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F5 구역에서 다시 좀비들과 맞닥뜨린 풀무원수사대 풀반장과 풀군은 다행히 온도를 낮출 수
있는 하수도를 발견하고 뛰어든다. 하수도를 따라 구조용 헬기가 기다리고 있는 F19 구역에
도착한 두 사람은 헬기에 몸을 싣고 오도 탈출에 성공하는데, 과연 헬기가 두 사람을 데려간
그곳은………!
[지난 에피소드 보러가기]
타타타타 타타타타………
“반장님, 혹시 여기가 그곳인가요?”
“뭐라구요? 풀군? 잘 안들려요!”
헬기는 묘하게 낯익은 건물 옥상에 수사대를 내려놓은 뒤
마치 원래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다시 하늘로 올라 점이 되어 사라져 갔다.
눈으로 헬기의 뒷모습을 쫓던 풀반장은
헬기가 아주 안보이게 된 뒤에야 시선을 풀군에게로 옮겼다.
그 곳에는 헬기로부터 뿜어져 나온 바람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헝클어진 머리를 털고 있는 풀군이 있었다.
풀반장은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오도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까 헬기에서 내리자 마자 뭐라고 한거죠? 엔진소리 때문에 하나도 못들었군요”
“이 건물 뭔가 낯익지 않으시냐구요~!”
풀군은 아직 헬기의 엔진소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듯 소리를 지르며 말하고 있었다.
“아악~ 귀따거! 이젠 헬기도 갔으니 좀 조용히 말해요. 풀군!
그나저나 저도 이 건물이 낯익기는 하더군요.
그래도 아직 확신할 수 없으니 좀 더 안쪽으로 이동해보죠.”
자신들의 질문에도 묵묵히 헬기만을 조종한 헬기 조종사가
다소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수사대를 내려주는 순간 보인 그의 미소에서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은 안전하다.
옥상 출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두 사람은
건물 앞에 가까이 다가설 무렵 무언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건물 벽에는 겨우 한 사람이 옆으로 몸을 세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고 기다란 철제 문만이 덩그러니 붙어있는 게 아닌가.
말도 안되게 좁은 문을 멍하니 쳐다보는 풀군을 뒤로 하고
풀반장은 그 문을 거침없이 열고
건물 안으로 발을 쓱, 들이밀었다.
문을 열자마자 홀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은빛 데스크가 눈에 띄었고
그 위에는 역시 은빛으로 빛나는 옷 꾸러미가 잘 개켜져 있었다.
은빛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목소리.
“어서 오세요. 아까부터…….기다리고 계십니다…..
우선 거기 놓인 옷으로 갈아입으시죠.”
여….여기서 갈아 입으라구?
저 벽 코너에서 CCTV 카메라가 버젓이 우릴 지켜보고 있는데……! 응?
풀군이 잠시 분개하는 사이 풀반장은 옷 꾸러미를 척척 펼쳤다.
은빛 후드가 달린 우주복 재질의 큼직한 작업복이었다.
머리 위로 훌렁 덮어 입는 풀반장.
머쓱해진 풀군도 냉큼 그 옷을 덮어 입으며 풀반장에게 물었다.
“왜 이런 옷을 입으라는 거죠?”
풀반장이 “이건 방한복이에요”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두 사람이 발을 들여놓은 공간에서 쉭- 소리가 들렸다.
소독기였다.
소독용 기계장치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어우;; 추워요. 여기도 5℃인가 봐요.”
“아뇨. 여긴 5℃가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추운데 5℃가 아니라구요?”
풀반장은 말없이 한쪽 벽을 가리켰다.
벽면에 붙어있는 최첨단 전자 온도계의 숫자는……
정확히,
2℃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주머니에서 온도계를 꺼내 다시 한번 2℃임을 확인하며
한눈을 팔던 풀군은
갑자기 멈춰선 풀반장의 등에 보기 좋게 헤딩을 해버렸다.
“악!! 반장님 왜 계속 안 걸어가시고…..”
기이이이잉……….
육중한 기계음에 놀라 그제서야 풀반장의 등뒤에서 고개를 내민 풀군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넓은 홀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무엇보다도,
수십, 아니 수 백 개의 트레이를 실은 끝없이 긴 컨베이어 벨트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홀을 가득 채우며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이이이잉… 기이이이잉……
“이 곳은….. 역시..”
“역시 이곳은 음성물류센터로군요.”
바로 풀무원의 핵심 시설, 음성물류센터의 한가운데에
수사대는 들어와있었던 것이다!
“와우! 정말 엄청난 규모였군요!
작년에 지어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와본 건 처음이네요.
정말 축구장 다섯 개쯤 합한 것만한 크기에요.
"...."
“반장님~ 반장님~ 이것 보세요.
사람도 없는데 이 엄청난 기계들이 막 돌아가고..
잠깐, 잠깐, 저거 다 우리 제품들 아닌가요?
두부, 콩나물, 어묵, 아임리얼, 몽땅 다 여기 있네요!
이 제품들, 다 어디로 가는 거죠?”
컨베이어 벨트 가까이 다가와 제품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풀반장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 제품들은 오늘 물류센터에 입고된 제품들이고,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맞다면 오늘 중 전국 2만여 군데의 마트로 배송될 제품들입니다.
‘당일 입고, 당일 출고’가 우리 물류센터의 원칙이니까요.”
컨베이어 벨트 사이를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들뜬 목소리로 감탄사를 연발하는 풀군을 버려둔 채
풀반장은 홀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ID카드인식기가 붙어있는 투명한 유리문 앞에 멈춰섰다.
유리문 안쪽에는 실험용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느새 풀군도 옆에 바짝 붙어 서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웃옷 주머니를 뒤지던 풀군이 입을 열었다.
“우린 ID카드가 없잖아요. 열어달라고 할까요?”
풀반장은 입꼬리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운 채
ID카드인식기 아래쪽의 후드를 열어젖혔다.
눈에 익은 온도조절장치!
“앗. 오도 섬의 그.. 지하실 문에 붙어있던
온도조절장치와 똑같이 생겼어요!
그럼 혹시 여기도 오도 섬의 지하실처럼 암호코드가…….?!”
“조박사님이 위트가 있는 분이라면 왠지 그럴 것 같군요. 후후…”
풀반장은 온도조절장치를 익숙한 동작으로 ‘5℃’에 맞췄다.
지이이잉- 찰칵.
예상대로 수월하게 문이 열리자 왠지 싱거운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안쪽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연구원들이
동작을 멈추고 이들을 쳐다봤다. 왠지 다들 반가워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하얀 가운을 입은 한 무리의 연구원들 가운데에서
낯익은 얼굴이 성큼성큼 걸어나와 이들을 반겼다.
“어서 와요. 풀반장, 그리고…. 풀군?
이렇게 또 직접 만나게 되는군요.”
“조..조박사님…!!!”
“조박사님!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습니다!!”
수사대는 목멘 소리로 조박사의 이름을 불러대며
질문을 쏟아냈고 조박사는 빙긋이 웃으며 이들을 다독였다.
“자자, 먼저 이쪽으로 가서 천천히 설명 드리도록 하죠.”
조박사를 따라 연구실 안쪽으로 이동하던 수사대는
연구실 한가운데에 핀 조명을 받고 있는
철제 부검대 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연구원들 몇몇이 둘러싼 부검대 위에는
반구 형태의 투명 캡슐이 씌워져 있었고
캡슐 안에는………………
오도 섬에서 수사대가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어했던
괴기스러운 괴생명체,
“좀비”가 누워있었던 것이다!!
“악! 위험해요! 박사님!!! 저…저..저….저거 좀비에요, 좀비!!”
조박사는 풀군이 질겁을 하며 손가락질하는
부검대 위의 좀비(?)를 느긋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풀군의 어깨를 툭툭 쳤다.
“풀군, 걱정 말아요. 저 캡슐에는 특수 장치가 되어있어서
부검대 위 물건의 온도를 철저히 5℃로 맞춰주고 있죠.
저 좀비가 벌떡 일어난다거나 증식을 시작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요.
우린 좀비를 일부러 증식시키던 김박사와는 다르니까요.”
풀군과 조박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풀반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박사님, 제가 오도 섬에서 좀비들에게 쫓기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했던 건…………
좀비를 물리치는 온도가 왜 5℃였냐는 것이었습니다.
좀비와 5℃, 그리고 풀무원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존재하는 건가요?
이제 5℃의 비밀을 모두 털어놓아주시죠.”
풀군도 사뭇 진지한 얼굴로 조박사를 건너다봤다.
조박사는 미소를 띄운 채 반문했다.
“제가, 국회의원을 만나고 온 얘기는 잘 알고 있죠?”
“네! 반장님께 자세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제는 잘 알겠지만
미국의 냉장유통온도 기준은 5℃, 한국은 그보다 높은 10℃ 아닙니까.
그래서 미국 두부의 유통기한은 2개월,
한국 두부의 유통기한은 그보다 훨씬 짧은 2주일 수밖에 없구요.”
풀반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유통온도 때문에
유통기한이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지도 알고 있나요?”
수사대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모로 저었다.
“단 몇 도 차이로 미생물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하기 때문이에요.
공기 중에 미생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온도가 1℃라도 높아질수록 미생물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점인 critical mass,
즉, “임계점”에 도달하는 시간이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부검대 위의 좀비에게서 불안한 시선을 떼지 못하던
풀군이 불쑥 끼어들었다.
“임계점에 도달하면 좀비가…아니 미생물이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데요?”
“하하하...두 사람을 쫓던 저 좀비 역시 그 김박사라는 사람이
5℃와 미생물 관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증식시킨 괴생명체였기 때문에
5℃의 원칙에 지배를 받았으니 동급으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조박사는 부검대 옆의 거대한 모니터에
동영상을 하나 띄웠다.
“이게 미생물입니다.
온도와 습도가 번식하기에 적절한 환경이라면
미생물, 즉 세균 한 마리가 10분 뒤에는 2마리가 되고, 1시간 후에는 64마리,
그리고 4시간 경과 후엔………. 무려 천 육 백만 마리로 늘어나죠.
식품 1그램 당 세균이 백만 마리가 넘으면
부패나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무서운 일인거죠.”
“그렇다면, 반대로 10℃ 보다는 5℃일 때
미생물의 증식이 시작되는 시간을 뒤로 미룰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유통기한도 더 길어질 수 있는 것이군요.”
조박사는 말없이 부검대 옆 테이블에 놓여있던 파일을 하나 건넸다.
매 분단위로 온도의 변화를 기록한 꺾은선 그래프가 한 가득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래프 상단에 적힌 선명한 붉은 색의 문구.
danger zone
“danger zone?”
“이건 두 사람이 지하실에 있을 때의 온도변화를 기록한 데이터입니다.
5도와 60도 사이 구간, 바로 이 구간이 우리 연구원들이 부르는 “danger zone”이죠.
미생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는 온도 구간입니다.
특히 식중독의 대표선수로 불리는 살모넬라균은 5.2도가 넘어서는 즉시,
신경마비를 일으키는 보톨리누스균은 10도를 넘어섰을 때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기 시작하죠.
두 사람, 정말 위험한 순간을 보낸 것 같군요.”
풀반장과 풀군은 오도 섬 지하실에서
좀비 군단과 벌였던 사투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물류센터 내 연구실을 나서던
풀반장이 문득 조박사에게 물었다.
“참, 조박사님. 아까 들어오면서 보니까..
이곳 음성물류센터의 내부 온도가 5℃가 아닌 2℃에 맞춰져 있던데…그건 왜죠?”
“하하하… 이번 사건으로 ‘냉장 온도’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졌군요.
음… 가령 두부를 5℃의 상태로 유지시키려면
5℃보다 낮은 온도에 보관을 하면 더 안전하겠죠?
혹시라도 외부 공기와 맞닿을 때 제품 온도가 미세하게 올라가더라도
2℃에서부터 올라간다면 5℃에 닿기 전에 충분히 멈출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 물류센터에서 두부를 2℃에 보관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전국 2만여 곳의 마트에 두부가 진열된 다음부터는..
우리나라의 냉장유통온도 기준 10℃에 맞춰 유통될 것 아닙니까?
사실 10℃ 역시 ‘danger zone’에 해당하는 것 아닙니까?”
오옷. 풀군은 풀반장의 돌직구 같은 질문에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가끔 보면, 이런 면이 있단 말야…
그러고보니 오도 섬의 지하실에서 좀비들이 난입했을 때
지하실 온도가 10℃일 때도 좀비들의 공격은 멈추질 않았지…
질문을 받은 조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그의 얼굴에 굳은 결심이 묻어났다.
“아쉽게도 OECD국가 중에서 유독 한국과 일본만
냉장유통온도 기준이 10℃입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은 냉장유통온도를
모두 5℃로 맞추도록 법적 기준을 갖고 있어요.
뭐.. 이제 차차 바꿔나가야 할 문제죠.. 바로 우리가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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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를 유지하고 있는 풀무원 음성물류센터 안에서 한껏 싱싱해진
풀반장과 풀군은 물류센터의 문을 힘차게 열고 밖으로 나왔다.
모든 비밀이 풀렸어.
캄캄한 안개 속과도 같았던 좀비 아니 미생물과의
미스터리한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듯
하늘엔 그 어느때보다 밝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가볍게 머리를 들어올리는 산뜻한 바람마저 소중해지는 순간이었다.
벚꽃이 만개한 도로 사이에서 잠시 감상에 젖은 풀반장은
풀반장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요란하게 울어대는 배를 붙잡고
멋쩍은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풀군과 눈이 마주쳤다.
꼬르륵~
그러고 보니 풀군이 마음 고생이 심했겠군…
“풀군… 오늘 참 위험한 순간이 많았었지요?”
“에이.. 뭘요~ 헤헤”
“그래도 풀군이 있어 무척이나 든든했답니다. 고마워요.”
풀반장이 이런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풀군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백 만배는 더 고맙지요~.”
응? 백만배?!
풀군의 말은 이미 끝났지만
그 말의 여운은 풀반장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못했다.
백만배.. 백만배.. 백만배..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백만배’를 수십번 되내이던 풀반장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멈춰섰다.
‘증식’
오도를 탈출할 때 설정한 5℃는 3개 구역에 불과…
그렇다면 나머지 지역에서는 천 육백만 마리를 넘어서 무한 증식중일 터!
“오도의 좀비들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어!”
<끝>
[PSI 수사대 : 오도의 비밀 <완결>]
지금까지 풀무원 블로그 연재 미스터리 스릴러 웹소설
‘PSI수사대:오도의비밀’을 사랑해주신
풀사이 가족 여러분, 페이스북의 수많은 팬 여러분,
트친 여러분, 그리고 그밖의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본방사수, 배포자유!
댓글환영,
PSI 수사대는 또다른 수사일지를 갖고 곧 돌아옵니다.
커밍쑨~
덧. 오도 마니아라면 본편만큼 재미있는 번외편도 꼭 챙겨보셔야 겠죠?
좀비 촬영과 사진 속 장소들의 비밀이 공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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