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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서울 안의 작은 히말라야, 종로구 옥인동 '티베트박물관'에 가다~

얼마전 전국의 초중고등학교가 방학을 끝내고 일제히 개학을 했습니다~.

혹시 우리 풀사이 가족분들은
방학 때 가장 붐비는 곳이 어딘지 아시나요?

바로 박물관과 미술관이라고 하네요.
(PC방이라 생각하신 분들도 틀린건 아니라는... >.<)

아무래도 체험학습의 중요성 때문에
자녀를 데리고 많이들 찾으시기 때문이겠죠? ^ ^ 

하지만 사람들로 붐비다 보면 전시물 하나도 제대로 보기가 힘들잖아요~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보면 어느새 전시관 출구 ㅜ.ㅠ

그래서 제대로 둘러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요즘과 같은 개학 후를 노린다고 하더라구요.~

거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이 아닌 특색있는 소규모 박물관으로 말이죠~!

여유있는 관람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박물관장님의 설명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최고~!

마침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특색있는 박물관으로 종로구에 위치한 티베트박물관을 다녀왔다고 하여
여기 소개합니다~!

카페와 함께 운영되기 때문에
전시물들 사이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도 큰 매력!

작기 때문에 전시물이 부족한거 아니냐구요?
아니요~!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유명 박물관에 전시까지 했을 정도라고 하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겠죠?

옥인동에 숨어있는 이색적인 공간, '티베트박물관'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덧. 이날 촬영 현장에 풀반장도 함께 했었다는 사실~!
      조만간 현장 스케치 포스트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옥인동 티베트박물관 신영수 관장
  ‘히말라야의 나라’를 서울에서 만나다


  커다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우둘투둘한 돌벽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쯤 히말라야 어디쯤 티베트 사원 속으로 공간이동을 한듯한 신비로운 느낌이 온몸을
  훑는다. 서울 안의 티베트박물관, 그곳에서 신영수 관장을 만났다.



마을버스 타고 올라가면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탄 마을버스가 10여 분을 힘겹게 달려 오르막길에 도착한 종점, 인왕산 밑자락 서울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 가림막이 쳐진 채 공원 조성을 위한 철거 및 정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옥인아파트부터 경복궁까지 좁은 골목길을 매개로 옹기종기 주택이 모인 서울 ‘서촌’. 경복궁 서쪽에 있어 ‘서촌’으로 불렸고, 최근에는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세종마을로 불린다. 과거 서울 북촌이 사대부 집권세력의 거주지였다면 서촌은 중인이 모여 살던 곳. 마을에는 많은 문화예술인이 살았다.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시인 윤동주, 소설가 이상 등이 살았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50여 미터쯤 아래로 가면 3층짜리 낡은 건물이 미소 짓고 서 있다. 서울 종로구 누상동 166-107번지. 티베트의 숨결을 간직한 ‘티베트박물관’이다. 전남 보성 대원사에 위치한 티베트박물관과 함께 국내에서 티베트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건물 외벽의 빛바랜 회색은 오랜 세월 풍상을 견뎌왔음을 웅변하는 듯하다. 1920년대 지어져 1930년대 후반 태평양 전쟁 당시 전깃줄을 만드는 군수공장의 숙소 건물로 쓰였다. ‘티베트박물관’보다 상대적으로 현대적으로 보이는 바로 옆 3층 건물도 함께 노무자들의 숙소로 쓰였다고 한다.


인왕산 바위를 그대로 벽으로

커다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우둘투둘한 돌벽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이 바위를 따라 세워지면서 건물 아래 공간은 상대적으로 좁은 반면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안에서 신영수 관장을 만났다. 티베트박물관은 옥인동에 자리 잡기 전인 2009년 말까지 종로구 삼청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2009년 12월 어느 날. 경영난으로 새 장소를 물색하던 신 관장은 인왕산을 등산하면서 서촌을 찾았다가 지금의 티베트박물관 건물에 끌렸다고 한다. “무척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아는 사람 가운데 부동산을 하는 사람을 찾아가 ‘이 집을 사고 싶다’고 말했죠. 애초 거래로 나온 집이 아니어서 어렵게 (거래로) 연결됐어요.” 당시 1, 2층 건물 주인과 3층 건물 주인은 달랐고, 서류상으론 일본 사람을 포함해 주인이 6명이나 됐다. 그래서 평당 2,000만 원이 넘는 비싼 돈을 주고 건물을 사야 했고, 매입 후에도 600만 원의 가욋돈을 들여 행정재판을 통해 서류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박물관 1층은 티베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커피숍이다. 커다란 테이블을 중심으로 입식 부엌과 카운터가 양쪽에 위치한 구조다. 벽면, 유리창 장식 등에는 각종 티베트 장식 등이 걸려 있다. 찻값은 커피를 기준으로 5,000원. “관람객 입장에서는 편안히 차를 마시며 박물관을 음미할 수 있고, 운영자 입장에선 박물관 관람이 무료인데 찻집 운영을 통해 박물관 운영비를 조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히말라야의 어느 사원처럼
신 관장과 함께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1층보다 조금 넓은 듯한 2층에는 티베트 사원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티베트 불상이나 탑, 승려 동상이나 조각이 있고, 티베트 종교 복식이나 일반인 복식이 곳곳에 걸려 있다. 사이사이 테이블과 탁자가 놓여 티베트 분위기를 음미할 수 있다.
“박물관 공간이 협소해 티베트 종합박물관보다 티베트 사원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사실 티베트에서는 종교가 곧 생활입니다. 일과가 거의 종교로 시작해 종교로 끝나거든요. 티베트 달력조차 거의 종교 일정표이고요. 현재 티베트 사원을 가기는 쉽지 않죠. 오지인데다 평균 고도가 해발 4,000미터가 돼 고산병 등으로 노약자들이 찾기는 어렵죠. 그런 분들이 티베트 사원을 느끼면 좋을 것 같아요.” 건물 3층은 현재 신 관장의 가족이 생활하고 있다. 그는 새집을 구하는 대로 3층도 박물관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3층까지 개방하게 되면 소장하고 있는 티베트의 다양한 자료를 전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속자료 수집에 재미를 붙이다

신 관장은 1955년 서울 장충동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작고한 아버지는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섬유 원단 계통의 옷감 장사를 했고, 현재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닌 그는 공부를 싫어해 대학을 입학한 지 몇 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아버지 옷감장사 일을 거들고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대신 여행을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미군이 쓰던 천막과 군용 배낭을 이용, 캠핑을 가곤 했다. 그런데 캠핑할 때 버려져 있는 민속자료 등이 눈에 띄었고, 그것을 하나씩 ‘주워 나르곤’ 했다. 그는 민속자료 수집에 재미를 붙이면서 수집을 본격적으로 했다. 주로 무속화나 불교 관련 자료 등 한국 민속자료가 대부분.
“당시 사람들은 도자기나 서화 등을 집에 잘 들여놓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저는 어린 나이에 돈이 없어 용돈을 받아 쓰는 처지라 거의 헐값에 사 모아야 했죠.”
신 관장은 1985년 서울 종로구 구기동 구기터널 부근에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을 주고 가게를 임대, ‘박물관’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수집한 민속자료를 활용, 레스토랑 이곳저곳을 꾸몄다. 색다른 분위기 때문에 가게는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우연히 제주시 삼양 3동에 위치한 국내 1호 사설 박물관 ‘진성기박물관’과 충남 아산시 권곡동의 온양민속박물관 등을 돌아보면서 깨달았다. 제주 민속유물 수집과 보존에 한평생을 바친 민속학자 진성기 씨에 의해 1964년 설립 운영된 진성기박물관과 전통민속을 보존하기 위해 1977년 건립된 온양민속박물관에는 방대한 한국 민속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던 것.
‘한국 것을 수집해선 그 사람들의 흉내나 내다 말겠구나.’ 한국 민속자료를 수집 전시하는 곳은 많고, 또 준비하는 사람도 많으며, 앞으로도 우리 민속자료를 활용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더 이상 한국 민속자료를 모아 전시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외국의 민속자료를 보존, 전시하면 어떨까.’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했다. 그는 <도쿄의 박물관>이란 책을 산 뒤 일본 도쿄 등지의 박물관을 꼼꼼히 체크했다. 중국박물관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중국 민속자료를 모아 전시하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려한 티베트 복식에 매료되다 
1994년 2월 겨울. 신 관장은 중국이 개방된 이후 몇 사람과 어울려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가게 됐다. 히말라야에 자리한 티베트 사원과 그곳 사람들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은 잘 씻지 않아 더러워 보였어요. 강렬한 태양에 피부가 터지기 때문에 비누로 매일 세수하지 못하는 대신 기름을 몸에 발랐던 것이죠. 옷에 기름이 묻으면서 기름 냄새가 나곤 했어요. 처음에는 옷도 더러워 보였죠. 하지만 그들의 집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대화하면서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보기 시작했어요. 새까만 손톱마저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화려한 티베트 사람들의 복식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척박한 자연 탓에 화려한 색감이나 장신구를 사용했다. 한국의 한복 색동옷이 그곳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난한 사람들이라도 인조 보석으로 꾸미곤 했다. 유목민인 티베트 사람들은 몸에 장신구를 부착하고 움직였다.
그는 티베트 민속자료, 특히 복식을 모으면 매우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미술품의 경우 언제든지 구할 수 있지만, 신발이나 모자, 복식 등 민속자료는 금방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했다. “실제 제가 처음 갔을 때에는 티베트적인 풍경이 적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 수도 라사 같은 곳에 가면 어떤 한 특정 구역만 티베트 분위기가 날 뿐, 나머지는 완전히 중국화돼 재미가 없어요. 거의 하층민이나 유목민 외에는 전통 복식을 거의 입지 않는 상황이죠. 청바지를 입거나 야구 모자를 쓴 사람들만 널려 있어요.”




세관에 민속자료를 빼앗기다 
티베트 모자와 민속품 몇 개를 사온 그는 본격적으로 티베트 민속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년에 두세 차례 히말라야를 트래킹 하면서 현지인에게 부탁하거나 네팔이나 인도 방향으로 나가 티베트 난민들이 들고 나온 민속자료를 사기도 했다. 민속품은 가방에 가져와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양이 많아지면 현지인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티베트 민속자료를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었지만 세관에 빼앗기기도 했다. 1995년. 그는 2개월 동안 중국 천진에서 계림, 성도를 거쳐 티베트 라사를 들어갔다 다시 되돌아오는 여행을 했다. 2개월여 후배 2명과 수집한 물건을 천진에서 배편으로 서울로 들여오기 위해 북경을 갔다. 하지만 소수 민족 문화재를 밀반출한다는 이유로 중국 세관에 의해 수집된 모든 자료를 빼앗기고 말았다.




첫 둥지는 삼청동에서 
2001년. 신 관장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티베트박물관을 열었다. 당시 티베트박물관에는 전시 아이템이 많았다.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박물관에는 600점에서 1,000점까지 전시됐다. 1층 전시장에는 불상과 티베트 문화 유물이, 2층에는 승려복과 무희복, 사냥할 때 입는 의복 등 여러 의복이 전통 악기와 함께 전시됐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도 많았다. 주말의 경우 150~160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티베트에 대한 환상이 적지 않은데다가 불교 스님들도 티베트에 관심이 많았다. 또 티베트에 여행 가려는 사람들 중에 티베트 문화를 미리 공부하고 가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티베트박물관을 들어선 뒤 삼청동에는 사설 박물관이 잇달아 생겨났다. 삼청동에 박물관 집성촌이 형성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 지인들도 부르기도 했다. 그 자신도 총포박물관, 성문화박물관, 차박물관, 실크로드박물관을 잇달아 개관했다. 특히 실크로드박물관의 경우 일반 관람객은 많지 않았지만 학자들이 찾을 정도로 전문성을 자랑하기도 했다.
삼청동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삼청동을 찾는 사람들도 꾸준히 늘었다. 그런데 티베트박물관 등 박물관 관람객은 오히려 계속 줄었다. 사설 박물관이 10여 개로 늘어나면서 박물관을 찾는 손님이 분산됐고 관람문화도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 “한국 사람들은 돈 내고 관람하는 문화가 아직 형성된 것 같지 않아요. 입장료를 500원 내라고 하면 박물관에 왔다가도 그냥 돌아가는 사람이 5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5,000원 주고 커피는 마셔도 500원 내고 박물관에 오지는 않더군요. 제 주머니에서 돈을 내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장소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옥인동 서촌으로 오게 된 것이죠.”




박물관 문화를 생각하다  
신 관장은 티베트박물관을 둘러보고 티베트에 간 사람과 그냥 티베트로 간 사람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즉 티베트박물관을 가보고 관련 책자도 읽은 사람이 티베트에 갔을 때 훨씬 더 많이 느끼고 얻을 것이라는 봤다. 그래서 국내에도 다양한 나라의 박물관이 생겨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사설 박물관들은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물관은 무료 개방하되, 수익을 내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되니까 차를 팔아 운영해보고 싶어요. 차도 마시고 친구도 기다리고 편안하고 만만한 박물관으로 다가가고 싶죠. 물론 차를 마시려면 스타벅스도 있지만, 박물관에서 차 마신 사람들은 이곳을 더 좋아할 겁니다.” 외부 전시도 적지 않게 해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춘천국립박물관, 김해국립박물관에서 차마고도 전시를 했고, 국립대구박물관 전시회에는 일부 유물을 빌려주기도 했다. 올해 11월에도 히말라야의 샤머니즘 자료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할 예정. 자신이 활용할 수 없는 자료는 다른 기관에 기증하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민족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숙명여대 등에 상당한 자료를 기증했다.
신 관장은 사설 박물관에 대한 걱정이 많다. 사설 박물관 또는 개인 박물관은 지난 10년 새 양적으로 많이 늘었지만 경영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의식주에선 세계 최고이지만 문화적 수준은 아직도 많이 뒤떨어지는 것 같아요. 돈 내고 감상하는 훈련이 돼 있지 않거든요. 공부를 많이 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가끔 해외에 여행해 보면 술 먹고 놀고 쓸데없는 것만 잔뜩 사가지고 오지, 10달러를 내는 박물관에는 잘 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티베트박물관에 가려면…>
   
     개관일       월요일 휴관, 나머지 요일 개관

     개관 시간  낮 12시~오후 6시 (특별한 사정에 따라 변경 가능)
     단체 관람  미리 박물관 측에 문의
     문의          02-720-9675
     관람료      무료



 글을 쓴 김용출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다.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세계일보>에
 입사,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을 거쳐 현재 문화부에서 영화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쓴 책으로
 <독일아리랑>, <독서경영>(공저) 등이 있다.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