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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박완서, 그녀가 남기고간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추석 연휴는 잘 지내고 계신가요?
후~ 벌써 추석이라니...

그나저나 이젠 추석도 지났고 완연한 가을이군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도 불리는 가을,
올 가을에는 몸 대신 마음을 살찌워보는건 어떨까요?

가을하면 떠오르는 독서, 바로 책과 함께 말이죠~

어떤 책이 좋을까 고민을 하던 중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견한 한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바로 박완서 작가님의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입니다.
남편과 아들을 떠나보내고 느꼈던 가슴시린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요.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교감을 이뤄왔던 그녀였던 만큼
이번 책 역시 문학의 완성도를 넘어 그녀의 삶 그 자체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씀과 함께
팔십의 나이에 세상과 작별을 고하기 전 남긴 마지막 산문집이라
그 의미가 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가 담긴 그녀의 마지막 산문집,
감성이 충만해지는 가을의 문턱에서 한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엄마, 라고 부르고 싶었던 사람

  그녀 나이 팔십,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낸 산문집입니다.



그 해 겨울은 정말로 가혹했다고 밖에는 표현을 못하겠다. 3한 4온은 바라지도 않았다. 29한 2온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끈질기고도 모진 추위가 이어지고 나니 추위 앞에서 ‘졌다’라고 말하며 순순히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1월 한 달 수은주가 영상인 시간이 고작 44분이었다는 추위의 한 복판에서 그녀가 영영 떠나셨다는 뉴스를 들었다. 순간 ‘멍’. 마치 가족이 떠난 듯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듯했다.

갑자기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선생님의 책 제목이 생각났다. 너무나 배반적이게도 말이다. 그렇게 따듯하셨던 분이 이리도 차가운 계절에 꽝꽝 언 하늘로 가셨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같이 느껴져서 말이다. 지금쯤, 봄 햇살이 따사로울 때 떠나셨으면 우리 마음이 조금은 나았을 텐데….

한 소설가의 죽음이 이토록 절실하게 마음을 흔들어놓은 것은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인들이 그녀의 소설 속에서 문학의 힘을 길어 올렸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녀의 작품 속에서 삶의 힘을 얻었다. 문학소녀 축에도 끼지 못했던 나조차 그녀의 소설 속에서 슬픔, 기쁨, 웃음, 오기, 순종, 반역, 그리고 결국에는 용서라는 감정의 역사를 배웠으니 말이다. 조용한 다독임, 따스한 바라봄. 그녀의 소설 속에는 그런 시선과 온도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를 생각하면 왠지 ‘엄마’ 라고 나지막이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박완서라는 작가가 우리 문단에 들어섰을 때, 그녀의 이름 뒤에는 ‘마흔의 늦깎이 작가’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그녀가 마흔에 어느 여성잡지의 공모전에 당선됐을 때 그녀는 다섯 아이를 둔 전업주부였다. 1931년에 개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6.25라는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이고 전쟁 자체가 가족사를 바꿔놓을 만큼 큰 상처를 남겼다.
전쟁, 가난 속에서 아버지와 오빠를 잃으면서 박완서는 어릴 때부터 삶의 상처와 살아나간다는 것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일찍 알아채버린 듯 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첫 소설 <나목>을 읽으면서 소설에 나오는 소녀처럼 마음이 설레면서도 아파왔었고, <엄마의 말뚝>을 읽으면서는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달픔, 따스함, 그리고 ‘우리 엄마 가슴에도 말뚝이 박혀있을까?,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나는 어떤 말뚝을 내 심장에 박고 살아가게 될까?’생각하며 아프게 고민한 적도 있다.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부드럽고 조용히 흘러가는 선생님의 글발, 가끔은 통쾌하게 그리고 마치 내 옆자리에 찰싹 달라붙어 얘기하듯 생생하고 살아있는 인물들의 묘사와 대사들. 그녀의 글은 늘 종이 안에서 춤추고 있었다. 전쟁을 다루든,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다루든, 여자들의 마음 깊을 곳을 다루든 말이다.


인생을 정확하고 가슴 시리게 그리다
1988년에 박완서는 5월에 남편을 잃었고 8월에는 연이어 아들을 잃었다. 게다가 그 때 아들은 스물다섯. 아직 너무 푸릇한 청춘이었다. 앞세운 아들은 레지던트 과정을 밟던 ‘청동기’처럼 단단하고 앞날이 촉망되던 젊은 의사였다. 그녀는 부산 수녀원에서 스무 날 넘게 하느님에게 ‘한 말씀만 하시라’고 따졌다고 한다. 그렇게 남편과 아들을 잃은 그녀는 부산에 있는 분도수녀원에서 지내기도 하고 미국에 피신하듯 떠나 있으면서 1년 동안 한 자도 쓰지 않았다. 아니, 아마 한 자도 쓰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박완서는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서도 아들 잃은 어머니의 넋두리를 풀어놓았다. ‘교통사고로 반신불수에 치매 상태가 된 친구 아들이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라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그렇게 부럽더라.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질투가 있을까.’
박완서는 한동안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은 에미’가 너무 징그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최후로 찾은 돌파구는 글이었다. 아들이 살았을 땐 ‘사치요 욕심이지 싶었던’ 글쓰기가 아들 앞세운 뒤엔 공기였다.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일까, 그녀의 글에는 인생의 꼼꼼한 관찰과 아픔과 용서와 화해가 너무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문학적 완성도라는 허황된 이름보다는 인생을, 삶을 너무 정확하고 가슴 시리게 그려내고 있다는 울컥하는 동감들 말이다.


고 박완서 씨의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그녀가 팔십에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낸 산문집이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그녀의 이 마지막 책은 그녀의 생애처럼 맑지만 치열하고 순수하지만 정열이 가득하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고 담담하고도 강단 있게 자신의 소망을 밝히는 부분들은 내 일기장에 붙여놓고 싶은 작은 다짐이다.€
사나운 시대를 만나 험한 인생의 꼴을 많이 보셨으면서도 독해지지 않고 부드럽게 인생을 긍정했던 분, 여든이 될 때까지 소녀 같은 새침함과 아름다움을 놓지 않았던 분, 언제나 바르고 속 넓은 품으로 우리의 누추한 인생을 보듬었던 분, 옳고도 아름다웠던 분, 소녀의 여린 마음과 엄마의 강단 있는 마음을 함께 품고 사셨던 분, 그 분의 죽음에 목 놓아 울고 싶었던 사람이 많았던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글을 쓴 김은주는 박완서의 글 속에서 인생의 많은 비밀을 알게 된 청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밖으로 발설하기보다 안으로 접어둔 말이 많은 인생들에게 여전히 그녀의 책들은 ‘강추’ 리스트이다.<디자인하우스>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현대문학 펴냄)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