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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식객 - 영화, 드라마를 뛰어넘는 원작의 감동

허영만의 <식객>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미각 여행기


필자는 서양요리사다. 늦은 나이에 요리가 좋아 무작정 요리 유학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프랑스 요리를 기본으로 한 서양요리를 배웠다. 그래서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 있는데 한국요리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무작정 서양요리를 배우러 갔다는 점이다. 정작 우리나라 음식은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것을 기억해서 만들어 내는 정도라 안타깝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지방색 가득한 향토 음식을 경험하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틈틈이 시장이나 마트, 또는 농장에 들러 철마다 바뀌는 음식재료를 눈여겨 보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이런 필자에게 <식객>은 궁금증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책이어서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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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건 음식도감이잖아!

<식객>은 동아일보에서 5년 넘게 연재되었던 만화로 벌써 100편이 넘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남도 음식으로 유명한 여수에서 나고 자란 허영만 화백이 음식에 대한 넘치는 애정으로 만든 한국적인 요리만화책이다. 상상력으로 쓰고 그린 만화가 아니라 한 편 한 편 발로 뛰어 얻은 수많은 정보와 사진들로 만들어진 제대로 된 요리만화이니 볼거리와 정보거리가 꽉 찼다. 만화라기보다는 음식도감 같은 느낌이랄까?
허영만 화백의 만화 속 분신인 성찬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최상의 먹을거리를 떼다 파는 차장수다. 요리하고 맛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찬은 음식재료도 그냥 사는 법이 없다. 재료마다 유명한 산지에 가서 좋은 것들로만 골라 온다. 만화의 제목인 식객(食客)은 ‘맛을 잘 아는 사람’이란 의미로 쓰였다. 모든 음식재료와 음식마다 제대로 알고 즐기는 성찬 본인이 바로 ‘식객’이다. 읽다 보면 어찌나 아는 것이 많고 부지런하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참견하고 또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지 만화에 동화된 필자는 이런 사람이 정말 내 주위에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식객을 읽는 우리는 부지런한 성찬을 따라 온갖 음식들과 제대로 된 음식재료들, 그리고 요리 장인들을 만나게 된다.

드라마도 영화도 담지 못한 그것
요즘 한창 방영 중인 드라마 <식객>은 인물 사이의 갈등에 더 많이 치중하는 듯하다. 물론 재미있게 보고 있지만, 만화 <식객>을 좀 더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심심한 감이 있다. 성찬과 봉주의 대결과 출생의 비밀까지 드라마를 위해 필요한 갈등 요소가 중심인 듯하다. 원작 만화의 가슴 찡한 내용을 다 싣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 만약 드라마로 <식객>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꼭 만화 <식객>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만화는 편마다 하나의 음식(요리, 음식재료, 음료 등등)과 그 음식에 관련된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성찬은 요리하는 것이 좋아서 한식당인 운암정에서 열심히 배우며 일하던 요리사였다. 운암정을 이끌어 가던 오숙수는 요리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남다른 성찬을 많이 지지했다. 운암정의 후계자로 당연히 아들인 봉주를 지목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오숙수는 성찬과 봉주에게 맛 대결에서 이기는 사람에게 후계자 자리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운암정 식구들은 놀라 수군대고 봉주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성찬을 노려 본다. 후계자 대결이 있던 날 아침 성찬은 홀연 사라진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열정이 부자지간을 갈라 놓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온갖 먹을거리를 사다 파는 차장수가 된다. 그러던 중 맛 칼럼리스트인 진수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요리 칼럼 연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진수성찬’은 환상의 복식조를 뽐내며 식객을 이끌어 간다. 벌써 단행본으로 20권, 에피소드는 100편이 넘는 얘기가 나왔다.

음식에 얽힌 가슴 뭉클한 사연들
매번 이 만화를 손에 들 때마다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곤 하는데, 일단 음식에 관한 얘기와 정보가 참으로 알차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1권 1편의 ‘어머니의 쌀’부터 직접 발로 뛰어 얻어낸 사실들로 가득하다. 회를 거듭할수록 ‘소고기 전쟁’이나 ‘국민주 탄생’ 같은 3개월에 걸쳐 완성된 대작이 나오면서 점점 더 전문화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만화를 보면서 공부가 되는 느낌이랄까?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궁금한 정보들이 가득 있어 지루하지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식객의 백미는 바로 탄탄한 줄거리에 있다. 다른 요리만화처럼 주인공이 최고의 요리사가 되려고 고군분투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메인 내용이 아니다.
음식에 관련된 가슴 뭉클한 사연들이 있어 만화 <식객>은 더욱 빛이 난다. 얻을 거리도 많지만, 편이 거듭할수록 식객에 나오는 사람들의 사연들에 다음 회를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일부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어떤 편은 허영만 화백의 지인이 등장하기도 하면서 왠지 내 주위에 성찬과 그들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면 좀 오버일까? 삶에 대한 진정성과 진솔함, 요리에 대한 장인정신, 사람 사이의 정 등 읊기만 해도 가슴 따뜻해지는 내용이 꿈틀거리고 있다.

전어구이로 사람 목숨을 살리고
만화 속에서 성찬은 눈앞의 작은 이윤을 따지지 않는다. 예전에 이웃들과 나눠 먹었던 것처럼 이웃 주민과 친하게 지내고 음식으로 정을 나눈다. 본인의 일에만 신경을 쓰는 현대 도시인과 다르게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돕는다. 거기에 좋은 음식재료를 감별할 수 있는 능력과 뛰어난 요리 솜씨로 많은 사람의 삶 속에 뛰어든다. 아니 스쳐 지나가면서 도움을 준다. 가난해서 외국에 입양되었던 사람이 어른이 되어 어릴 적 어머니가 주셨던 쫀득쫀득한 쌀을 찾으러 한국에 와서 우연히 성찬의 도움으로 가족들을 찾게 된다. 또 복권에 당첨된 남자가 돈을 들고 도망을 가서 죽기로 작정했을 때 성찬은 가을 별미인 전어구이로 그의 목숨을 살리는 얘기들은 음식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식객 속에는 또한 이상적인 장인의 모습들이 가득하다.
옛것이 사라지고 또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든 요즘 식객에 나오는 장인들은 삶이 고되고 힘들어도 그의 일과 음식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제대로 된 숯을 만드는 사람들, 장맛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 전통주를 이어가는 사람들 등 우리 주변의 장인들은 요리에 대해 참으로 진지하게 풀어나간 만화책인 <식객>은 장마다 넘쳐나는 정보로 가득하다. 거기에 음식과 이어진 사람들, 그들의 가슴 찡한 사연까지 어우러져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등장인물을 따라 울다 웃게 하는 책, 그러다가 한국 음식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책이다.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교과서보다 더 알찬 만화책이 바로 <식객>이다.

<식객>에서 배워요,
가정식 요리의 포인트 레시피!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는 처음 보는 요리들, 신기한 요리들이 많이 등장한다. 읽다 보면 침이 꼴깍 넘어가는데 쉽게 맛을 볼 수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식객>에 등장하는 요리 중 집에서 해먹기도 쉽고 친근한 가정식 요리 몇 가지를 골라 포인트가 되는 레시피를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해감이 중요한 바지락 칼국수
숙취 해소 등 간 기능 회복에 좋은 바지락. 바지락은 해감이 중요하다. 식객에 자세한 해감법이 나와 있는데, 하루나 이틀 정도 소쿠리에 넣고 소금물에 담가둔다. 펄만 가득 찬 바지락은 골라내 버려야 한다.

잔치 국수는 역시 뒤포리 육수!
무와 뒤포리(말린 밴댕이), 멸치로 시원하고 구수하게 육수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오래 끓이지 않고 30~40분 후에 멸치와 뒤포리는 건져 내야 비린내가 나는 걸 막을 수 있단다. 그다음 함께 먹을 채소를 넣고 육수를 완성한 후, 면을 삶아 찬물로 헹궈 국수 표면의 전분을 제거해 탄력 있는 면발을 만들어 육수에 넣고 매콤한 양념장을 얹어 먹는다.

신선한 생태를 구해라! 생태 맑은탕
신선한 생태를 구하는 것이 관건,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맑게 먹는 게 포인트다. 생태의 비늘을 긁어내고 토막 낸다. 곤이와 알, 내장도 따로 준비한다. 소금, 무, 콩나물을 넣고 한번 끓여 국물 맛을 우려 낸 후, 생태와 준비한 두부, 묵, 애호박, 미나리, 양파, 마늘, 파, 고추, 쑥갓을 넣고 끓인다.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추고, 겨자 푼  간장에 생태 살을 찍어 먹으면 좋다.

글을 쓴 김은희는  뉴욕의 요리학교인 C.I.A를 졸업한 후, 프렌치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귀국하여 뉴욕의 추억과 맛집 기행을 담은 에세이집 <접시에 뉴욕을 담다>를 출간하였다. 여러 출판물에 요리 칼럼 쓰는 일을 좋아하며,<그린테이블 (www. gtable.net)>에서 레스토랑 컨설팅, 케이터링, 요리수업 등 요리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본 기사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
2008년 가을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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