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486, 1010235, 0027, 38317
어흠- 알아들으셨나요?
눼? 평소 독특한 모습을 보이던 풀반장이
드디어 자기만의 세계에 빠졌다며 걱정하셨다구요?
왜 이러십니까~ 이 숫자들의 의미를 아시는 분들도 계실 법한데요~ :D
힌트를 드리자면,
'삐삐' 세대라면 너무도 익숙할 숫자들이라는 거죠~.
아참, '삐삐'가 뭔지는 아시죠?
Beeper, Pager 등으로 불리는 '무선호출기' 기억나시나요?
아저씨는 허리에, 아가씨는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는 추억의 호출기~.
지금은 병원에서도 의사들에게 삐삐 대신 핸드폰으로 연락을 줄 정도로
삐삐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흠흠. 다시 비밀의 숫자로 돌아와보죠.
이 숫자들이 낯선 분들이라도 아래 설명을 들으시면 아하~! 하실듯 싶네요.
1010235 → 열렬히사모
38317 → 사랑해 (숫자를 뒤집어서 보면 '사랑'이라는 뜻의 독일어 'LIEBE')
0027 → 땡땡이침
어흠-어흠- 이젠 기억이 나시나요?
그런데 스마트폰 시대에 왠 '삐삐' 얘기를 꺼냈냐구요? ^ ^
오늘 소개해드릴 사연이 '첫눈'과 '삐삐'에 얽힌 한 여자분의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아참, 벽돌 한장 사이즈의 1세대 벽돌폰, 공중전화 옆에서만 터지던 시티폰도 다들 기억하시죠?)
크, 뭔가 좀 예상이 되신다구요?
첫눈...삐삐..여자..추억...
여러분의 예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사연일지 아닐지~ 한번 스크롤을 내려~보실까요?
(원래 훌륭한 영화 시나리오의 조건은,
"예상은 빗나가게 하고, 기대는 충족시켜라" 라지요 쿨럭)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독자 사연
<살며 사랑하며> 삐삐 쳐도 대답 없는 그대여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날씨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지더군요. 햇볕 좋은 날에는 이불 빨래가 생각나고, 비 오는 날에는 눅눅해진 집 안 곰팡이 청소, 눈이 오는 날에는 빙판길 사고부터 걱정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슬퍼지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 지킴이의 소임에 충실한 ‘생활의 달인’ 자세라고 자위하면서 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였던가요. 아마도 1997년 쯤인 것 같은데 제 나이 25살 되던 겨울, 12월 초였습니다. 사회 초년병으로 아직은 학생 티가 남아 있던 순수한 시절이였죠. 회사 언니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쌀쌀하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마음에 옥상 정원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무렵 무언가가 팔에 살짝 내려앉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그런데 옆에 있던 언니가 외치는 겁니다.
“어~, 이게 뭐지, 뭐가 떨어진 것 같은데!”“혹시, …첫눈?!”
와우! 세상에, 불과 몇 분 만에 눈 싸래기가 휘날리기 시작하더니 첫눈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첫눈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워낙 적게 내려서 감지를 못하는 법인데 그날은 주변에 서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와! 첫눈이다!”라고 외칠 정도로 ‘첫눈’임이 확실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에 있던 언니 둘과 저는 즉석에서 내기를 하기로 했죠. 각자 남자친구에게 ‘삐삐’(호출기)를 쳐서 남자친구로부터 제일 먼저 연락이 오는 사람에게 나머지 사람들이 밥을 사주는 것으로요. 우리들은 재빨리 사무실로 가서 각자 남자친구에게 ‘삐삐’를 쳤죠. 전화번호 맨 뒤에 ‘8282’라는 암호까지 넣어서 말이죠. (지금이야 누구나 핸드폰이 있지만 그때는 핸드폰이 귀했고 대부분 ‘삐삐’라고 불리는 호출기를 갖고 다니던 시절이었죠.) 아무튼 노심초사 창밖에 휘날리는 첫눈을 구경하며 전화통만 뚫어져라 보고 있을 즈음 제일 먼저 걸려온 다른 언니 전화벨 소리에 콩닥콩닥 가슴 졸이고 있는데, 역시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언니답게 남자친구와 오늘 저녁 어디서 만날까부터 시작해서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 있고, 또 다른 언니도 남자친구와 연락이 되고, 저의 남자친구는 감감무소식! 계속해서 삐삐로 연락을 했는데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언니들과의 내기에서 졌다는 마음에 속상하고 우울해져서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전화만 째려보고 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걱정이 되더군요. 혹시 무슨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오후를 보냈습니다. 어쨌든 저의 ‘첫눈 오는 날’은 그렇게 지나가버렸습니다. 알고보니 남자친구는 전날 친구들과 과하게 음주가무를 즐긴 뒤, 친구의 자취방에서 늦게까지 자고 삐삐는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다음날에서야 저의 삐삐를 확인했더군요. 그 사실을 알고 우리는 대판 싸웠죠. 그 후부터 저는 첫눈 오는 날에 무슨 약속을 한다던가, 특별히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피하게 됐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첫눈 내리는 날이면 한번쯤 절 떠올릴까요?
*이 사연은 광주 북구 일곡동에서 오OO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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