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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이 생선에 이런 맛이? 이런 뜻이?..<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이번 설에 조기, 아니 굴비 많이 드셨습니까? +_+

설 차례상 위에 놓인 생선을 놓고
이게 '조기'냐, '굴비'냐, 설왕설래 때아닌 논쟁에 불이 붙었지 말입니다.  

결국 '조기'와 '굴비' 논쟁은,
말린 '명태'를 '명태'라 부르지 않고 '북어'라 부르듯이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는 '굴비'라 불러 마땅하다,는
논리로 인해 말끔히 정리가 되고 말았지만요. @.@ 

아아- 때아닌 생선 논쟁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서른 종류의 해산물을 인생에 비유한 재미있는 책 한권 때문입니다. :)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 이 책을 소개해주신 한 출판편집자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책은 20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쓴 책이라고 하네요. +_+ (읭?) 

게다가 200년 전의 남자는 그 유명한 손암 정약전! 
아시죠? <자산어보> 라는 책을 쓴 정약전은 정약용의 형으로도 유명하죠. +,.+ 

흐흠, 철썩- 철썩- 파도가 밀려오는
아무도 없는 겨울바다를 앞에 두고 읽으면 두배로 좋을 책인듯 합니다.
게다가 항구에 횟집이 즐비하다면 더더욱- 추릅- (헛;)

문득 문득, 겨울바다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드실 때
읽어보면 좋을 책,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입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산다는 일이 쓸쓸하다고 느껴질 때

 ‘허탈감’과 ‘허기’가 짝패를 지어 찾아오는 계절, 겨울에 읽어두면 좋을 책이라는군요.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허기와 배고픔은 분명히 다르다. 배고픔은 위와 관련된 문제이지만 허기는 분명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가 차도 마음은 계속 헛헛한 것.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은 가시지 않는 이상한 마음과 몸의 상태. 그걸 우리는 ‘허기’라고 부른다. 사랑을 잃었을 때, 한 해가 저물 무렵 산다는 일이 문득 쓸쓸하다고 느껴질 때, 앞자리 나이수가 바뀌면서 인생을 새삼 돌이켜 볼 때 주로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 나의 경우엔.
여러분은 어떠신지. ‘겁나게’ 열심히 산 것은 아니지만 나름 성실하게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하더라도 겨울이 되면 이상한 허탈감이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허탈감은 또 짝패처럼 ‘허기’라는 증세를 몰고 온다.


풍상 겪은 바다 사나이의 글

그럴 때 이 책을 만났다. ‘허기’와 ‘바다’가 큼직한 글자로 다가오는 이 책. 제목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 바다 생선의 비늘이 파닥파닥 눈부신 이 책은 한창훈이라는 바다 사나이가 지었다. 잠깐 프로필을 엿봤다. 제목은 그렇다 치고 이 사람이 과연 내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일단, 거문도에서 태어났다(섬 태생이라니, 바다를 아시는 분이군). 일곱 살에 낚시를 시작했고 아홉 살 때는 해녀였던 외할머니에게서 잠수하는 법을 배웠다(오, 바다를 배우셨네). 사십 전에는 기구할 거라는 사주팔자가 대략 들어맞는 삶을 살았다. 디제이, 트럭운전사, 이런저런 배의 선원, 막노동꾼, 포장마차 사장 등(아, 풍상을 겪을 만큼 겪었으니 허기를 논할만한 분이로다). 4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원고 쓰고 이웃과 뒤섞이고 낚시와 채집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돌아온 탕아처럼 바다로 귀향하셨으니 위로라는 게 뭔지 아시겠는 걸).


이 생선에 이런 맛이?

이 책은 엄격히 말하면 두 남자가 쓴 책이다. 아니 200년 전의 한 남자의 바다 생물에 관한 기록을 두고 200년 후의 남자가 자신의 바다 생활을 보탠 책이다. 200년 전의 남자는 바로 손암 정약전이다. 정약용의 형이기도 한 그는 1814년 흑산도로 귀양살이를 가게 되었는데 귀양이라는 고립과 고독을 흑산도에 사는 어류들의 탐구와 기록으로 <자산어보>라는 책을 남겼다. 그걸 한창훈이라는 200년 후의 남자가 자신의 바다 인생으로 녹여냈으니 과연 인생과 허기를 논할 만할 책인 것이다.
이 책에는 총 서른 종류의 해산물(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정겨운 바다 생물들)이 등장한다. 제목도 너무 재미있다. ‘내가 왜 육지로 시집왔을까 탄식하는 맛, 갈치(얼마나 맛있으면…)’,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먹는 맛, 군소’, ‘인생 안 풀릴 때 멀리 보고 먹는 맛, 붕장어’, ‘헤어진 사랑보다 더 생각나는 맛, 노래미’, ‘나 먹었다 자랑하는 맛, 농어’, ‘세 식구 머리 맞대고 꼬리뼈까지 쭉쭉 빨아 먹는 맛, 우럭’ 등등.
읽고 있으면 ‘이 생선에 이런 뜻이? 이런 맛이?’ 하고 신기해하며 놀라다가 마지막에는 당장 여수나 거문도 작은 포구의 횟집이나 포장마차로 달려가고픈 욕구가 스물스물 올라오면서 위액이 분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만다.


의심 많은 숭어, 눈치 보는 문어

그럼, 생선들의 면면을 좀 훔쳐보자.
저녁 밥상에 고등어만큼 자주 오르는 갈치. 이 놈들은 서서 헤엄을 친단다. 꼬리지느러미가 없는 탓에 등지느러미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다니 바닷속에서 만화 속 캐릭터처럼 꼿꼿이 등을 세우고 헤엄치는 갈치의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정약전은 갈치를 ‘무린어(無鱗魚)’라고 기록하고 있다는데, 비늘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갈치에는 비늘이 없었다. 특유의 은색 가루가 바로 비늘. 아, 이 대목에선 갑자기 반짝반짝 초라한 밥상을 빛내는 잘 구워진 갈치 한 토막이 먹고 싶다.
‘의심이 많고 민첩할 뿐만 아니라 헤엄을 잘 치고 뛰기도 잘한다. 그물 속에 들었다 해도 곧잘 뛰쳐나간다. … 맛이 좋고 깊어서 생선 중에 첫째로 꼽힌다’ <자산어보>의 숭어 편은 읽다 보면 웃음이 절로 인다. 의심이 많은 데다 잘 뛰는 숭어라니. 생선에 대한 묘사로 보기에는 참으로 정겹다. 손암 선생의 말처럼 숭어는 바닷가 사람들이 첫째로 치는 맛이란다. 아무튼 그 맛이 어느 정도냐 하면 ‘숭어 앉았다 떠난 자리 펄만 먹어도 달다’는 말이 있을 정도란다.
말려서 심심할 때 잘근잘근 씹어 먹는 문어는 또 어떤가. 문어는 똑똑하기로 유명하단다. 배에서 잡아 갑판에 던져놓으면 슬금슬금 배수관 쪽으로 기어가는데 사람 눈치를 본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란다. 사람 눈치를 보는 문어라니. 일반 생선과는 몹시 다른 둥근 머리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아무튼 이 녀석은 둥그런 머리통만큼이나 어부들 사이에서는 똑똑하기로 유명한데 ‘집’과 관련해서는 헛똑똑이가 되어버린단다. 이유인즉슨, 문어라는 놈은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해서 옴팍한 것만 있으면 들어앉기 때문에 낚시를 하다보면 신발이나 플라스틱 그릇 같은 곳에 걸려 올라온다니, 참으로 헛똑똑이 문어다. 그래서 예전에는 붉은 색을 칠한 항아리로 문어를 잡았다고 한다.
문어의 독특한 버릇 중 또 하나는 붉은색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통이 붉은 색인 이유다. 이 놈이 얼마나 붉은 색을 좋아하냐 하면 문어 키우는 양식장에 가서 붉은 천만 쳐 놓아도 녀석이 스스로 슬금슬금 다가온다니 바다속 생물의 습성이 귀엽고도 정이 간다.


사람 이야기로 위로받다

이렇게 서른 종의 생선들 얘기를 겨울 밤 군밤 까먹듯이 아껴서 하나하나 읽다 보면 어느새 허기가 좀 면해지는 기분이다. 거기다가 육지로 시집와서 그렇게 좋아하는 갈치를 못 먹게 된 여인네의 탄식 소리, 10년 만에 만난 옛 연인과 마주 앉아 맛있는 노래미를 앞에 두고도 젓가락 한 번 못 대 본 은미 엄마 얘기, 사랑에 빠진 연인과 빗속 포장마차 아래에서 먹었던 찰지고 하얀 병어회를 혼자 씹어야 하는 51번 포장마차의 사연들이 바다 생명들의 이야기와 잘 버무려지면서, (너무 뻔한 감정의 진화이지만)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하는 아주 상투적이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뜨듯해지는 위로의 감정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명확한 이유 없이 쓸쓸해진 감정은 또 아주 시시콜콜한 일들로 쉽게 위로를 받게 된다.


맺힌 것이 있다면 바다로 가자

겨울이 시작되고 한 해가 저물면 그렇게 우리는 특별한 이유 없이 쓸쓸해지고 또 아주 작은 위로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바다’에 간다고 해서 여태껏 답이 없었던 인생의 문제가 풀리고 무엇으로도 채워질 것 같지 않은 허기가 가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살아나간다는 것은 이런저런 기억과 자그맣게 나누는 마음의 온기들로 또 꾸려가게 돼있는 것이다. 산은 맺히게 해주지만 바다는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언가 맺혀있는 것이 있다면 바다로 가보자. 저 아름다운 생명들이 꼬물거리고 있는 곳으로.

글을 쓴 김은주는 북적거리는 여름바다는 질색이지만 쓸쓸한 겨울바다는 고향처럼 느낀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고질병인 쓸쓸함과 허무함을 겨울바다에서 치료받고 온다. <디자인하우스>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