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OHAS Life

[인터뷰] 그린 디자이너, 윤호섭 교수를 만나다

풀사이 가족분들은
'윤호섭 교수님'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평소 환경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분들이라면
몇번은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윤호섭 교수님을 부를때 꼭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바로 '그린 디자이너' 인데요.

모두의 문제인 환경을 위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디자인' 분야에서 선구적 노력을 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직접 그린 디자인도 하시지만,
그린 디자인 교육이나 전시회를 통해 다양한 메시지도 전달하시는 분이랍니다.

지난해에는 <2008 디자인 올림픽>을 통해 그린 디자인에 대해 알리시더니,
얼마전에는 버려진 쓰레기를 디자인하여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전시회
<Everyday ARTday Everyday eARThday!> 를 여셨더라구요.

이렇게 다양한 노력을 하고 계시는
윤호섭 교수님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 담는 큰 그릇>에 실려있어
풀사이 가족분들과 환경에 대한 그분의 생각을 나누고자 소개해 드립니다.

그린 디자이너 윤호섭
사람들 영혼에 녹색 유전자를
심는 날까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간에겐 누구나 원죄가 있다.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생활쓰레기를 배출하는 종으로서 말이다. 분리수거를 하고, 재활용을 하고, 친환경 제품을 사용한다 해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환경과 생태에 해를 끼치는 일은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현존하는 인간 중 누가 이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런 물음을 간직한 채 <2008 디자인 올림픽>의 한 부스를 찾았다. 지난해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정년퇴임 한 그린 디자이너 윤호섭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1943년생이다. 윤호섭 교수의 생물학적 나이를 굳이 밝히는 이유는, 그가 작품활동을 통해 전달하는 환경과 생태에 대한 메시지 말고도 다른 것들을 대한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교조적이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신념과 실천을 담담하게 설명하는 모습만으로도 훌륭한 강의였다. 나이로는 노인(老人)이지만 눈빛이 보여주는 윤호섭 교수의 정신은 청년이었다. 훗날 환갑을 지나고도 저런 눈빛을 지닐 수 있다면, 자신의 신념과 주관을 확립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톡스나 의학적 기술로도, 형형한 눈빛을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가발전하는 자만의 독보적인 에너지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 생각하는 사람보다 행하는 사람이 멋있고, 행하는 사람보다 나누는 사람이 멋있다. 그리고 가장 멋있는 사람은 행하며 나누는 사람이다.


일본에서 만난 그 청년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1년 세계 잼버리 대회에서 만난, 일본 대학생 미야시마. 이 청년은 호세이 대학 환경동아리 회장이었다. 미야시마 군이 잼버리 대회 심볼을 디자인한 윤호섭 교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주로 환경과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 이전에는 전혀 그에 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가, 그 청년의 질문으로 윤호섭 교수는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답변을 해주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기 시작했다. 윤호섭 교수가 전시 행사 때문에 일본에 가게 되면, 만나서 함께 가기도 하고, 유창하지 못한 영어지만, 같은 주제로 대화하면서 공원에서 주먹김밥을 먹기도 했다. 하루는 미야시마 군의 집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방에 환경 관련 자료들이 가득했다. 미야시마 군이 한국의 환경보호운동 자원봉사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 풀타임인지 파트타임인지를 물었다.
이때만해도 윤호섭 교수는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으로 환경보호를 위해 자원봉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개념이 없었다. 이렇게 얘기를 듣고 여러 가지 사례를 접하다 보니 환경과 생태를 내버려둬선 안 되겠다는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윤호섭 교수의 명함. 잉크를 덜 쓰기 위해 일일이 손글씨로 이름을 넣었는데 그게 더 멋스럽다. 2 <2008 디자인 올림픽>에 마련된 그의 전시장. 일부러 꾸미지 않은 전시 공간이 독특하다.



차도 폐차시키고 냉장고도 없애고
1990년대 초, 환경에 대한 사안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는 아니었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윤호섭 교수는 작품을 통해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형대학장으로 임명된 이후,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에 그린디자인 관련 강의를 개설했다.
“학창 시절에 운동만 했어요. 운동을 많이 좋아하죠. 그래서 골프도 했었고. 좋아했죠, 많이. 그런데 골프는 딱 끊었어요. 제가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니까.” 그는 골프만 끊은 것이 아니다. 냉장고도 없앴다. “처음에는 쉬쉬했어요.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불편하진 않느냐, 냉장고 없이 어떻게 사냐 등등. 살아져요. 음식 먹을 만큼만 그때그때 사다 먹으면 되고, 간단히 먹으면 되고. 저장 음식은 다른 방법으로도 저장할 수 있는 방식이 있고. 말리거나, 뭐 그런 것들.” 그래도 왜 없앴는지 궁금했다. “다른 건 껐다 켰다 할 수 있는데, 냉장고는 24시간 전기를 사용하잖아요. 부피도 크고. 에너지 독립을 생각하면서 실천한 일 중 하나죠. 저희가 만든 ‘친환경 냉장고’ 보셨어요? 전기 없이, 고체소금으로 열을 내리고 음식을 차게 보관할 수 있어요.”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 600리터가 넘는 거대한 냉장고를 사고도 김치냉장고를 하나 더 사는 것이 일반적인 요즘, 과연 집에서 얼마나 많은 음식을 신혼부부가 해먹겠는가. 그의 지적에 가슴이 뜨끔했다. 이 뿐인가. 그는 타던 차를 폐차시키고, 에너지 독립을 말하면서 자전거로 수유리에서 정릉에 있는 국민대학교까지 출퇴근을 했다. 초기에는 전기 자전거를 사용했지만 배터리 역시 재활용이 안 된다는 이유로, 페달을 밟는 무동력 자전거로 바꿔 탔다. 그의 집과 작업실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하다. 언제 사용할지 몰라서, 작품 소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다시 사용할 일도 있어서 쓰레기로 버리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4,9 동물로 만든 사람얼굴부터 벌레먹은 낙엽 등 전시장 곳곳에는 아이디어와 환경메시지가 결합된 그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 아름다운가게에서 기증한 헌 티셔츠 1,000장에 친환경물감으로 환경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린다. 6 자연 발효중인 낙엽 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7 1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받은 숫자를 조합하여 만든 친환경 달력. 일요일을 비워둔 이유는 붉은색 잉크가 더 환경친화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8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빔프로젝터와 노트북을 돌릴 수 있는 에너지가 생성되는 그의 전시물.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 전기없이, 열을 내리고 음식을 차게 보관할 수 있는 고체소금. 그가 고안했다.



바다 속 산소는 누가 다 없앴나
“음식쓰레기도 문제죠. 사고할 줄 안다면, 음식을 남겨서는 안되죠. 먹을 만큼만 놓고 먹어야죠.” 얼마 전 식당에서 ‘반찬 재활용’을 한다는 뉴스보도가 있었다. 손님이 남긴 반찬을 다시 다른 손님에게 새 그릇에 담아 내놓는다는 것. 이에 많은 이들이 ‘위생’문제를 거론하며 식당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지인 중 누군가가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고 난 뒤, 음식을 다 섞어버리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근본적인 해결책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인데. 음식쓰레기가 환경에 미칠 영향은 또 어떻고. 그리고 그건 대체 무슨 낭비란 말인가? 고급교육과정을 거치고도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세상엔 못 먹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들 생각을 한다면 양심상 음식을 버릴 수 없죠. 그리고 음식쓰레기로 물이나 땅이 오염되구요. 음식재료를 산지에서 가져오는 물류비용이며, 인건비도 다 낭비가 되는 겁니다. 배운 사람들이, 인식이 있는 사람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눈감고 귀 막은 상태인 것 같아요. 깨어나야죠.” 윤호섭 교수는 덧붙여 말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음식쓰레기로 물이 오염되죠. 적조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하구요. 그로 인해 바닷속의 산소가 없어지죠. 생태계의 절멸을 초래하는 겁니다. 바다 위에 기름이 유출된 사고로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을 받지만, 바다 속의 산소가 없어지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가 바닷속에 산소가 없어지는 건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게 우리가 남긴 김치찌개 같이 일상적인 음식 찌꺼기를 버리는 일로 생기는 겁니다.” 음식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아마 우리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과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부분을 더더욱 신경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매일 같이 저지르는 일 중 하나만 줄이더라도 환경에는 긍정적일 테니. “환경은 모든 가치에 앞선 개념이에요. 생태계가 파괴되는 건 끝나는 거잖아요. 디지털 테크놀러지니, 유전공학이니, 아트니 인류가 이룩한 것들이 존재할 장이 없어지니까요. 독도가 우리땅이면 뭐해요? 환경이 파괴되면 무슨 소용이냐고요. 정치가, 법 관련 종사자, 교육가는 누구보다 앞서서 환경을 최우선가치로 두어야 한다고 봐요.”


디자이너의 원죄를 반성하다
“마케팅, 광고 디자인,…. 그런 일을 오래 했었죠. 소비를 자극하는 일을 도왔으니 이것도 원죄라고 봐야죠. 하지만, 이제는 기업들이 그린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어요. 실제로 에너지 절약, 포장 디자인에서는 성과가 있어요. 하지만, 이게 너무 광범위해서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어요. 게다가 비용이 오르는 경우가 많아서 타 기업과 경쟁하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환경과 생태를 생각한다고 해서 모두 귀농해 자급자족의 삶을 영위하며 채식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각자 자신이 맡은 소임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생활에서 조금만 뒤돌아보면, 환경과 생태를 위한 실천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리수거, 생활쓰레기 줄이기, 물 아껴쓰기 같은 것들. 윤호섭 교수는 디자인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서 찾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은 모두 천연 소재, 혹은 재활용 소재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아무리 멋진 모양, 편리성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디자인이라도 물과 공기를 오염시킨다면 환경파괴의 앞장을 선 주역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디자인의 소재부터 원칙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죠. 생태윤리에 관한 것들이 녹색공감으로 이어지려면 말이죠.” 이에 한 가지 반론을 얘기했다.

자본주의에선 소비 역시 미덕이다. 실제로 경제 상황이 안 좋을 때 소비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한다. 절약하느라 쓰던 물건 또 쓰고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다 보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사회에선 악(惡)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에서 소비가 활성화되어야 하니, 재활용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라는 말 자체는 맞는 말인데, 지금 다 같이 지구를 밟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없어진다면요? 그럼 거기서 자본주의 발전 얘기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자본주의에서 제품들의 무분별한 생산과 돈을 좇는 욕구, 우리는 정말 가공할만한 난센스의 장에 들어와 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니 소비를 하되, 착한 소비를 해야죠. 친환경적인 생산 제품을 구입하거나, 지구를 덜 오염시키는 제품을 구입하는 등 착한 소비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 깔고 앉은 광목천 또한 행사에서 사용했던 재활용 천이자 전시품이다.



탐욕, 전쟁, 생명경시도 문제
윤호섭 교수의 작품들은 사실 환경과 생태보전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전쟁의 해악, 대안 무역으로 분배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 인간의 오만한 생명경시 사상을 환기시키는 일 등 다양한 메시지들을 작품을 통해 표현한다.

“지금 우리가 생태 환경을 얘기하잖아요. 물이나 공기에 대해서. 그런데 사실 정신적인 공해, 저는 ‘영적인 공해’라고도 말하는데, 그런 것들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충격적인 사례들이 정말 많아요.” 윤호섭 교수는 맛있는 간을 먹기 위해 거위에게 변태적 고통을 가하고, 소와 코끼리를 밤새워 일을 시키기 위해 눈에 후춧가루를 뿌리고, 고양이 새끼를 입구가 작은 유리병에 넣어 키우는 등의 믿기 어려운 사례들을 들려주었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하자 그가 설명을 더했다.

“인간이 모두 착하지는 않죠. 어떤 변태적 성향이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작은 고양이를 유리병 안에 넣어 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걸 상품화해서 팔고, 그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문제가 있죠. 생명을 존중하는 인식이 없는 겁니다. 당장 돈을 버는 데 급급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12 5월 5일 어린이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아이들과. 이때도 종이컵을 재활용한 팔레트를 직접 제작해 아이들에게 환경사랑 마음이 전해지도록 애썼다. 13 환경보호 메시지를 담아 디자인한 멋스러운 배지들.


환경을 생각하는 필수 유전자
윤호섭 교수는 디자인이 공기처럼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그런 일들을 환기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자 한다.“‘그린디자인’이라는 이름처럼 ‘그린’이 따로 붙을 게 아니라, 디자인 안에 환경에 대한 의식이 스며들어있어야죠. 지금의 환경에 대한 교육은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한 대응책 마련과 앞으로의 비전만을 지향하잖아요. 사람들의 정신과 영혼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의 오만함을 버리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질러진 일을 수습하는 것보다, 미연에 방지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잖아요.” 윤호섭 교수를 만나고 전시장 구석구석을 채운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았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환경을 생각하는 필수 유전자가 생성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 이종혜는 가뭄에 콩 나듯 잡지에 글을 쓴다. 열심히 일한 적도 없으면서 떠날 궁리만 하는 그녀는 한심해보이지 않기 위해 날마다 책을 읽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2008년 겨울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