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
내게도 올까?
솔직히 와인에 대한 첫 인상은 좋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아 집에 방치된 와인을 마시게 된 것. 잔뜩 기대하고 마셨지만 그 동안 혼자서 상상했던 달콤하고 향긋한 맛이 전혀 아니었다. 입안의 점막이 떫은 차를 마셨을 때처럼 쭉 마르고, 전혀 달콤하지도 않아 쉬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와인이란 냄새만 향긋하고 떨떠름한 무언가였구나,라고 멋대로 결정을 내린 후 한동안 와인을 마실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 그 분이 오셨도다!
그리고 몇 년 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 세미나가 있을 때였다. 와인과의 첫 만남이 떠올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냉큼 일행을 따라 나섰다. 보르도 지역의 와인에 대한 이론 수업 후, 몇 종류의 와인 시음이 있었다. 와인을 입 안에서 굴린 후 뱉어 내고, 생수로 입안을 헹구고 다음 와인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중 그 와인을 만나고야 만 것이다. 아, 그 순간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오, 그분이 오셨도다” 정도는 될 순간이었다. 똑같이 와인을 입안에서 굴리고 있던 중 어찌나 맛있던지 나도 모르게 꿀꺽 삼켜 버린 것이다. ‘아, 와인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와인을 사랑하는가 보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와인 붐, 와인 공부의 주역
<신의 물방울>은 바로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와인과의 특별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다. 읽다 보면 실제로 판매되는 와인이 마구 등장하고 있어 소개된 바로 그 와인이 무척 당기는 후유증에 시달리게 하는 책이다. 실제로, 일본이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와인 붐에 큰 공헌을 한 주인공이란다. 단, 와인초보자들의 경우 이 만화에 소개된 와인만이 최고의 와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 아쉽다. 와인에 대한 정보가 각 권마다 마지막 부분에 자세히 나와 있어서 이 책으로 와인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은 것 같다.
맥주회사 영업사원과 와인 천재
주인공 시즈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평론가인 아버지 칸자키 유타카에 대한 반발심으로 맥주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집에서 변호사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시가 20억 원이 넘는 와인 컬렉션을 남긴 칸자키 유타카가 죽기 전 천재 와인 평론가 토미네 잇세를 아들로 입양하고, 둘에게 와인 대결을 시켜 놓은 것. 1년 동안 12가지 와인의 이름과 빈티지(생산년도)를 알아 맞추고, ‘신의 물방울’이라 불릴 최고의 와인을 맞추는 이에게 그의 와인 컬렉션을 물려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시큰둥하던 시즈쿠에게도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82년산 샤토 무통 로쉴드로 아버지가 생전에 밀레의 만종 그림에 비유하곤 하던 와인이었다. 시즈쿠는 한 모금을 마시고 눈물을 흘린다. 82년 부르고뉴 지역의 포도밭에서 먹었던 포도 맛과 함께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느꼈던 것이다.
맛과 향으로 재료를 맞춰라
와인을 싫어하지만, 주인공 시즈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서 일명 ‘와인 영재교육’을 받은 ‘천재’였다. 바로 와인이 갖고 있는 맛과 향기의 원재료를 수도 없이 맛을 보았던 것. 어느새 냄새만 맡고도 원재료의 정체를 바로 알아 맞추는 천재적인 감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신의 사도’라 불리는 12가지 와인을 찾는 여정 동안 다른 이들을 ‘와인의 길’로 인도한다. <신의 물방울>은 횟수로는 4년 넘게 연재되고 있고 최근 17권이 나왔다. 참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서 15권에서 겨우 제4사도가 밝혀지는 식이다.
삶을 바꾸는 와인의 향기
<신의 물방울>에는 각 와인마다 잘 짜인 에피소드가 들어있어 읽는 내내 흥미진진함을 준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와인 덕에 되찾고, 결혼이 성사되고, 떠나간 연인을 떠올리고 등등 다양한 사연들이 펼쳐지고 있어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와인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으로 완성된 책이라서 그런지 읽으면서 자꾸 와인을 마시고 싶게 만든다. 이 만화를 읽는 모두가 ‘그 순간’의 와인을 만나게 되길 바래본다.
김치에는 샴페인 맵고 마늘 냄새와 젓갈 맛이 가득한 김치에 맞는 와인은 바로 화이트 포도 품종으로 만든 샴페인이다. 김치의 자극적인 맛을 샴페인의 톡 쏘는 버블이 부드럽게 감싸준다고 한다. 매콤한 음식을 즐겨 먹는 남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주의 토종 포도 품종 갈리오포를 중심으로 만든 레드 와인도 등장한다. 마트에 가보면 ‘신의 물방울에 나왔던 그 와인’이라는 라벨을 떡 하니 붙여 판매하고 있다.
불고기엔 레드 와인 비교적 다 잘 어울린다. 통 흑 후추를 듬뿍 넣었다면, 후추 향이 나는 쉬라 품종과 함께 먹어도 좋을 듯 하다.
ⓒTadashi Agi/Shu Okimoto 2005/Kodansha Ltd.
그림출처 학산문화사 발행 「신의 물방울」
글을 쓴 김은희는 뉴욕의 요리학교인 C.I.A를 졸업한 후, 프렌치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귀국하여 뉴욕의 추억과 맛집 기행을 담은 에세이집 <접시에 뉴욕을 담다>를 출간하였다. 요리 칼럼 쓰는 일을 좋아하며,<그린테이블 (www. gtable.net)>에서 레스토랑 컨설팅, 케이터링, 요리수업 등 요리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본 기사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2008년 겨울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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