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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박찬일 셰프의 나의 단골 밥집 - 그리움의 냉면 한 그릇, 남대문의 <부원면옥>

셰프들의 단골 밥집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무래도 요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 탓에
단골 밥집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만 같은데요.

그 궁금증을 풀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나의 단골 밥집'이라는 주제로 박찬일 셰프의 이야기를 다뤘거든요!!

상상력 대장인 풀반장,
에세이를 읽기 전에 먼저 추측해보기로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이태원 모처에서 레스토랑을 운영중인 박찬일 셰프의 단골집은?!


음... 유학시절 먹었던 그 맛을 떠올릴 수 있는
푸근한 인상의 이탈리아인 셰프가 직접 운영하는 전문점 쯤?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적인 메뉴인 '냉면'을 골랐다는 사실!!

믱?!

박찬일 셰프가 냉면집을 단골집으로 소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그 해답을 한번 찾아보시죠~.

나의 단골 밥집
그리움의 냉면 한 그릇

혼자 가도 무안하지 않고 자주 가도 질리지 않는 곳, 집은 아니지만 따뜻한 ‘집밥’ 같은 한 끼를 내어주는 곳. 여러분이 각별하게 생각해온 소중한 단골 밥집은 어디인가요? 

냉면은 본디 가지고 있는 색깔보다 훨씬 스펙트럼이 다양한 음식이다. 메밀과 동치미(육수를 섞어서), 딱 두 가지 기본 재료로 맛을 내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음식인데, 속은 몇 겹이다. 그건 순전히 분단 때문이다. 남북으로 갈리면서, 냉면에는 단단하고 슬픈 서정의 옷이 입혀졌다. 실향민의 음식,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적 장치까지 더해진 세계 유일의 음식이 아닌가 싶다. 한때 세계를 떠돌던 유태인들도 베이글을 씹으며 ‘권토중래’ 를 생각했다던가. 

냉면은 서울에서 아주 번성한다. 평안도에 가보지 않았으니 모르지만, 그쪽의 경제사정과 생활반경을 보면 냉면은 아무나 가서 먹고 싶을 때 사먹는 음식은 아닐 것이다. 서울의 실향민에 기대어 커진 냉면집, 이제 식도락가들의 집요한 애정 속에서 자란다. 나도 그 축에 들 텐데, 그건 어느 정도 어른 흉내에서 비롯한 바다. 어머니 손을 잡고 냉면집을 드나들며 백발 날리는 노인들을 보았다. 이북 사람들이라는 이질적인 기운을 풍기며 그들이 냉면 먹는 광경에서, 나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한 시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선풍기가 털털거리며 돌아가고, 풀 먹인 모시적삼 차림의 노인들이 아마도 회한 내지는 그리움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냉면 한 젓가락을 넘기는 장면이라니. 

남대문의 ‘부원면옥’도 그런 집이다. 오는지 마는지 무심한 주인네들이 입구를 지키는 그런 누옥 노포다. 그저 빈대떡을 지져서 닭 무침에 소주 한 잔을 하면, 진짜 어른 흉내를 낼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집이다. 
이 나이에도 옆 탁자의 손님들 눈치를 봐야 하는 몇 안 되는 집이어서 더욱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냉면의 맛이야 각자의 추억이 양념이 되는 것이므로 내가 가타부타 할 건 아니다. 

다만, 맛이 변했네 어쩐다는 소리는 거의 듣지 않을 성 싶은, 한결 같은 소박한 맛으로 오랜 성상을 밀고 왔다는 느낌이랄까. 메밀 함량으로 냉면집의 수준을 따진다면, 이 집이 윗길에 들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핏 부엌의 음식 나오는 구멍으로 보이는 나이든 주방장의 반팔 팔뚝이 가져다주는 신뢰는 나를 종종 이 집으로 내몬다. 그리고 한 다발의 냉면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이 환장할 운명의 한반도를 쓰다듬게 하는 것이다. 

더운 여름날 냉면 국물을 쭉 들이키는 것도 좋지만, 나는 겨울에 냉면을 찾는다. 속이 차서 늘 탈이 나면서도 기어이 냉면을 먹는다. 그 이빨 시린 육수가 나를 긴장시키고 세상 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노인 손님들의 슬픈 눈빛이 나를 더 각성시키는. 식당이 늘 즐거워야 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경건한 음식 한 그릇 주문한다. 
냉면발이 거칠거칠한 건, 그런 면에서 아주 맞춤하다는 깨달음이 있기도 하고. 

글을 쓴 박찬일은 이태리에서 요리를 공부했으며, 서울의 몇몇 식당을 거쳐 최근까지 홍대 앞 이태리식당 <라꼼마> 셰프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 <보통날의 파스타> <어쨌든, 잇태리> 등이 있다.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봄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