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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가마솥, 전통이 살아 숨쉬는 철그릇의 명인을 찾아서...<안성주물> 탐방!

드넓게 펼쳐진 황금들녘
그리고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

상상만해도 뭔가 가슴이 따뜻해지는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요.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굴뚝 연기를 만들어 내던
가마솥과 아궁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하네요.
가마솥이 있던 자리를 전기밥솥과 각종 냄비가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4대째 가업을 이어 가마솥을 만들어온 명인이 계십니다.
바로 경기도 무형문화재 45호 주물장 김종훈 옹과 안성주물의 대표 김성태 씨인데요.

지금도 가마솥을 만들기 위해 아궁이 앞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계신다고 하네요.

명인이 만드는 가마솥과 그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구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 실린
가마솥에 혼을 담는 그들만의 뜨거운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안성주물 전수자 김성태 대표 
 숨 쉬는 철그릇에 혼(魂)을 담다

 몇 년 전만 해도, 가마솥은 아궁이와 함께 사라진 줄 알았다. 민속촌에만 있으리라 생각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전기밥솥도 따라갈 수가 없다며, 가마솥의 누룽지를 주창하는 밥맛 지상주의
 자들이 가마솥의 부활을 모의하기 전까지 말이다. 4대째 가업을 이어 내려오는 안성주물의 대
 표 김성태 씨와 경기도 무형 문화재 45호 주물장 김종훈 옹을 만났다.



숨 쉬는 철그릇
가마솥 밥을 먹으며 자란 세대는 이미 사라져가고 있다. 전기밥솥의 수명도 길어야 10년이다. 안성주물은 한번 사면 30년 이상 간다는 가마솥 품질 때문에 역설적으로 단골이 없다고 한다.아이러니였다. “밥이든 국이든 가마솥에 음식을 하면 맛있다는 얘기는 많이들 알고 계시는데요. 하지만, 값싼 중국산을 사는 분들이 아직도 많아요. 그런 제품은 1~2년 쓰면 벌써 수명이 다하는 거예요. 싼 게 아닌 거죠. 저희요? 저희는 단골이 없어요. 한번 사면 최소 30년은 보장되니까요.”사실 매일 사용해도 가마솥에 구멍이 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구분을 해야할까?

“웬걸요. 안 좋은 가마솥 잘못 쓰시면 솥 바닥이 뚫려요. 쇠를 녹인 쇳물을 틀에 부으면 두께가 고르게 퍼지는 경우가 없거든요. 솔직히 우리들은 쇳물을 부어 식히는 순간 색의 차이를 보면 압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모르죠. 사서 써도 당장은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제 자존심이 그걸 팔 수가 없어요. 제가 알거든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아는데 누굴 속입니까.” 안성주물에서 제작한 120년 전통의 무쇠솥 가마, 냄비, 주물 철판 등은 장인이 만든 명품이다. 해외 명품은 고가에 판매된다. 그러나 안성주물의 제품들이 공과 품에 비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지는 의문이다. 좀 더 예쁘게 만들어 백화점에서 비싸게 파는 건 어떨까.
“해외 유명 제품들처럼 주방에서 보기 좋게 코팅을 하면요, 이미 그릇이 숨을 못 쉬어요. 철기지만 옹기 같은 거예요. 그릇이 숨을 쉬어야 음식도 숨을 쉬는 거예요. 그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숨을 쉬어야 맛도 나는 거고요.”
철로 만든 주물판이나 가마솥이 숨을 쉰다는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철이지만 셀 조직 사이로 다 숨을 쉬죠. 공기가 들고 난다고 할까요? 기름으로 요리를 하면, 그 기름들이 셀 조직 사이로 스며들면서 그릇을 길들이는 거예요. 코팅을 하거나 색을 입히는 등 화학처리를 하는 순간 그 그릇은 죽는 거죠. 예쁘게 만들어 더 잘 팔기 위해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유기농 식자재를 쓰더라도, 화학코팅 처리된 조리도구 위에서 요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깨달음. 하지만, 그렇게까지 수고로움을 감수하기엔 현대인들은 할 일이 너무 많다. 게다가 김성태 대표는 철기도 숨을 쉬기에, 생명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가마솥 하나를 들어 보인다. “만들 때, 쇳물이 고르게 퍼지지 않으면 이렇게 얇은 부분이 생겨요. 식히고 나면 육안으로는 잘 모르죠. 소비자들은 더더욱 모르죠. 이런 걸 팔면, 이 부분이 약하니까 금방 마모가 되고 구멍이 뚫리는 거예요. 돈 벌 생각이면 이 정도 흠은 사실 시장에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팔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그렇게 못 해요. 저희 할아버지, 아버지로 이어져 온 기술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거니까요.” 실제로 공장 한구석에는, 명품이 되지 못한 제품들이 쌓여 있었다. 불가마에 구운 자기와 달라 깨뜨리지 못했을 뿐.


1 4대째 가업을 이어 내려오는 안성주물의 작업장. 쇳물을 저곳에서 녹여 그 옆 공장으로 가져가 주물에 붓는다. 2 안성주물 전수자 김성태 대표는 해외 유명 제품처럼 코팅을 하면 그릇이 숨을 못쉰다고, 그러면 음식도 숨을 못 쉰다고 믿는다. 그래서 절대 가마솥에 그런 예쁘장한 코팅 같은 건 하지 않는다.

3, 4, 5, 6 촬영을 위해 찾아간 날은 한 여름이었고, 바로 쇳물을 붓는 날이었다. 안성주물 공장 안은 뜨거운 쇳물에서 나오는 거친 열기와 뜨거운 김, 연륜으로 다져진 장인들의 묵묵한 움직임으로 더 후끈해진 느낌이었다.


3대째 가업은 4대로 이어지고 안성주물의 역사는 191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김성태 대표의 증조부 김대선 씨가 유기(놋쇠)로 유명한 안성으로 이사와 유기공장에서 놋쇠 다루는 일을 하다 독립,가마솥을 만들면서부터다. 뒤를 이어 김성태 대표의 조부 김순성 씨(1970년 작고)가 1924년 안성시 봉산동 물문거리에 132㎡ 규모의 공장을 세워 15명의 직원과 함께 월 20여 개의 가마솥을 만들면서 기반을 다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가마솥 원재료인 쇠를 배급받았어요. 해방 후에는 고철을 구입해서 솥을 만들었고, 지금은 포스코에서 선철을 구입해 만들고 있습니다.” 김성태 대표의 설명이다. 이렇듯 4대째 이어온 가업은 한국 ‘철’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가업이 끊길 위기는 없었을까? “아버지가 서울대 농대 전신인 수원농대를 다니실 때, 할아버지께서 사업에 위기를 맞으셨어요. 기반을 다 닦아놓은 상태에서 친구에게 공장을 맡겼는데, 그분이 숙련공을 빼내 독립하자 인력이 없어 공장 문을 닫을 상황이었죠. 그때 아버지가 계속 학업을 이어갔다면, 편하게 교수의 길로 나가실 수도 있었는데 그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 가업을 이으셨다고 합니다.” 김종훈 옹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45호로 지정되어 안성주물의 맥을 차남 김성태 씨에게 이은 상태다. 안성주물에 닥친 두 번째 위기는 사회의 변화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가마솥도 물건이 없어 팔기 어려울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하지만,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양은냄비가 등장하고 새마을 운동으로 입식 부엌이 들어서는 등 가옥 형태가 변화하면서 수요가 줄었다. 그때 김종훈 옹은 가마솥 제작 외에 연탄난로와 새마을 보일러를 만들었다. “석유가 귀할 때여서 연탄난로와 보일러가 불티나게 팔렸죠.” 당시 안성주물은 직원이 50명에 이를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것. 그럼 김성태 대표는 언제부터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저 어릴 때, 대여섯 살부터 어머니 심부름으로 아버지 공장에 드나들었죠. 그때는 번창할 때라, 당시에는 보통 서민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자전거를 아버지가 사주셨어요. 그걸 타고 심부름 다니는 맛에 오간 거죠. 늘 보고, 갖고 놀고, 그러면서 배웠나 봐요. 그러다가 잠시 전공을 살려 줄기세포 관련 연구를 했었는데 결국 여기에 있게 되었네요.”

7, 8 가마솥을 주물에서 꺼내오면 그게 다가 아니다. 뜨거운 열을 계속 가해‘길을 들여야’가마솥은 비로소 칠흑 같은 검정으로 길이 든다.

9, 13 경기도 무형문화재 45호인 아버지 김종훈 옹과 나란히. “쇳물을 다루는 게 위험하니 다른 일을 하는게 어떠냐”던 아버지지만 지금은 4대째 가업을 잇는 김성태 씨를 묵묵히 지켜주고 계신다. 10, 11 한국‘철’의 역사와 함께 해온 안성주물.


솥 하나도 부끄럽지 않도록 김성태 대표는 아버지로부터 쇳물을 다루는 것은 위험하니 다른 일을 하는 게 어떠냐는 충고를 들었지만, 3대를 이어온 가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맞춰 미니 가마솥을 만들고, 캠핑을 즐기는 캠퍼들이 무쇠 프라이팬이나 조리도구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맞춤 주문 제작도 하고 있다. 120년간 축적된 기술. 이 업을 이을 사람이 없으면 120년간 축적된 기술력과 자부심도 사라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이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긴 팔에는 쇳물에 데인 흉터가 여러 군데 남아있다. “중국산이 범람하면서 가마솥 판매량이 급감하긴 했어요. 특히 중국산은 원산지 표시가 없어 소비자가 우리 제품으로 혼동하기도 해요. 지름 62cm짜리 가마솥의 경우 중국산의 무게는 훨씬 가볍고 가격도 우리 제품의 1/6에 불과합니다. 한 고객이 전화해서 1~2년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솥 바닥이 뚫렸다고 항의를 하시더라고요. 어디서 사셨냐고 하니까 시장에서 사셨대요. 저희는 도매로 팔지 않아요. 인터넷과 공장에서만 팔거든요. 누군가 안성주물을 사칭한 것이죠.”하지만 김성태 대표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음식을 담아 요리하는 것이잖아요. 특히나 가마솥은 오래 끓이는 음식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요. 음식에 나쁜 물질이 용해되면 안 되죠. 그래서 음식과 관련된 조리도구도 제작에 관련하여 모두 식약청에서 성분 검사와 허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중국산이나 OEM으로 만들어진 해외 제품들이 얼마나 안전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실제로 안성주물 제품을 사용하는 필자는, 몇 차례 주문 문의를 하며 김성태 대표에게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주 단순하고도 소박하지만, 정말 중요하고도 귀한 것이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은 정직을 바탕으로 세워진다는 것. 수차례 전화로 문의했지만, 그는 귀찮은 내색이 없었다.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제품 하나하나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 과연 4대에 이른 장인의 자부심이다. 쉽게 이를 수 없는 경지이기도 하고.

12 김성태 대표의 어린 딸이 공장 바닥에 그려놓은 가마솥. 시멘트가 굳기 전에 장난을 쳤단다.


솥으로 이어진 인연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이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생각했다. 요리에 관련한 유명인들을 알게 되셨나? 아니면 부자들에게 환심을 샀을까? 그만큼 뿌듯한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부끄러워졌다. 진심을 주고받는 데 사회적 지위와 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프신 분이었어요. 말기 암이신데, 음식을 아예 못 드시는 상황에서 예전에 먹었던 가마솥 밥이 너무 먹고 싶으시다고. 방송을 보시고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그래서 보내 드렸는데, 아주 맛있게 잘 먹고 있다고 제주도에서 감귤을 몇 박스 보내셨어요. 저흰 돈 받고 판 건데 뭘 이런 걸 다 보내셨냐고. 그리고 저희도 또 마음이 그게 아니잖아요. 받기만 할 수가 없어서, 아프시니까 배즙이나 무농약 농산물들을 좀 해 보냈어요. 그랬더니 또 잘 먹었다고 뭔가를 보내시고. 저희도 또 답례로 보내고 그러다 보니 인연이 되고 그러더라고요.” 전국 각지, 그들의 노고를 고맙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아직도 제대로 된 가마솥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소비자들이 있다. “한번은 또 다른 분이 친구가 암인데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다면서 주문을 하셨더군요. 그 마음이, 그 우정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저희가 유기농산물을 같이 보냈죠. 환자 드시라고요. 그랬더니 또 필요하지도 않으신 것 같은데, 저희 제품을 여러 개 사서 주변 분들에게 선물로 보내주시더군요.”

음식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장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소비자들이 안성주물을 춤추게 한다. 1년 사시사철,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용광로 속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는 고된 노동을 기꺼이 하게 만든다.
인터뷰를 마치며 생각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전통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공허하다. 좋은 것이니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고, 질 떨어지는 것이 질 떨어지는 것인 줄 모르는 이들의 가난한 안목이 안타까울 뿐이다.


 
 글을 쓴 이종혜는 가뭄에 콩 나듯 잡지에 글을 쓴다. 열심히 일한 적도 없으면서 떠날 궁리만하는
 그녀는 한심해보이지 않기 위해 날마다 책을 읽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사진| 톤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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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풀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