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식재료들 중에
이렇게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식재료가 또 있을까요?
그 정체는
바로 고수.
동남아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향신료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향수로 사용했을 정도로
강한향을 자랑하는 탓에
동남아 지역 여행책 첫장에는 늘
현지어로 '고수 빼주세요 라고 말하는 법' 이 실려있곤 할 정도!
심지어 나는 '고수가 싫어요' 라고 적힌 옷도 있다고 하니
고수에 대한 호불호가 얼마나 심한지 아시겠죠?
하지만~
심한 호불호 만큼이나
한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다는 사실!
알고보면 5천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향긋한 마법의 풀 고수~.
고수 불호에서
고수 호호호~ 로~
고수 러버가 되기 위한
그 첫걸음으로
먼저 고수랑 인사를 해보는건 어떨까요?
안녕, 고수야?
치명적인 매력, 마법의 풀 ‘고수’
그리스에서는 향수로 사용했고, 이집트에서는 와인에 넣어 마셨다. 스프링롤과 쌀국수에만 얹혀 나오는 줄 알았더니 커리, 빠에야, 피클에도 두루 쓰인다. 잎이면 잎, 줄기면 줄기, 무려 씨앗까지도 빠짐없이 활약한다. 우리에겐 아직 낯설지만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마법의 풀 ‘고수’의 매력을 알아보자.
#제이미 올리버와 코리앤더
우리나라에 푸드 전문 채널이 생기기 시작하던 십여 년 전.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제이미’s 키친>에선 요리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개구쟁이 영국 셰프 제이미는 앞치마도 매지 않고 계량도 대충, 칼질도 대충, 뭐든 얼렁뚱땅 대충이면서도 몇 분 만에 근사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 냈다. 자연주의 요리를 표방하는 그가 가장 좋아한 식재료는 올리브오일과 특히, 코리앤더. 스프, 스튜, 커리, 샐러드, 드레싱, 소스, 요거트, 샌드위치, 고기 요리, 해산물 요리 등 어디에나 넣었는데 그때마다 판타스틱! 어메이징! 리얼리 리얼리 굿! 등의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가 정말 좋아죽겠다는 표정으로 “아이 러브 코리앤더!”를 외칠 때면 한숨이 나왔다. 서양엔 저런 마법의 풀도 있다니. 아, 부럽다.
#스님과 고수
사찰음식 강연장. 강의는 스님의 추억담으로 시작되었다. “출가 전에 사찰에 가면 스님들이 고수를 좋아하는 저를 보며 넌 스님 팔자를 타고 났나보다 그러셨어요. 그때만 해도 속세에서는 잘 볼 수 없어서 고수 먹는다는 생각에 절에 가는 길이 즐거웠어요. 스님들은 고수를 참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이 달래장을 먹듯 사찰에서는 고수장을 많이 먹어요. 양념장에 달래 대신 고수를 송송 썰어 넣어보세요. 밥에 고수양념장을 넣고 쓱쓱 비비면 밥이 꿀떡꿀떡 넘어갑니다.”
코리앤더, 실란트로, 이름은 달라도 고수랍니다
스님의 풀과 제이미의 풀은, 같은 풀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우리가 고수라고 부르는 이 풀을 영어권에서는 코리앤더(coriander), 스페인어권에서는 실란트로(cilantro), 중국에서는 샹차이(향채,香菜), 태국에서는 팍치 등으로 부른다. 미국에서는 통후추처럼 생긴 고수의 씨를 향신료로 쓸 때는 코리앤더, 고수의 잎을 쓸 때는 실란트로라고도 한다.
5천 년 넘게 사랑받아온 허브
미나리과의 채소인 고수는 생김도 미나리와 비슷한데 미나리보다는 잎이 좀 작다. 원산지는 지중해 부근으로, 강렬한 향과 효능을 지녀 5천여 년 전부터 위상이 남달랐던 허브이자 향신료다. 그리스에서는 향수로, 로마에서는 빵에 향을 낼 때, 이집트에서는 와인에 넣어 마셨다고 하며, 히포크라테스는 속이 쓰릴 때, 발작이 일어났을 때 먹는 약으로 권했다고 전한다. 한방에서는 고수 열매(씨)가 위를 튼튼하게 하고, 소화를 돕고, 기침을 멎게 하며, 입 냄새를 없애준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방부 효과다. 고수 속에는 마늘이나 후추처럼 세균을 죽여 부패를 막는 항균성분이 들어 있다. 고수 씨에서 추출한 기름이 식중독균과 항생제 내성을 지닌 슈퍼박테리아와 같은 치명적인 박테리아를 죽이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더운 동남아 지역의 음식에 고수가 유독 많이 들어가는 건 이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프링롤에도 빠에야에도 들어가
고수는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먹는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채소여서 평생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많은 이들이 이미 알게 모르게 이 땅에서 혹은 여행 중에 고수를 접한 일이 있다. 여러 향신료들의 조합인 카레를 비롯해 쌀국수, 스프링롤(베트남), 톰얌쿵(태국), 굴 오믈렛(싱가포르), 커리(인도), 타코, 살사소스(멕시코), 세비체(페루), 빠에야(스페인) 등은 모두 고수가 들어간 음식이다. 동남아시아의 모든 음식에서 나는 독특한 향은 거의 고수에서 나온다고 해도 될 정도다. 서양에서는 중국 파슬리라고 불릴 만큼 중국 사람들도 정말 좋아해서 죽, 탕, 국수, 딤섬, 고기요리 등 대부분의 중국음식에 들어간다.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서도 우리의 파처럼 흔하고 또 즐겨 먹는다.
잎, 줄기, 씨앗 모두 사용해요
고수는 잎, 줄기, 씨앗을 모두 먹는다. 생으로도 먹고, 말려서도 먹고, 혹은 씨에서 뽑은 기름을 쓰기도 한다. 푸른 고수 잎에서는 그 향(!)이 나지만 잘 익은 씨에서는 달콤하고 신비한 향이 난다. 대개 동양에서는 보드라운 어린잎과 줄기를 생으로 먹고, 서양에서는 주로 씨와 잎을 말려 먹는다. 말린 가루는 소시지, 술, 과자 등에 향을 낼 때, 고기나 생선의 나쁜 냄새를 없애고 풍미를 더할 때 주로 쓰인다. 피클을 만들 때는 씨를 통째로 넣기도 한다.
황해도 고수김치를 아시나요?
알고 보면 우리의 고수 역사도 꽤 유구하다. 고려 때 처음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고수를 먹을 줄 알아야 스님 노릇 할 수 있다.”는 말처럼 주로 사찰에서 재배하고 먹었다. 민가에서는 보기도 먹기도 흔치 않았지만 뜻밖에 북쪽에 사는 황해도와 개성 사람들은 고수김치를 즐겼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2>(현암사 펴냄) ‘향토음식-황해도’편에 따르면 이곳 사람들은 고수를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강회로, 생으로 무쳐 생채로 먹거나 김치 안에 넣어 즐겨 먹는다.
호불호가 강한 신비한 맛과 향
고수의 매출이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지만 여전히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지독히 싫어한다. 고수의 치명적인 매력이자 단점인 독특한 맛과 향 탓이다. 오죽하면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웹사이트가 생겼을까(이 웹사이트에서는 ‘나는 고수가 싫어요(I Hate Cilantro)’라고 적힌 티셔츠를 판다.).
하지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미각을 깨우고 싶다면 고수와 만나보길. 고수 마니아들은 김치찌개, 라면을 끓일 때도 고수를 넣는다. 삼겹살을 먹을 때 쌈으로 곁들여도 별미다. 이 제안이 못미덥다면 일단 스크램블드 에그부터 시작해보자. 고수 잎을 조금 넣는 것만으로도 간단한 달걀 요리가 놀랍도록 독특하고 고급스러워질 테니 말이다. 실로 고수가 마법의 풀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고수 스크램블드 에그 또띠아’ 요리법 보러가기]
사진. 톤 스튜디오
요리와 스타일링. 그린테이블 김윤정
글을 쓴 한정혜는 음식과 문화, 환경 속에 깃든 이야기를 찾아 글을 짓고 알리는 일을 한다. 바람은 자연스럽게, 맛있게, 일하기.
ㅣ본 컨텐츠는 풀무원 웹진 <자연을담는큰그릇[링크]>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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