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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한권의 책] 여자, 서른과 마흔사이...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가을을 맞아 소개해 드리는 '한권의 책 시리즈',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라는
제법 자극적인 부제가 붙어있는 일종의 수필,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입니다.

표지에는 왠 여인이
편안한 복장으로 아이를 안고 서있습니다.
나무로 된 창고같은 곳인데, 이상스럽게 자유롭고 멋스러운 느낌을 주네요.

이 책은 스물아홉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여자의 이야깁니다.  
그곳에서 자기보다 스무살이나 연상인 예술하는 남자와 사랑을 합니다.
결혼하지 않고, 그 프랑스 남자와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아이도 낳고요.

어떻게 보면 자유롭고 매력적인 삶이고
어떻게 보면 그 자유로움이 꽤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 ^
하지만 뭔가 ㄷㄱㄷㄱ 하면서 끌리는 삶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쓰신 필자분이
'서른과 마흔사이에 갈팡질팡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쥐어주고 싶은 책'
이라고 하시더군요.

흠- 어떤 책이길래...
그럼 함께 고고고~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서른 이후에도 인생은 시작된다

시시껄렁한 소설보다 잘 꾸려진 인터뷰 한 편이 마음을 큰 진폭으로 움직이게 할 때가 있다. Q와 A사이의 적당한 긴장감과 은근슬쩍 상대의 폐부를 찌르는 질문, 그리고 그 폐부에서 새어 나오는 진심과 진실. 은밀히 나누는 사적인 대화 같지만 보이지 않는 관객을 은근히 의식하는 질문과 답은 사람을 묘하게 흥분시킨다. 최근 뉴욕으로 연수를 다녀온 아나운서 김지은의 인터뷰를 보다가 나는 조금은 달뜨고 심지어는 ‘용기’같은 게 불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안하다고 아무 곳에나 연착륙 하지 말길

아나운서 김지은에게 물은 인터뷰 질문은 이러했다.

“당신을 일종의 멘토로서 동경하는 여자들이 많을 것 같다.
혹시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답은 이랬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가 궁금한가? 어떤 것이 궁금한가?
그러한 궁금증을 당신 자신에게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정말로 어떤 사람인가?
시간이 걸린다 해도 당신 내면의 열정을 함부로 외면하지 말길.
불안하다고 해서 아무 곳에나 연착륙 하지 말길.
차라리 불시착이 나을 수도 있다. 먼 인생을 보면.”

중간중간 그녀의 사생활을 캐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질문도 많았지만 그녀가 인터뷰 말미에 남긴 이 말. ‘먼 인생을 보면 연착륙보다 불시착이 나을 수도 있다’는 이 말은 조용히 그러나 깊숙하게 내 마음에 쿵 하고 자국을 남겼다.


서른과 마흔 사이의 여자

서른과 마흔 사이, 여자의 인생은 심하게 흔들린다. 화산폭발이나 강도 7정도의 강진 같은 외부적 흔들림이 아니라 밖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이나 내부적으로 무너져 함몰하는 그런 흔들림이다. 파산을 한 것도 아니고, 파경을 겪은 것도 아닌데 인생은 점점 오리무중에 첩첩산중이라는 느낌이다. 살면서 뭐 하나 쉬워지는 게 있어야 하는데 점점 어려워지거나 힘이 드니 그거야말로 인생의 수수께끼라는 생각이 든다. 일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최후의 안전지대라고 생각한 가족문제까지. 공식적인 질풍노도의 시대도 지나왔건만 겉잡을 수 없는 혼란과 혼돈 속에서 속절없이 나이만 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가장 에너지가 충만해야 할 이 시기에 여자들은 쉽게 ‘타협’하고 ‘굴복’하고 만다.
 
‘인생 뭐 별거 있나’,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 나도 그렇게 살아가자’.


그래서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직장생활에서도 모나지 않게 둥글게 둥글게 적응해 나간다. 내 욕망이 무엇인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그런 복잡하고 머리 아픈 고민은 슬쩍 미뤄둔다. 그리고 나 자신도 이런 행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누가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위협하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사회에서 정해 둔 보통의 삶,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크게 궤도에서 벗어나본 기억이 없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 없이 살기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제법 자극적인 부제가 붙어있는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레디앙 펴냄)을 읽으면서 내내 자기반성과 후회와 용기 같은 것들이 뒤범벅인 채로 단숨에 읽어버린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파리로 유학을 간 스물 아홉의 목수정은 파리 빈민가에서 자기보다 스무 살도 훨씬 나이가 많은 프랑스 예술가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결혼 없이 아이를 낳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법적으로 ‘비혼’인 채로, 프랑스에서는 시민연대계약을 한 동거인으로 발칙하고도(동거가 발칙하다기보다는 기존의 한국 여자가 가지고 있던 단단한 틀을 깨는 그녀의 일상은 같은 여자로서 통쾌한 기분까지 느끼게 된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무엇이 되기 위한 인생보다는 온전히 자유로운 의지로 진화하는 자신의 욕망에 화답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그녀는 충동질의 대가다.

좁은 선택의 틀에서 괴로워하는 한국 여자들에게는 다른 나라로 떠나라고, 안온한 삶에 몸이 근질거리는 프랑스 남자들에게는 한국이나 일본으로 가라고 충동질한다. 그렇게 해서 잠시 다른 질서 속에 방황하는 것, 자유 속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들을 고르는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녀는 평소 글을 써온 사람이 아니지만 어찌나 삶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지, 제법 두툼한 책이 무서운 흡인력으로 읽힌다.


온돌과 침대 사이, 문명의 충돌

프랑스남자와 결혼 ‘없이’, 시민연대계약을 나눈 한국여자는 온돌과 침대, 고도 1미터 차이만으로도 엄청난 문명충돌을 겪는다. 뜨끈한 온돌방 대신 봄볕을 받으며 길바닥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 대해 거침없는 격론과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 뿐인가. 사랑의 이름으로 합체를 이뤘지만 1세계의 남자로 수 십 년을 살아온 남자와 2.5세계의 여자로 수 십 년을 살아온 이 둘의 삶은 때로는 읽는 이까지 황홀하게 하기도 하고 내가 겪는 불화처럼 뜨겁고도 치열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치열하고 솔직하게 ‘여자의 일생’을 살고 있는 그녀의 이 말은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어떤 세월도 또 다른 세월을 위한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의 20대, 30대, 40대는 모두 똑같이 소중하고,
나의 모든 시간들에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즐거움을 배분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

이제 그녀는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녀의 서른부터 마흔까지의 삶을 읽다 보니, 갑자기 서른 이후에도 인생은 시작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밀고 나가며, 자신을 충동질 하는 그녀가 부럽기만 하다. 혹시,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두 손에 슬며시 쥐어 주고 싶은 책이다.


글을 쓴 김은주 주변인들로부터 ‘주식회사 대화상대’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상담의 달인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다소 자기방임형인 인물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고 꾸준히 책을 읽고는 있지만 여전히 ‘마이 웨이’는 못찾고 있는 인생 길치다.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