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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여행하는 여자위험하다

여행이란 말은 항상 설레임과 기대감을 동반합니다.
더욱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란, 웬지 모를 처연함까지 남겨 줍니다.
자신이 진정 누구이고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얻고자 홀로 떠난 여자의 이야기
여행을 하면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했다는 작가의 고백이
웬지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자담큰에 소개된 이 책과 가슴 설레는 여행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얼마 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20일 정도였으니 직장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꽤 긴,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작은 탄식이 나올 만큼 아쉬움이 많은 짧기 만한 여행길이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여행의 기대 속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가 버무려져있다. 여행을 떠나며 시작되는 달콤한 기대, 상상, 망상은 이런 게 아닐까? 비행기 옆자리에 심장이 멎을 만큼 근사한 사람이 앉아있거나 갤러리나 작은 카페에서 우연히 깊은 눈빛의 이방인을 만나게 되는 꿈. 그러나 아직 여행의 기술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넘치는 여자 복 때문인지 여행길에서 만난 많은 인연들의 대부분은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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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자들은 혼자 여행할까?
이번 여행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휴가에 인색한 회사를 10년간 참고 참다 보란 듯이 딱 10년차가 되는 날 회사를 '뻥' 걷어차고 1년 동안 여행만 할 것이라는 호주 여자, 미국식 삶에 질려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삶의 터를 잡고 시간이 날 때마다 유럽을 여행하는 엉덩이가 거대한 흑인 여자 등등.

하도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을 자주 만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여자들은 혼자 여행하는 걸까?' 난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한 만큼 '여행하는 여자는 위험하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왜? 그건 세상이 여자들에게 바라는 가치는 여전히 사랑, 안정감 두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이나 여행은 여자들의 나긋나긋한 심장에 숨겨진 모험심을 부추긴다. 질문하고, 꿈꾸고, 여기와는 다른 세상에 겁이 없어지고. 아침드라마와 일일연속극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여자의 뇌와 심장과는 완전 다른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혼, 그리고 심상치 않은 여정
이렇게 여자와 여행과 책 사이의 삼각관계에서 고민하다, 런던의 서점에서 이런 책을 발견했다. <eat, pray, love> 굉장히 낯익은 책 표지다 싶어 표지를 넘기니 한국에서 친구가 읽고 있던 그 책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솟을북 펴냄). 표지에 적힌 짧은 카피만으로도 이 책의 요점은 아주 명확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가 인생의 고민을 찾아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를 각각 4개월씩 일 년 간 여행한 여행기. 당연히 이탈리아에서는 먹고, 인도에서는 기도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사랑을 찾았다는 얘기다. 애니콜의 철학적 카피인 'Talk, Play, Love'처럼 조금은 선정적이고 단순 명료한 이 책에 나는 순간 군침이 돌았다.

여행 중이라는 들 뜬 기분도 있었고, 내 나이 또래 여자의 심상치 않은 여정이 몹시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책의 시작은 아주 신파적이다. 능력 있고, 야심차며 운까지 좋은 주인공은 성공한 남편, 화려한 커리어, 허드슨 벨리에 있는 멋진 저택, 맨해튼의 아파트, 여덟 개의 전화선, 매력적인 피크닉, 화려한 파티, 그리고 신용카드로 뭐든지 살 수 있는 삶을 살았다.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그녀는 길고 지독한 이혼과정을 거친 후 가슴 아픈 연애사건에 심각한 우울증까지 거치면서 더욱 황폐해진 자신을 붙들고 "자신이 진정 누구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얻고자" 홀로 일 년간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이탈리아에서 '맛의 쾌락'을 찾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재미있어진다. 그녀가 일 년간의 여행을 계획하다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탈리아에서는 쾌락의 기술을, 인도에서는 신을 섬기는 기술을,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둘의 균형을 찾는 기술을 찾는 여행. 그녀의 작명법에 의하면 우연히도 모두 I로 시작되는 이 세 나라로(Italy, India, Indonesia)의 여행을 두고 그녀는 'I(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운명적으로 암시하는 상서로운 기운이라며 호기롭게 떠난다. 길버트(그녀의 이름이다)는 세 나라를 여행하며 달콤한 쾌락과 초월적 신앙 사이에서 삶의 균형점을 찾기로 한다.

그녀는 먼저 첫 번째 여행지인 이탈리아에서 로마, 볼로냐, 플로렌스, 베니스, 시칠리아, 사르디니아, 나폴리를 두루 거치며 오직 맛있는 끼니를 위해 여행한다. 피스타치오를 뿌린 솜털 구름 같은 리코타 치즈, 두툼한 빵 조각이 떠 있는 향기로운 올리브 오일, 양파와 파슬리로 버무린 차가운 오렌지 샐러드, 그리고 초콜릿 피자까지.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것 외에 아무런 야망이 없다는 듯 그녀는 너무 맛있어서 감당하기 힘든 음식들을 찾아다니며 여행 속에서 완벽한 쾌락을 추구한다.

그렇게 그녀는 네 달 동안 무려 12킬로그램이나 늘어난 몸무게만큼 자신의 인생의 무게를 넓힌다. 작가는 로마에 넉 달간 머무르면서 박물관 등 명소의 관광(그녀의 고백에 의하면 딱 한군데 들리기는 했다. 바로 로마 파스타 박물관)은 젖혀두고 마을 장터에서 산 싱싱한 채소로 '나만을 위한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소박한 기쁨을 알게 된다.


'간까지 웃는 법'을 배운 여자
그리고 두 번째 여행지인 인도의 아쉬람에서는 인도인 구루와 지혜로운 텍사스 요기의 도움을 받아 명상 동굴 여전사가 되어 ‘엄격한 영적 수행’을 거친 뒤 비로소 자신만의 신을 만난다(사실 인도 부분은 너무 처절하고 힘들어서 읽는 내내 칼로리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발리 9대 주술사의 제자가 되고, 그에게서 '마음으로 웃는 법'(좀 더 정확하게는 '간까지 웃는 법'이라고 주술사는 말한다)을 배운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랑을 만나고, 마침내 행복하고 건강하며 균형 잡힌 삶을 찾는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한 편의 소설 같지만,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와 함께 안절부절하고, 다급하고, 초조하고, 행복하고 그랬다. 그리고 그녀가 끝까지 이 여행을 포기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내내 응원하며 읽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일은 아주 간단한 동사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복잡다단한 인생을 세 단어로 축약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세 동사를 여행을 통해 온 몸으로 확인한 그녀의 용기가 질투가 날 만큼 부러웠다. 허물없는 친구의 애정 어린 고백과 충고 같은 그녀의 글, 역시 책 읽는 여자와 여행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그것도 아찔하게 아름답게 위험하다.


글을 쓴 김은주는 뒤늦게 발을 디딘 잡지 기자로의 삶을 치열하게 살다, 한 달 유통기한인 잡지 일에 지쳐 최근 조금은 유통기한이 긴 단행본 만드는 일로 전업한 사람이다. 당분간은 아니 어쩌면 평생 '읽고, 여행하고, 사랑하는 일'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본 기사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2008년 여름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블로그에 맞게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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