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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다문화 쉐프들, 꿈을 요리하다 - 홍대앞 슬로쿠킹 레스토랑 [오요리]

홍대 앞에 한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정말 평범한 그곳에는 여느 레스토랑과 다른 특별함이 숨어있습니다.
일단, 한국에서는 낯선 다양한 문화의 요리들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국적의 쉐프와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일본, 필리핀 출신 쉐프부터, 러시아에서 온 홀 담당까지...

한국인 남자를 맞아 결혼과 함께 한국을 선택하고 우연한 계기로 요리사가 됐다는 공통점만으로도
너무도 즐겁고 행복하다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까요? ^ ^

꿈을 향한 슬로 쿠킹
‘오요리’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위치는 홍대 앞, 장르는 아시아 퓨전 비스트로, 이름은 ‘오요리’레스토랑이다. 선언적이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이 문장 앞에서 괜스레 마음이 비장해진다. 그것은 ‘오요리’사람들을 만난 후의 후유증 같은 것이다. ‘함께 만들어 가는 꿈’을 보았을 때 가슴이 벅차오른 상태, 쉽게 꺼지지 않는 카푸치노 거품처럼 밀도 높은 희망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어때요?”
“재밌어요!”, “너무 좋아요!”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수상 소감이 아니다. 짧은 질문은 그들의 ‘일과 직업’에 대해, ‘직장’에 대해 던진 것이었고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이 재미있고 직장이 좋다는 사람들. 모두 ‘오요리의 셰프’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을 제외하면 그들 각자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마리아는 인도네시아가 모국이고 토이는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미찌코는 일본에서, 조세파는 필리핀에서 왔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각자의 모국에서 단 한 번도 요리사를 꿈꿔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꿈꾼 것은 행복한 가정이었고, 그 가정은 한국에 있었다. 결혼과 함께 한국을 선택한 다문화 가정의 이주여성들. 결혼이라는 삶의 ‘전환점’에서 조금 더 큰 ‘턴’을 그렸다는 점에서 조금 다를 뿐 이제 그들은 남편처럼, 자녀들처럼 ‘한국인’이다. 길게는 18년을 한국에 살았다. 그러나 인생에 전환점이 꼭 한 번만 있으라는 법이 있는가. 결혼이 그들에게 삶의 2막쯤 된다면 ‘오요리’는 그들에게 인생의 3막이다.


요리에서‘길’을 찾다, 오가니제이션 요리

‘오요리’의 탄생에도 ‘다문화 가정의 탄생’만큼이나 남다른 산고가 있었다.‘오가니제이션 요리(Organization YORI)’라는 이름의 사회적 기업은 처음부터 타고난 사명이 달랐다.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을 뜻한다.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영업활동의 목적이 이윤 추구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목적을 위한 재투자’에 있다. 노숙자에게 잡지 판매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창간된 영국의 주간 대중문화잡지 <빅 이슈(The Big Issue)>라든가 재활용품을 수거해 판매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 등은 잘 알려진 사회적 기업의 예가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성공적인 사례로 ‘오요리’가 있다.

오요리의 가계를 정리해 보자. 오요리는 영등포에 위치한 ‘하자 센터’에 둥지를 틀고 있다. 1999년에 개설된 하자 센터의 공식명칭은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로 연세대학교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직업•창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사회적 기업을 인큐베이팅하는 일도 활발하다. 그중 ‘오가니제이션 요리’는 2008년 10월 인증을 받았다. 한국인, 외국인, 전문가, 사회생활 초보자, 무경력자 등이 섞여 있는 32명의 직원들이 다문화 이주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 시설 퇴소 청소년, 여성 가장들과 요리를 통해 길을 찾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하모니와 케이터링까지!
인도네시아를 떠나 한국에 와서 아이들을 키우며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마리아도 하자 센터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제빵, 떡 만들기, 바리스타 등의 여러 쿠킹클래스를 차례로 이수한 그녀는 이제 인도네시아 메뉴를 개발하고 케이터링 요리를 담당하는 셰프가 됐다. 그녀처럼 오요리의 셰프가 되어 인생의 또 다른 지평으로 성큼 걸어나간 다문화 가정의 여성들이 현재 7명이다. 특급 호텔 출신인 박성배 총괄 셰프를 포함해 3명의 한국인 셰프가 함께 하면서 전문성과 맛의 균형감각을 지키고 있다.

오요리의 셰프들은 하자 센터 내에 유기농 원두커피와 갓 구운 빵을 제공하는 카페 ‘그리고’와 주 5일 점심식사를 판매하는 소규모 급식 식당 ‘하모니 식당’을 운영하면서 역량을 쌓아왔다.

특히 다문화 행사에서 주문이 많은 케이터링 사업은 오요리의 간판 사업이다. 한식과 양식, 티파티 다과상은 기본이고 단호박 디저트 꼴락(Kolak)이나 월남 쌈, 쌀국수 등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의 다문화요리를 맛볼 수 있는 케이터링이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 오요리의 셰프들은 나날이 바빠지고 있다.


진기한 각국의 요리들을 맛보다
홍대 앞에 오요리 레스토랑은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레스토랑을 전담하는 성낙훈 셰프와 박정민 셰프는 한국인이지만 오픈 전 1년 동안 오요리의 셰프들이 모여서 다문화 요리개발 워크숍을 통해 개발한 메뉴들이 드디어 세상에 공개됐다. 이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어머니가 된 이들에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추억의 요리들을 다시 기억해 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소중했다. 그리움과 자부심이 함께 들어간 타이식 해산물 샐러드, 해산물 라구, 말레이시아식 미고랭, 나가사키 짬뽕, 다다르굴릉, 담스키에발츠키 등 20여 가지 가정식 요리와 디저트가 엄선됐다.

볶음국수요리인 미고랭은 보통 간장 소스로 맛을 내지만 오요리에서는 매운 맛이 강한 말레이시아 남부 지방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청양고추로 맛을 냈다. 다다르굴릉(Dadar gulung)은 인도네시아에서 자라는 빤단(Pandan)이라는 식물로 생과 향을 내고, 팜슈가와 코코넛 슬라이스로 속을 채워 맛을 낸 인도네시아 디저트다.

가격대도 6,000~20,000원 사이여서 부담 없이 도전해 볼 수 있다. 음식은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를 가장 빨리 이해하는 방법 이다. 오요리의 손님들은 이국적인 음식에 눈을 뜨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외국인이 없는 오요리 레스토랑
러시아에서 온 타티아나
와 미얀마에서 온 하울룬씬이 홀 서빙을 책임지며 넓은 세상의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행여 자신의 모국을 여행했다는 손님들이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타티아나가 서툰 한국어로 작성한 11월 어느날의 일기를 옮겨 본다.
“저녁때 많이 바뻤어요. 하자 사람들이 초대 했어요. 그레서요 정신이 없어서요. 나한테 오늘은 서빙 처음 하는 날이에요. 실수도 초금 했어요. 주문 하실대 모듬 버섯 소고기 덮밥 못들었어요. ㅋ”
망설임, 설렘, 걱정, 도전, 시행착오, 그리고 성취감. 다문화가정의 여성이었기에 주어진 기회지만 같은 이유로 더 힘들었던 과정을 그들은 즐겁게 밟아가고 있다. 그러나 마음 불편한 점도 있다. 오요리 레스토랑이 오픈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진기한 메뉴보다 이 여성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더 쏟기도 했었다. 오요리의 사업팀장을 맡고 있는 박현정 씨는 “그들을 그냥 한국인으로 봐 달라”고 당부한다.
“초창기에는 함께 일할 분들을 찾아다녀야 했다고 들었어요. 워낙 사회적 편견이 많다 보니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하려는 분들이 많지 않았던 거죠. 그냥 평범한 한국인으로 살고 싶을 뿐인데 자꾸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생활에 대한 침해도 있으니까요.”

오요리의 셰프들은 출신과 상관없이 모두 한국인이며 실력을 갖추고 있는 에이스급 요리사다. 조세파는 가장 자신 있는 음식으로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한다는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꼽았을 정도다. 요리 전문 잡지에 다문화 요리를 소개하는 칼럼도 연재하고 있다. 계절에 맞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는 일은 이들의 중요한 일상이다. 이제 신문 뉴스의 사회면이 아니라 주말 섹션의 ‘맛집’ 란에 소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모여 앉으면 남편 흉을 보기도 하고 육아와 자녀 교육에 대한 수다를 그치지 않는 그들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주부들이다.

인도네시아를 떠나온 마리아도 하자 센터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제빵, 바리스타 등을 차례로 이수하고 이제 셰프가 됐다. 그녀처럼 오요리의 셰프가 된 다문화 가정 여성7명이다.




서로 닉네임 불러요
처음 접해보는 이국의 요리가 항상 맛있을 수 없듯이 오요리도 서로 입맛을 맞추기 위한 내부 진통이 없지 않다. 성장 배경과 처한 환경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통의 장벽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장애물이다. 사람을 키워내는 대가로 효율성을 양보해야 할 때도 있다. 일은 느리고 서툴며 실수투성이다. 견디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사람, 자신의 길을 찾아 독립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재료 자체의 맛을 고스란히 살려낸 요리가 최고의 맛을 내듯 오요리도 사람에게 시선을 맞춘다. 직함 없이 서로 닉네임을 부르는 것은 이들이 서로를 수평적으로 바라보려는 자연스러운 노력이자 하자 센터로부터 전해진 기업의 문화다.
3년 전부터 조금씩 돕다가 지난해 7월 아예 정식으로 합류한 박성배 총괄 셰프의 별명은‘다지기’다. 이름 그대로 케이터링과 레스토랑의 요리 부분을 책임지며 기초를 다져 온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같이 나누고 서로 도와주고, 이분들의 꿈이 하나씩 세워지는 것이 보이니까, 그게 기쁨이 되는 거죠.”

[사진: 류창현]


한국판 ‘피프틴’을 꿈꿔요
이제 오요리는 꿈을 인큐베이팅하는 현장이 됐다. 지금 이들이 함께 꾸는 꿈은 오요리 레스토랑이지만 마리아나 조세파는 기회가 오면 모국으로 돌아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꿈을 가지게 됐다. 요리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다.

오요리의 다음 창업 프로젝트는 한국판 ‘피프틴(Fifteen)’이다. 영국의 레스토랑 피프틴은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를 사회적인 명사의 반열에 올려놓은 곳이다. 그는 실직하거나 전과가 있는 소외 청소년들을 ‘요리사’로 훈련시켰고 레스토랑은 수개월씩 예약이 밀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현재 오요리는 3월부터 1년 과정으로 양육시설에서 퇴소해 자립이 필요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요리를 가르치는 ‘영셰프(OChef)’ 요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일 년 후면 이들 중에 훌륭한 셰프들이 탄생할 것이고 그들을 주축으로 오요리는 ‘청년 레스토랑’을 오픈할 계획이다. 그래서 오요리 레스토랑의 생존기, 혹은 성공담은 중요하다. 정부 지원에 기대지 않고 튼튼한 사회적 기업으로 살아남는 일에 여러 사람의 꿈이 걸려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요리의 음식을 통해 만나는 동안, 조직적인 관심이 필요한 사회의 구석구석, 막힌 모세혈관까지 피가 통하고 영양분이 공급되어 건강한 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요리로 엮는 세상은 언제나 풍족하고 따뜻하다.


+쉐프들이 추천하는 오요리의 다문화 요리
다다르굴릉 ‘빤단(pandan)’이라는 식물로 색과 향을 내고 코코넛 슬라이스로 속을 채운 달콤한 인도네시아 디저트. 가격 5,000원. 말레이시아식 미고랭 각종 채소를 넣고 굴 소스로 간한 매콤한 볶음 국수. 가격 11,000원. 타이식 해산물 샐러드 신선한 해산물과 채소 위에 곁들여진 피시 소스와 레몬드레싱이 일품이다. 가격 15,000원. 기시엘 녹말가루와 자몽으로 만든 러시아 음료. 6,000원.

+아시아 퓨전 비스트로 ‘오요리’ 찾아가는 길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09-10 2F
영업시간 화~일요일 11:30~24:00 (월요일 휴무)
가는 방법 지하철 2호선 합정역 5번 출구, 6호선 상수역 1번 출구
문의 02-332-5525,
www.orgyori.com, blog.naver.com/org_yori


|천소현(자유기고가)  사진|톤스튜디오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