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풀사이 가족들은
기억에 남는 '맛' 이 있으신가요?
누군가에게는 '평소 즐겨 찾는 음식점의 맛'이
어떤 사람에게는 '어린시절 할머니가 해주시던 고향의 맛'일 수도 있는
바로 그 맛!
제가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손숙 씨, 박완서 씨, 신경숙 씨, 주철환 씨를 비롯한
명사들이 말하는 기억에 남는 '맛'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이 더욱 특별한 점은
각인 각색의 '맛'이 등장할 뿐만아니라
그 '맛'에 얽힌 스토리까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인데요.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면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입니다.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먹는 게 남는 거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고향집을 떠난 지 꼭 20년이 됐다. 어느덧 고향에서 지낸 시간보다 서울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이다. 서울 지리는 택시 기사 못지 않게 ‘빠꼼이’가 됐지만, 가끔 고향에서 운전을 할라치면 어디가 어딘지 몰라 헤매는 일이 다반사다.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식도락을 취미 중의 하나로 가졌기 때문에 서울이나 서울 근처의 맛집들은 제법 꿰고 있지만, 고향에 가서 외식할 일이 생기면 난감해져 표준화된 백화점 식당가를 찾곤 한다.
그림 출처 한길사
부모님은 1년에 한두 번 서울에 오신다. 그리고 우리 부부와 예닐곱 번 같이 식사를 한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는 그럴 듯한 정찬을 직접 만들어 대접할 형편이 안 된다. 때문에, 아침은 미리 준비해 둔 몇 가지 음식들로 집에서 해결하지만, 점심과 저녁은 대개 외식을 한다. 외식은 내 전공(?) 분야니까, 그리고 부모님은 평소에 외식이란 걸 잘 하지 않으시니까, 내가 모시고 가는 맛집들의 요리를 부모님은 아주 맛있게 드신다.
하지만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마방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텅 빈 방바닥에 앉아서 조금은 멀뚱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면 수십 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한정식이 밥상 채 날라져 오는 집이다. 숯불에 자작하게 구운 불고기며 온갖 나물들이며 장아찌며 김치들의 맛이 일품이어서, 공기밥 추가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좀 시큰둥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근 한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찾아갈 만큼의 가치는 없다고 여기시는 듯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집에서 매일 먹는 것과 비슷해서’였다. 그 집 음식은 경기도 식인데, 부모님 고향도 경기도이니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집 음식이 내 입에 그렇게 달가웠던 것도 내가 어릴 적 집에서 먹던 그 맛과 흡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의 실패 사례는 정반대다. 나는 팔도의 음식, 아니 세계 곳곳의 맛난 음식들을 모두 즐기는 편이라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점 중에는 당연히 전라도 음식을 파는 곳도 있다. 언젠가는 주인 아주머니가 순창 출신인 인사동의 ‘신일’이라는 곳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하지만 역시 반응은 별로. 평생 ‘슴슴한’ 경기도 음식만 드시던 분들께 남도의 음식들은 너무 짜고 강했던 탓이다.
손숙, 박완서, 신경숙, … 명사들의 고백
어찌 나의 부모님만 그러랴. 사람의 입맛이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한번 길들여진 입맛은 마치 유전자에 인이 박힌 듯 평생 뇌리에 남아 있다. 처음 맛보는 새롭고 신기한 음식을 먹는 일도 즐거운 일이긴 하나, 그 기억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늘 먹어온 맛, 혹은 과거 어느 순간에 ‘꽝’하고 머리를 때렸던(이유가 무엇이든) 맛, 혹은 곁에 있을 땐 몰랐으나 더 이상 만날 수 없어서 안타까워진 옛 시절의 어떤 맛 등은 마음 한 구석에 액자처럼 언제나 남아 있다.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출판 한길사)은 박완서, 신경숙, 주철환, 손숙 등 13인의 명사가 쓴(일부는 그리기도 한) 음식에 관한 추억담이다. 말 그대로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을 그리워하는 글들이 실려 있다. 저자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물론 ‘맛’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그 맛을 경험했던 시공간과 그 맛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에게까지 그리움은 확장된다.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비빔밥이나 호박잎쌈이나 묵밥과 같은 우리 음식들부터 일본, 미국, 인도, 아프리카 등의 낯선 음식들까지 다양하다. 초콜릿과 바나나와 에스프레소 커피도 등장한다. 하지만 모든 글들이 결국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며, ‘추억’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어? 이건 내 이야기인걸’ 싶은 마음이 드는 글들이다. 또한 우리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임으로써 우리 유전자에 자신의 손맛을 각인시킨 사람이 대개는 어머니이기에,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글들이 많다. 그래서 연극배우 손숙은 이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입맛을 다셨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엄마가 너무 그리워져서.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어릴 적 엄마가 차려주던 밥상이 그리워진다.”라고 쓰기도 했다.
‘잊을 수 없는 맛’을 그리워하다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은 최소한 삼십대는 돼야 완전히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없어서 못 먹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조금 덜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미식 체험기에 더 눈길이 가는 사람이라면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그렇고 그런 음식들에 대한 식탐을 두고 ‘올드 패션’이라는 낙인을 찍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고, 추억 없는 사람도 없고, 먹는 것에 얽힌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도 없다. 만화가 홍승우는 이 책에서 출근시간에 쫓겨 아침을 거르는 샐러리맨을 그린 그림 아래에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먹는 것’을 포기하면서 산다”고 썼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지만, 아무리 ‘먹고살기’ 위해 애쓰느라 ‘먹는 것’을 포기하더라도, ‘먹는 것’에 얽힌 아름다운 추억들까지 잊을 수는 없다. 허다한 식당이며 식품회사들이여, 우리가 그 추억들을 반추하며 마음을 훈훈하게 데울 수 있는, 그런 먹을거리들 좀 많이 만들어서 판매해 주시라.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의 추억이 없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터다. 그리 두껍지도 어렵지도 않아서 술술 잘 읽히는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두 가지를 하면 좋겠다.
첫째는 스스로 수필가가 되어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한편 쓰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읽혀져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무엇을 잊고 살아왔는지, 내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내가 누구에게 많은 것을 얻었는지, 내가 새롭게 어떤 추억을 쌓아가야 하는지가 마음속에 자연스레 나타날 것이다.
둘째는 그 ‘밥 한 그릇’을 먹는 일이다. 꼭 그 음식은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면, 비슷한 것이라도 만들거나 찾아가서 먹어 보자.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고,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질 것이다. 역시 먹는 게 남는 거다.
글을 쓴 박재영은 의사 출신의 저널리스트로 의료전문신문 <청년의사>의 편집주간이다. 여행 준비와 식도락이 취미이며, 그가 쓴 몇 권의 책들 중에는 음식에 관한 에세이 <뭐 먹지?!>가 있다.
<자연을담는큰그릇>2008년 봄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누가 차려준 밥이었나요?
아..금요일인데 뭔가 센치해지는 느낌입니다.
수많은 밥그릇들이 머리를 스치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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