨울밤 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이 ‘반가운 것’의 정체, 짐작 가시나요?
바로, ‘국수’입니다!
뽀얀 밀가루 국수가 아니라
‘히수무레’ 메밀가루로 만든 메밀국수이지요. ^^
위 구절은 백석의 시 ‘국수’ 중 일부인데요.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하고,
고담하고 소박한 메밀국수라니...
아~ 눈으로만 읽어도
어느새 침이 꼴깍! 가슴이 두근! >..<
백석은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
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 속 그는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1930년대에 그런 스타일의 머리모양(!)을 할 수 있는
감각을 지닌 그는 지금으로 치면
핫한 패션 피플이자 트렌드세터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 그가 예찬한 메밀국수라니
더욱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그의 고향(평안북도) 음식이나
경성 혹은 일본 유학 시절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을 시의 소재로 삼곤 했는데요.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음식의 종류는
흰밥과 가재미, 진장에 꼿꼿이 지진 달재 생선 등
무려 110여 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런 그가 각별히 아끼고 좋아했던 음식 중 하나가 바로
국수, 즉 메밀국수인거지요.
이 시절에는 국수라고 하면 모두
메밀국수였거든요. ^^
<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
밀가루 전에 메밀가루, 밀면 전에 메밀면
메밀이 우리 땅에서 재배된 건
삼국시대 이전부터라고 합니다.
씨를 뿌리고 수확까지 60~80일밖에 걸리지 않는데다,
병이나 해충을 잘 타지 않고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기에
우리나라 곳곳에서 흔하게 재배되었거든요.
메밀은 밀처럼 주로 가루를 내어 먹었는데요.
메밀을 빻아 가루를 내어
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수제비를 빚고 만두를 빚어 먹기도 하고,
묵이며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반죽을 해서 썰고 뽑아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지요.
이렇듯,
지금은 국수라고 하면 밀가루면이 주를 이루지만
이 땅엔 원래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가루가 일반적이었고,
옛날에는 국수라고 하면
모두 메밀로 만든 메밀국수였습니다.
밀가루가 흔해지기 시작한 건 한국전쟁 이후인데요.
어느새 밀과 메밀의 운명(!)은 뒤바뀌어
메밀값은 밀값의 몇 곱절로 귀한 몸이 되었고,
특유의 구수한 맛과 향, 그리고 영양 덕분에
미식과 건강의 상징이 되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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