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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아빠는 요리사 -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아빠의 요리

<아빠는 요리사>
아빠, 오늘은 무얼 만드셨어요?


만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지만, 너무 긴 시리즈물은 늘 예외였다. 일본 만화들은 ‘얼마나 많은 권수가 나오느냐’가 곧 인기의 척도이긴 하지만 아랑곳 않는다. 10권만 넘어가도 질려버리는 탓에 보지 못한 명작들도 꽤 된다. 그 유명하다는 <슬램덩크>조차 몇 권 읽다 말았을 정도니, 어디 가서 만화 좋아한다고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물론 “어린 시절,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드래곤볼> 때문에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고 강변하면 다들 이해해주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 ‘다음 권에 계속’을 외치는 만화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분명 고문이다. 반대로 한 권 한 권 재미있게 읽다 보니 어느새 꽤 긴 시리즈가 된 만화도 있다. 현재 93 권까지(한국판 기준) 나온 <아빠는 요리사>(학산문화사 찬스 스페셜 코믹스/우에야마 토치 지음)가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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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본 지가 언제더냐
<아빠는 요리사>는 완결된 단편에 요리 하나가 어우러지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시리즈 길이에 부담 갖지 않고 한 권씩 보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등장인물과 배경은 정해져 있지만, 앞뒤를 이어보지 않으면 큰일이 날 성싶은 내용들은 아니다. 정겹고 가벼운 에피소드를 하나 읽고 나서 한쪽으로 정리된 조리법을 감상하고, 입맛을 다시며 책을 덮는 식이다.
일본 현지에서는 연재 20년, 한국에 출간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현재 99권까지 출간되어 요리 만화 중 최장수 시리즈로 군림하고 있는 <맛의 달인> 시리즈와 비슷한 경지다.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두 시리즈를 비교해가며 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딱 잘라 이야기해서 두 만화는 전혀 다르다. <맛의 달인>은 그야말로 맛과 요리에 도통한 사람들이 내용을 이끈다. 천재 미식가, 달인 요리사, 식재료 장인, 불세출의 평론가 등이 나와 평범한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한 요리를 선보인다. 어쩌다 친숙한 요리가 나온다 하더라도 뚜껑을 열어보면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고집과 완벽이 깃들여있다. 담는 그릇과 곁들여내는 음료 한 잔까지 미크론 단위의 계획을 거친다고 할까? 나름 부엌에 서서 요리라도 만들어 담고 있노라면 ‘미식클럽’의 대표 우미하라가 나타나 호통을 칠 것만 같다. “이건 음식에 대한 모독이며 상식이하군!”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그에 비해 <아빠는 요리사>는 참으로 편안한 요리들을 내놓는다. 주인공인 일미 계장이 주로 요리를 하지만, 열 살짜리 꼬마부터 회사원 동료나 초보 주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내놓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재료도 흔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이고 조리법도 거창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건 이렇게 먹어야 해!”하며 우쭐대는 요리들이 없다.망치면 망치는 대로 깔깔대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부엌에 서고 싶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굳어버린 찰떡을 어떻게 할까 고심하다가 기름에 둥글게 튀겨먹는 이야기가 당당히 한 에피소드를 차지한다. 공갈빵처럼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하게 튀겨진 찰떡. 이걸 어찌 요리라 할 수 있을까 갸우뚱하는 순간에 곁들여 먹는 야채 소스가 등장해 중심을 잡아준다. 출출한 오후에 모인 사람들은 뜨거운 찰떡과 소스를 후후 불어먹으며 행복해 한다.
철저하게 가정요리, 그것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쓱쓱 해먹을 수 있는 요리들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인스턴트 재료를 쓰거나 꼭 필요한 과정을 생략하는 것도 아니다.
장르도 다양해서 일식, 양식, 중식, 한식은 기본이고 태국 요리와 유럽 요리 제3세계 요리까지 골고루 다루고 있다.
일미 계장이 출장을 갔다 오면 꼭 추가되는 일본 향토 요리들도 눈길을 끈다. 저자 우에야마 토치가 직접 다니며 모은 요리 정보가 책 끝에 실려 있는데, 그것을 보면 책에 쏟은 발품과 정성을 가늠할 수 있다. 취재한 정통 요리를 그대로 소개하는 게 아니라 만화의 특성에 맞추어 ‘손쉽고 편안한 가정요리’로 탈바꿈시켜야 하니 더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덕분에 만화는 매 권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맛있는 조리법을 가득 담고 있다. 앞치마를 두르기도 전에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화려한 조리과정과 식재료와는 거리가 멀다.


<아빠는 요리사>는 이런 이야기
만화의 기본 얼개는 이렇다. ‘금환상사’라는 평범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일미 씨는 과묵하지만 자상한 성격의 회사원이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요리가 취미이자 삶의 큰 즐거움이다. 어렸을 때는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란 터라 맏이로서 집안 요리를 책임지면서 실력이 붙었다. 이윽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아내는 매우 활동적인 잡지 편집자라 요리는 거의 손에서 놓고 지낸다. 결국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요리 경력은 이십 년을 넘어서게 된 셈. 야근과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때가 많은 아내에게 기운을 돋워주는 음식을 해주는 게 행복이기도 하다. 아들 성이와 딸 미설이까지 네 명의 가족이 알콩달콩 살아간다. 닭살 돋는 말은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아빠의 요리로 인해 사랑을 가득 받는다. 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 상사건 부하직원이건 무슨 일이 생기면 금방  알아채 마음이
따뜻해지는 요리를 선물한다.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중요해

93권까지 오면서 당연히 <아빠는 요리사>의 등장인물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미 계장 집안 이야기로만 치면 20권쯤에서 딸 미설이가 태어났고, 유치원생이던 성이는 대학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다. 뺀질거리는 신입사원이었던 전중 씨도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되려 한다.
금환상사의 전 직원과 일미 계장의 일족들이 모조리 등장하는 터라 등장인물도 참으로 많다. 그러나 현실의 시간과 똑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인물들에게 더없이 정겨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 만화는 주인공이 요리를 ‘짠’ 하고 선보이는 데만 중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사람이 핵심이긴 하지만, 해준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때로는 국적불명처럼 보이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요리가 나와도 둘러 앉아 덥썩 입에 넣는 가족들. “맛있어요 계장님!”을 외치는 직원들. 일미 계장이 슬쩍 쥐어준 조리법을 들고 각자 집에서 점수를 따는 아버지들. 요리를 통해 사람이 이어지는 광경이 이 만화에서는 내내 펼쳐진다.
에피소드 이름들만 보아도 이 만화의 성격이 보인다. ‘기운을 내―짜슈밥’, ‘지금을 즐겁게―완두콩 요리’, ‘눈물의 눈물말이’ 등. 짐작이 가는가? 실연으로 힘들어하지만 남자는 눈물을 보일 수 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아 하는 부하 직원 카즈오. 괜히 붙들고 여자는 어떻다는 둥 연애란 이렇다는 둥 하고 훈계를 늘어놓는 대신, 일미 계장은 직접 만든 음식 한 접시를 내놓는다. 바로 베어 무는 순간 눈물이 터지게 매운 와사비를 넣은 김말이 초밥이다.
이 만화에서는 한번 나오고 마는 인물들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어져 있고, 독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기억하게 된다. 그 사람이 힘을 얻은 요리와 함께. 그렇게 사람의 정성과 배려가 들어간 음식은 마음까지 살찌게 한다. 바로 그것이 이 만화가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일미 계장을 따르면! ‘우리 아빠도 요리사’

남자들이 요리에 손대지 않는 이유는 숱하게 많다. 자취하다 질려서,군대에서 취사병이어서, 어머니가 고추 떨어진다고 해서, …. 하지만 모조리 핑계다. 요리에 취미를 붙이면 사랑 받을 수 있음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자!


“아빠도 해요!”
아이들부터 먼저 가르친다. 아이가 부엌에 서서 귀여운 목소리로 “아빠도 해요!”라고 부르면 거절할 수 있는 남자, 별로 없다.

쉬운 것부터 부탁해
쿠키 반죽을 모양 틀로 찍어낸다든지, 칼국수 반죽을 힘차게 치대는 작업은 남자들도 무척 재미있어 하는 과정이고, 비교적 쉬운 작업들이다. 조금씩 재미를 붙이며 서서히 함께 부엌에 서도록 하자.

남자는 ‘별점’을 좋아해
눈에 보이는 수치와 목표를 좋아하는 남자들. 아예 요일을 정해 ‘아빠는 요리사 날’로 만들거나, 만든 요리에 대한 평가회를 가족끼리 조직해 별점을 매겨보자. 승부욕에 불타며 부엌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장보기의 선택권도 양보
장을 보러 갈 때는 오랜 시간 끌지 말고 남자들에게 선택권을 많이 주자. 재미있는 재료나 상품에 흥미를 보이면 함께 구입하고, 응용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돕자.

어질러도 칭찬해요
요리 초보자들의 부엌은 폭탄 맞은 전쟁터가 되기 일쑤다. 아무리 어지르면서 요리를 하더라도 칭찬을 아끼지 말고 슬쩍 치워주자.

글을 쓴 윤나래는  컬럼 기고와 일어, 영어 번역 등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어떤 글이건 마음을 다해 써내는 것이 장점이라면, 단점은 수줍고 심약한 것. 더 강해져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본 기사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2007년 겨울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