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사이 가족 여러분은
어제 뭘 드셨나요?
지난 주에는요?
지난 달에는요?
23년 전에는요?
대답이 불가능한 이 질문에
손쉽게 답할 수 있는 단 한명이 있답니다.
바로
일본의 여행사 직원인 시노다 나오키 씨인데요.
1990년에 후쿠오카로 전근을 가게 되며
현지의 맛있는 음식들을 기록하자는 생각으로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식사를
기록하기 시작했거든요.
20대에 시작한 기록은
50대가 될때까지 이어졌고
식사 일기가 무려 45권! (2013년 기준)
간편하게 기록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남아 더 의미가 있는
그의 식사 일기가 책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인데요.
23년간의 식사 기록은 물론
음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평범한 샐러리맨의 일상까지 엿볼 수 있는
이 책을 풀사이 가족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샐러리맨 23년의 기록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무심히 마주했던 수많은 삼시세끼를 누군가는 온몸으로, 온 마음을 다해 먹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부럽다. 샐러리맨이 그린 삼시세끼를 들여다본다.
‘찍는다’와 ‘그린다’의 차이
영국의 한 경매회사에서 운영하는 경매학교의 커리큘럼은 이렇다. 오전엔 이론 수업, 오후엔 박물관이나 장인의 작업실 등에서 진행되는 현장 수업. 현장 수업 후엔 각자 원하는 유물 또는 작품 앞에 앉아 스케치를 시작한다. 서너 시간 동안 쓱싹 쓱싹. 스마트폰 카메라에 수천 장의 이미지가 담기고, 그 해상도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뛰어난 세상인데 무슨 한가한 짓인가 싶겠지만 ‘찍는다’와 ‘그린다’의 차이는 굉장하다. 문 뒤의 그림자는 뭐지, 웃고 있는 게 아니었나, 좌우가 달랐구나, 저 색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등등. 0.001초 만에 셔터를 눌렀다면 절대 알 수 없는 수많은 진실과 감동.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를 보면서 그 경매학교의 수업시간이 떠올랐다. 샐러리맨이 그린 삼시세끼와 경매학교 학생들이 그린 작가의 작품. 무심히 마주했던 수많은 삼시세끼를 누군가는 온몸으로, 온 마음을 다해 먹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부럽다.
매일 자신이 먹은 것을 그린다는 것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시노다 나오키 지음, 앨리스 펴냄)는 지은이가 1990년 8월 18일부터 2013년 3월 15일까지 23년 동안 매일 먹은 세끼 전부를 그림과 짤막한 글로 적어 기록한 것을 골라 실은 책이다. 여행회사 직원 시노다 씨는 스물일곱 살이던 1990년 8월 후쿠오카로 전근을 가게 되면서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기록해보기로 결심하고는 대학노트를 사서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식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립 후 식생활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자신이 먹은 것을 그리고 짧은 감상을 곁들이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붙어버렸다.
23년, 무려 45권의 식사일기
20대의 청년은 이제 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식사일기를 적은 대학노트는 무려 45권(2013년 기준)! 이 책 속 그림이 미학적으로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작가도 아니고 그림 천재도 아니니까. 하지만 성실한 그의 묘사는 우리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펼친 두 면 가득 그려진 갖가지 꼬치, 초밥, 라멘 등의 음식은 꽤 멋지고 그림 옆, 맛 설명에는 위트가 넘친다.
100엔 초밥집에서의 점심. 날새기 초밥을 먹으며 날새기는 어떤 생선인지 궁금해 하고, 달걀말이 초밥은 달걀말이에 육수가 잘 배었고 달지 않다며 만족스러워하며, 관자 초밥은 정말 관자일까 의심스러워한다. 돈가스 초밥을 뜬금없어 하지만 뭐든 초밥 재료가 될 수 있음에 긍정의 한 표를 던진다. 식어서 그리 맛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붙긴 했지만. 미트볼 초밥은 마요네즈가 묘하게 어울린다면서 ‘오랜만에 짜증이 확’이라고 적은 걸 보곤 웃음이 났다. 하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재미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속에는 그의 그림식사 일기와 함께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사회 변화 등도 함께 기록되어 있어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면, 두 딸의 탄생 순간들. 1993년 6월. 첫 아이가 태어났다 2.88kg. 건강한 여자아이. 서른이 되어 처음으로 내 아이를 팔에 안은 초보 아빠는 아이의 몸무게와 감촉을 기억에 새긴다. 이 날 먹은 축하 음식은 붉은 찰밥. 원래도 찰밥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오늘의 찰밥은 더욱 특별하다. 그로부터 3년 후 둘째 딸 탄생. 산기가 있는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간 아빠는 첫딸 분만에 만 하루가 걸렸기 때문에 초밥을 2인분이나 먹어치우며 만반의 대비(?)를 했지만 무사히 둘째 탄생. 그날 먹은 초밥 그림엔 아빠의 안도감과 기쁨이 담겨있다.
혀와 위에 새긴 기억에만 의존하여
시노다 과장은 귀가 후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날 먹은 것을 15~30분간 노트에 기록했다고 한다. 음식을 사진으로 찍지 않고, 현장에서 스케치나 밑그림도 그리지 않는다. 원칙은, 오직 보고, 느끼고, 혀와 위에 새긴 기억에만 의존해 그리기. 매일의 의연한 기록. 어쩌면, 열심히 살아내기만 한다면, 평범한 삶이라도 예술 못지않게 충분히 아름답고, 종교 못지않게 충분히 고귀한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읽어도 좋지만 문득 생각날 때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 봐도 좋다. 별거 아닌 듯싶은데 곱씹을수록 정이 가고, 고만고만한 끼니인 듯싶은데 대단한, 그래서 책꽂이에 계속 꽂아두고 싶은 희한한 책이다.
이미지 제공. 앨리스
글을 쓴 한정혜는 음식과 문화, 환경 속에 깃든 이야기를 찾아 글을 짓고 알리는 일을 한다. 바람은 자연스럽게, 맛있게, 일하기.
ㅣ본 콘텐츠는 풀무원 웹진 <자연을담는큰그릇[링크]>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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