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Fair Trade)을 아시나요?
가난한 나라 생산자들의 노동가치를 적정 가격으로 보상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돕는 것인데요.
공정무역이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진 것은
자유무역 체제 아래에서 방임되었던 빈민국 아동들의 노동력 착취가 주목을 받았던 수년전이지만
실제로는 1980년대부터 거론됐던 개념이라고 하네요.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에서 100 만명이 넘는 가난한 생산자들이
50여 개국의 공정무역 단체 3000여 곳에 의해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정무역단체가 있냐구요?
네~ 물론 있습니다.
바로 페어트레이드 코리아인데요.
국내 유일의 공정무역 업체인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그루'라는 이름의 공정무역 매장을 통해
다양한 제품들을 국내에 알리고 있답니다.
좋은 취지답게 밝고 아늑함이 가득했던 이곳 매장을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다녀왔지요.
사외보를 통해 소개된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미영 대표와의 만남,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요?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미영 대표 그녀들의 공정한 패션 이야기 국내 유일의 공정무역업체 페어트레이드코리아의 이미영 대표를 만난 곳은 안국동에 위치한 공정무역 가게 1호 매장 ‘그루’였다. 아늑한 매장 안은 인도와 네팔, 방글라데시 등에서 생산 된 옷과 소품으로 빼곡했다. 단아하면서도 밝고 적극적인 모습이 꿈꾸는 그의 삶을 웅변하는 듯했다. |
네팔의 그녀, 사파나의 이야기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시내에 접해 있고, 카스트 계급 중 가장 빈곤한 포드(pode) 계급이 몰려 있는 빈민촌 랄리퍼 지역. ‘KTS(Kumbeshwar technical school)’라는 간판이 달린 작업장 안에는 28세의 젊은 여성 사파나가 동료들과 함께 부지런히 베틀을 매만지고 있다. 그는 양탄자와 카펫, 니트 등 손뜨개 상품을 만들며 내일과 희망을 제조한다. 하지만 사파나는 기술학교이자 생산자조합인 KTS를 찾던 9년 전, 세상의 모든 절망과 먼저 맞서야 했다. 고향을 뒤로하고 일자리를 찾아 카트만두로 올라온 그는 한 남자를 우연히 사랑하게 됐고 곧이어 남자아이 수산을 갖게 됐다. 하지만 남자는 수산을 낳은 지 한 달이 채 못돼 그녀를 버렸고, 그녀는 극심한 가난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수산을 키워야만 했다. 이웃들은 KTS에 도움을 요청했고, 사파나는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고 작업장에서 손뜨개 상품을 만들어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수산은 이제 9살이 됐고 초등학교에서 무척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사파나는 환하게 웃곤 한다.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1983년에 설립된 KTS는 아이들과 부모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고, 사파나를 비롯해 375명이 그 작업장에서 카펫과 니트 등 손뜨개 상품을 만들어 해외에 팔아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루’에서 만난 그녀, 이미영 대표
사파나의 경우처럼 가난한 나라 생산자들의 노동 가치를 덤핑이 아닌, ‘적정 가격’으로 보상,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바로 ‘공정 무역(Fair trade)’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100만 명이 넘는 사파나와 같은 가난한 생산자들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50여 개국 풀뿌리 공정무역 단체 3000여 곳에 의해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내에서 공정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은 아직 한 곳밖에 없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가 바로 그곳. ‘페어트레이드코리아’를 통해 한국인들도 사파나가 생산하는 옷뜨개 상품 12종을 살 수 있다.
“사파나같은 공정 무역 생산자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중 가장 열악하고 주변화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지요. 문맹자, 장애인, 여성 등 조건이 열악하고 기술도 없어 정상 취업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국내 유일의 공정무역업체 ‘페어트레이드코리아’의 이미영 대표(44)는 사파나 모자의 사례를 전해주며 “사파나와 같은 사례는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이미영 대표를 만난 곳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 페어트레이드코리아 1호 매장 ‘그루’였다. 40㎡(12평) 남짓한 매장 안은 인도와 네팔, 방글라데시 등에서 생산된 옷과 소품으로 가득했다.
“공정무역에서 한국 시장은 아직 상대적으로 작고 빅 바이어(big buyer)가 결코 아닙니다. 국내에서 주목받는 데 비해 매출이 훌륭하다고 보긴 어려워요.”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8억 원 정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장률은 상당히 가파른 편이다.
“공정무역이 추구하는 가치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과 상당히 부합하는 측면이 많아 국내에서도 NGO에서 먼저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가게’에서 먼저 ‘대안무역’이란 이름으로 커피와 차를, YMCA에선 동티모르 개발사업 지원을 위한 ‘피스 커피’ 등을 팔고 있죠. 또 최근 ‘기아대책’이라는 NGO도 커피 상품을 팔기 시작했고요. 다만, 사회적 기업, 주식회사 형태로 매장을 갖춰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곳은 저희밖에 없다고 봐야죠.”
공정한 패션, 공정한 꿈
2009년 네팔의 어느 시골 길. 현지에서 차를 빌려 생산자 커뮤니티로 향하던 이 대표의 차가 멈춰 섰다. 앞에 있던 차가 고장이 나면서 좁은 비탈길이 막혔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되자 많은 운전사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하곤 했다. 혼자 이곳을 찾은 이 대표도 어쩔 수 없었다. 무려 4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팔의 생산자 조합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였죠. 사실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했어요. 이들 나라의 도로 환경은 아무래도 취약하거든요.(웃음)”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현재 네팔 KTS와 방글라데시 스왈로우즈(Thanapara Swallows), 인도, 베트남, 라오스 등 28개 생산자 커뮤니티의 상품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이 대표는 NPO 등의 도움을 받아 생산자 조직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07년 6월 세워진 회사는 처음부터 아시아 여성들의 빈곤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되 점차 의식주 라인으로 확대되는 전략적 모델로 시작했다.
“특별히 옷이나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여성 빈곤 해결에 우선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죠. 교육 기회와 기술 등을 갖지 못하는 가난한 사회의 여성들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생산과정도 여성에 의해 통제될 수 있으며, 이익이 직접 돌아갈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서 옷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한 ‘그루’가 모여 희망의 숲으로
2008년 1월 온라인 쇼핑몰(www.fairtradegru. com)을 먼저 개설했고, 3월에는 자체 브랜드 ‘그루’도 론칭 했다. 6월 서울 안국동에 ‘그루 1호점’을 세웠고, 12월에는 노동부에 의해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았다.
브랜드 ‘그루’는 식물, 특히 나무를 세는 단위로, 숲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자라고 모여 숲을 이루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나무가 돼 희망의 숲을 이루기를 소망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역시 판로 개척이 제일 어려웠어요. 매출이 있어야 생산자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상품을 생산하고 수입할 수 있잖아요. 어떻게 파느냐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온라인 쇼핑몰 채널밖에 없었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지 않았죠. 그래서 처음엔 적자가 많았어요.”
다행히 차츰 온라인 매출이 호조를 보이고 B2B(기업간 상거래) 거래도 늘어나면서 매출은 증가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모두 600여 개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 의류가 주력 상품이고, 소품과 식품도 함께 다룬다. 서울 안국동의 그루 1호점 외에도 인사동의 수수료 매장 1곳과 신사동의 가맹점 1곳, 평창동의 레스토랑 삽인샵 매장 1곳 등이 있다. 직원은 이 대표 외에 15명이 일하고 있다.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다
“직장에서 제대로 일해본 적이 없어요. 사회적인 활동만을 해왔는데, 이 경험이 기반이 된 것 같아요. 만약 기업체에서 일했거나 평범한 비즈니스를 했으면 결코 상상하지 못했겠죠. 지금 하는 일도 일종의 소셜 워크(social work)거든요.”
이 대표는 고려대 교육학과 재학 시절 사회과학 동아리에 참여했고, 특히 민족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나중에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현대 엘리베이터 노동조합의 간사로 일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여성이나 환경문제 등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다.
“1994년부터 경실련 환경개발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어요. 3년 뒤에 경실련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잠깐 중국에서 생활한 뒤 2000년부터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하게 됐는데요. 중국 북경에서 열린 UN 여성대회를 계기로 여성과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죠. 당시 공무원과 여성 및 환경 NGO 활동가, 연구자 등과 네트워크를 형성, 여성 문제를 준비하면서 시각이 확 넓어졌어요.”
이 대표는 2003년 한명숙 당시 환경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1년간 일하다가 2004년 가을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공정무역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다른 나라 활동가, 특히 제3세계 국가의 활동가들과 교류 기회가 많았어요. 이들과 교류를 통해 환경과 빈곤, 여성 문제라는 세 고리가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가난하기 때문에 환경이 나빠지고 환경이 좋지 않으니 더 가난해지죠. 산업화가 대세이지만 대안을 갖고 진행되지 못해 심각한 빈곤에 처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요. 직접적인 피해자 가운데 여성이 가장 많은 숫자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 빈곤은 굉장히 중요한 빈곤 이슈죠. 공정무역을 통해 아시아 곳곳에 있는 가난한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국내 여성에게는 윤리적인 소비의식을 심어주자고 생각한 것이죠.”
이 대표는 2006년 6월 준비위원회 구성을 끝내고 네팔을 답사하는 등 생산자 조직 필드리서치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공정무역단체 ‘네팔리 바자로(Nepali Bazaro)’ 등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는 2007년 5월 둘째 주 토요일 ‘세계 공정무역의 날’을 맞아 47명의 주주가 참여한 발기인 총회를 열었으며, 초기 자본금 1억 5000만 원을 모아 6월 마침내 ‘페어트레이드코리아’를 세웠다.
걸음마 단계, 하지만 희망은 있다
1946년 미국 텐사우전드빌리지(Ten Thousand Villages) 등이 푸에르토리코의 바느질 제품을 거래하면서 시작된 공정무역은 미국과 유럽에 꾸준히 확산됐고, 일본에서도 1990년대 초반 풀뿌리 자치단체 등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이에 비하면 국내 공정무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크다고, 이 대표는 강조한다.
“2000년 중반 이후 알려졌지만, 굉장히 빠르게 확장하고 있거든요. 공정무역의 시작점으로 봤을 때 소비자들의 인식이나 확산속도는 빠른 것 같아요.”
실제 일부 대기업도 큰 이익을 낼 수 없음에도 식료품을 중심으로 공정무역을 시작하기도 했다. 또 47명에서 시작한 주주도 지금 180여 명으로 4배 이상 늘어날 정도로 시민 참여도 증가세다. 국내 대형 할인마트 등 기존 유통망을 활용하고 싶지만 아직은 어려운 점이 있다.
“저희 제품은 수작업 위주의 소량상품이 많고 원가도 높고 중간 마진도 높게 잡을 수 있는 상품이 아니잖아요? 다른 기업처럼 많은 마진을 요구할 경우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죠. 사실 대형 유통업체에 접근하는 중소기업, 업자들도 상당히 불리한 조건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거든요.”
다행히 ‘그루’의 제품들은 올가을부터 풀무원 계열의 유기농 전문매장 ‘올가’에 입점하게 될 것 같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선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1년에 4, 5회 1주일에서 10일씩 판매도 할 예정이란다.
공정무역 업체는 보통 생산자 조직으로부터 현지 가격보다 30~70% 높은 가격으로 구입, 시장에 판다. 국내 판매가는 티셔츠가 3만 원대, 블라우스는 6만~8만 원, 재킷이 10만 원대다. 적정 가격을 보장함으로써 생산자들의 빈곤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영국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세계 무역구조에서 개발도상국이 얻는 이익을 1% 포인트만 올려도 세계 1억 2,800만 명의 가난한 사람이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공정무역 가게 ‘그루’의 안마당에는 국제우편으로 날아온 마대자루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마대자루에는 네팔의 젊은 여성 사파나와 그녀의 동료들이 부지런히 베틀을 돌려 만든 양탄자와 옷가지, 가방들이 한가득 담겨있을 테다. 바다 너머에 있을 사파나와 한국에서 ‘그루’를 이끌어가는 그녀의 미소는 어쩐지 닮아있을 것 같다.
글을 쓴 김용출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다.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세계일보>에 입 사,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을 거쳐 현재 문화부에서 영화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쓴 책으로 <독일 아리랑>, <독서경영>(공저) 등이 있다. |
|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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