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같은 고풍스러움도
미국과 같은 현대적 세련됨도 없지만
'언젠가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 있습니다.
'인도' 입니다.
다른 곳과는 달리 그곳의 거리를 거닐고만 있어도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는 인도...
아마 '문명의 발상지', '불교 성지'라는 수식어 때문은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무한도전팀도 '자아찾기'라는 이름으로 인도 로케를 다녀왔었지요...)
이번 '세계의 재래시장'편은 인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유럽의 재래시장과 같은 깔끔함과 앤티크함은 없을지라도
사람이 다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노점상이 매력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곳.
인도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향신료의 매혹적 향기와 강렬한 냄새가 눈과 코를 사로잡는
인도의 재래시장을 소개합니다.
모든 것은 길 위에 있다
인도
애당초 인도를 방문한 목적은 불교 성지순례였다. 부처와 관련된 유적을 돌아보는, 풀어 이야기하자면 성인이 태어나고 깨달음을 얻고 설법을 하고 열반에 든 장소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것이었다. 도시로 따지자면 델리(Delhi)에서 출발해 흔히 불교 4대 성지로 불리는 보드가야(Bodhgaya), 룸비니(Lumbini), 사르나트(Sarnath), 쿠시나가르(Kushnagar)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그런데 부처의 흔적을 지닌 힌두교의 땅에서 정작 눈에 밟히고 마음을 흔든 것은, 그리고 멀고도 아득해서 건널 수 없는 범재와 철인의 사이에서 무수히 명멸한 것은 종교나 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도 사람들의 표정과 살아 움직이는 길 위의 풍경이었다.
1 인도에서 가장 높은 승전탑인 쿠틉 미나르. 터키 노예 출신으로 델리를 장악하고 술탄이 된 쿠틉 옷 딘 에이백이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를 세우고 힌두에 대한 승리를 과시하기 위해 건설했다. 2 인도와 네팔의 국경 지대. 하루에도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왕래한다. 3 인도 건축물의 정화, 타지마할. 죽은 아내를 향한 황제의 가없는 사랑 혹은 광포한 집착. 4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클 릭샤들. 인도의 서민적인 운송 수단이다. 5 보드가야 거리의 노천 이발관.6 델리의 대표적인 유적지 가운데 하나인 쿠틉 미나르 앞의 음료수 행상.‘냉장 음료’라고 씌어 있지만 실제로는 별로 시원하지 않다.[사진:노중훈(여행칼럼니스트)]
시장을 애지중지하는 사람들
인도의 거리와 처음 대면한 사람들은 당혹스럽다. 차선과 신호등이 없는 도로 자체가 생경할 뿐만 아니라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오래된 자동차와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끌고 가는 사이클 릭샤와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짐을 실은 자전거가 한데 엉켜 흘러가는 모습은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보행자 친화적이지도, 환경 친화적이지도 않은 도로의 풍경은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거리에 충만한 생의 기운 때문이지 싶은데, 그 강렬한 생의 기운은 길 위에 형성된 재래시장과 다양한 형태의 노점상에서 솔솔 피어오른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뤄진 큰 폭의 경제 성장과 향후 무한한 성장 잠재력은 인도를 이른바 황금 유통시장으로 부상시켰다. 세계의 유수한 기업들이 이 거대 시장에 앞다퉈 몰려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도는 여전히 빈곤한 계층이 주를 이룬다. 한 보고서는 2010년이 되어야 인도 인구의 13퍼센트 정도가 중산층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유통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백화점을 비롯해 현대화된 유통시장을 통한 소매시장의 점유율은 2~3퍼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거의 모든 인도 사람들이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재래시장에 자신들의 생활을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열악한 삶의 조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도 사람들의 재래시장 사랑은 유별나다. 쇼핑몰을 재래시장 스타일로 꾸민 곳이 있을 정도다. 인도 최대의 토종 소매 유통 기업인 판타룬 리테일의 이른바 ‘난장판(chaos) 마케팅’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판타룬 리테일의 경영주는 서구의 브랜드 매장이 아닌 재래시장 분위기를 선호하는 인도인의 소비 특성에 주목했다.
예로부터 인도 사람들은 작고 비좁은 가게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깔끔한 포장 대신 행상들이 삼베 자루에 담아 파는 야채에 손이 간다. 밀과 콩은 어지럽게 널려 있어야 하고, 양파는 어느 정도 때가 묻어야 농장에서 갓 따온 신선한 물건으로 취급받는다. 매장 바닥도 재래시장이나 기차역 바닥처럼 회색의 화강암 타일로 깔아 친근감을 높였다. 긴 복도와 높은 선반 대신, 큰 상자에 물건을 담아 놓아 손님들이 내려다보며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시장 성격에 맞는 현지화 전략을 구사한 결과, 판타룬 리테일은 미국의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 업체를 압도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7, 9, 10, 11, 12 마하보디 사원으로 유명한 보드가야 거리에서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의 모습. 8 보드가야의 국제 사원 구역으로 가는 도중 마주친 승려들. 노천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13 사르나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인 물라간다 쿠티 비하르 부근에서 차를 마시는 현지인. 14 힌두교 성지인 바라나시의 골목골목에는 노천 시장이 형성돼 있다.[사진:노중훈(여행칼럼니스트)]
눈을 뜨면 ‘차이’부터 마신다
인도의 모든 거리에는 재래시장과 노점상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가 번화할수록 시장의 규모는 커지고 도붓장수들의 숫자는 많아진다. 보드가야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마하보디 사원으로 유명하다. 널리 알려졌듯이 부처는 보리수나무 아래서 중도의 도리를 깨쳤다.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이다. 지금 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나무는 1870년에 새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부처가 앉았던 자리는 세월의 적막을 경험했던 그 옛날과는 달리 수도승과 수행자와 관광객들로 빼곡하다.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가끔 진지하다. 때가 낀 맨발, 합장한 두 손, 깊게 패인 주름은 기도의 내용보다 더 즉각적으로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다.
마하보디 사원에서 나와 거리로 나서니 역시 노점들이 줄지어 있다. 다양한 먹을거리가 우선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은 ‘사모사’. 만두피처럼 얇게 빚은 밀가루 반죽에 각종 채소, 향신료, 고기 등을 섞어 속을 채운 다음 튀겨낸 일종의 만두다. ‘도사’는 하루 정도 발효시킨 쌀가루를 기름 두른 철판에 넓게 펴 구워낸 음식이다. 남인도에서는 주로 아침 식사로, 북인도에서는 간식으로 애용된다. 도사 안에 주로 감자나 양파, 향신료인 마살라 등을 넣어 먹는다.
마실 거리로는 단연 ‘차이(Chai)’가 돋보인다. 홍차 가루에 우유, 생강, 설탕 등을 넣고 끓인 차로 현지인들은 “차이 한 잔을 마시기 전에는 일도 하지 않는다”거나 “차이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인도 음식을 논하지 말라”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정도다. 점심 식사 후 ‘차이 타임’을 갖는 것이 일상의 풍경이며, 학교에서도 2시간 수업이 끝나면 차이와 과자를 간식으로 준다. 그야말로 국민 음료인 셈이다. 먹는 물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인도에서 차이와 같은 차 문화가 발달한 것은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인도인은 채식을 즐기며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유로 끓이는 차이는 칼슘 보충제이자 위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생강이 넉넉히 들어간 덕분에 감기 예방으로도 그만이다.
15 보드가야의 향신료 판매상. 다양한 계통의 붉은 빛이 인상적이다. 16 인도 사람들은 매끄럽게 포장된 것보다 좌판에 펼쳐 놓은 농산물을 더 선호한다. 17 위대한 어머니로 불리는 갠지스 강. 강물에 띄워 놓은 디아(꽃잎에 양초를 얹은 성구)에는 사람들의 정결하고 영롱한 기원이 어려 있다. 18 힌두교 신이 그려진 기념 카드. 19 갠지스 강가의 가트(힌두교도들이 기도를 올리고 목욕을 하는 강변의 계단)에서 디아를 팔고 있는 사내아이. 20, 21 부처가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로 가기 위해서는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데, 검문소 부근에도 어김없이 노점상들이 자리 잡고 있다. 22 정성스레 수염을 깎고 있는 거리의 이발사. 23 바라나시 다샤스와메드 가트의 도비왈라. 도비왈라는 평생 빨래만 하는 카스트 계급이다.[사진:노중훈(여행칼럼니스트)]
색깔과 향기로 유혹하다
인도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존재는 바로 향신료다. 열매, 꽃봉오리, 잎, 껍질, 뿌리 등을 빻거나 갈아서 만든 원색의 가루들이 눈을, 특유의 강렬한 냄새가 코를 동시에 사로잡는다. 향신료 가게를 무대로 삼은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에 “세상을 이해하려면 향신료의 섭리를 알아야 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향신료의 천국’ 인도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인도하면 무조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카레. 언젠가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는 책이 출간돼 인도 카레의 존재 여부를 놓고 사람들이 옥신각신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내밀자면 인도에는 카레의 정식 명칭, 즉 ‘커리’라고 부르는 요리가 없다. ‘카레’는 한국에서 요리를 의미하지만 인도의 ‘커리’는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한 소스 또는 양념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향신료는 작고 매운 칠리 고추, 검은 겨자씨, 카민 열매, 심황 뿌리 가루, 생강, 마늘 등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마살라’. 지역에 따라 들어가는 성분과 맛이 다르기는 하지만 계피, 고수풀, 회향, 건고추 등에 심황 뿌리 가루를 섞어서 만든다.
인도의 거의 모든 가정마다 이 혼합 향신료를 만드는 나름의 비법을 갖고 있을 정도다. 마살라는 단순한 향신료의 의미를 넘어 인도 문화를 대표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인도에서 요리사를 일컫는 마살치는 ‘향신료를 배합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인도의 전통음악과 서구의 팝이 합성된 것을 ‘마살라 음악’이라고 하며, 심지어 마살라 차이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어쨌든 마살라를 위시한 낯선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 여행객은 비로소 이방인의 신분을 실감하게 된다.
인도는 동양의 문화와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불교의 발원지임이 분명하지만 이제 인도에서 불교는 ‘마이너리티’일 뿐이다. 1퍼센트도 안 되는 사람들만이 불교에 의지할 뿐, 80퍼센트 이상은 힌두교를 믿는다. 관광객들도 힌두교의 으뜸가는 성지인 바라나시(Varanasi)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데, 바라나시에 도착하면 누가 닦아세우지 않아도 갠지스 강으로 발걸음을 놓게 마련이다. 위대한 어머니로 불리는 갠지스. 그 성스러운 곳에서 사람들은 씻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용변까지 처리한다. 화장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인간의 일상과 죽음이 교차하는 탁한 갠지스 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한 몸 안에 깃들어 있는 성과 속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바라나시에도 시장 골목은 형성돼 있다. 다채로운 빛깔의 열대 과일과 주로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과 일견 조악해 보이는 생필품들이 수북하다. 시장 통에는 거리의 이발관도 있다. 좌판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가는 사람들과 자전거 행렬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의 콧수염을 정성스레 매만지는 길 위의 이발사가 이채롭다. 이발사의 가위에 자신의 수염을 내맡긴 손님의 평온한 얼굴은 각박하지만 자족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일러주는 듯도 하다.
Travel Information
항공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이 각각 인천-델리, 인천-뭄바이 구간의 직항 편을 운영한다. 비행시간은 델리까지 7시간 30분, 뭄바이까지 8시간 정도 소요된다. 인도항공, 타이항공 등을 이용해 홍콩이나 방콕을 거쳐 델리로 가는 방법도 있다.
비자 및 날씨 인도에 입국하려는 모든 한국 관광객은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인도 비자 관련 서비스는 티티서비스코리아(www.ttservices.co.kr)에서 대행한다. 가장 대표적인 6개월 복수 비자를 발급받는 데 수수료 7만3,690원을 내야 한다. 불교 성지가 몰려 있는 북인도의 날씨는 일교차가 큰 편이므로 긴 소매 옷을 준비해야 한다. 자세한 정보는 인도관광청 홈페이지(www.incredibleindia.co.kr)를 참고하면 된다.
델리 시티 투어 후마윤의 묘(Humayun’s Tomb)는 무굴제국 두 번째 황제의 묘로, 후마윤의 첫 번째 아내인 하지 베굼의 지시로 1570년 만들어졌다. 페르시아 출신의 건축가 미락 미르자 기야스가 설계했으며, 그 유명한 타지마할의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후마윤과 베굼 이외에 무굴의 마지막 황제 자리를 놓고 아우랑제브와 충돌했던 다라 시코, 무굴의 마지막 왕 바하두르샤 2세 등 궁정의 주요 인물 150여 명이 함께 잠들어 있다. 쿠틉 미나르(Qutab Minar)는 72미터에 이르는 승전탑. 1~3층은 붉은 사암, 4~5층은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사원 앞마당에는 등을 대고 뒤로 깍지를 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쇠기둥이 박혀 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노중훈은 MTB 마니아다. 여기서 MTB는 마운틴바이크가 아니라 Movie, Travel, Baseball의 앞 글자를 의미한다. 급격히 불어난 몸 때문에 산악자전거는 커녕 산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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