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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Life

과연 주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느 젊은 요리사의 하루>

드라마 <파스타>를 통해
이탈리아 음식과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신 분 많으시죠?

워낙 드라마 속 주방의 이야기가 잘 그려진 탓도 있겠지만
아마 우리가 잘 몰랐던 그곳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가지 않았나 싶은데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 담는 큰 그릇>의 필자 한분이 
월드컵이 열리는 6월의 어느 하루,
종일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손을 도우며 그곳의 일상을 밀착취재해주셨답니다.

그 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일들과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그려낸 기사가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담는큰그릇>에 게재되어
풀사이 가족분들께 소개해드립니다.

 
월드컵보다 드라마보다 치열한,
어느 젊은 요리사의 하루

드라마 <파스타>가 인기를 끄는 등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의 이름을 외우는 미식가는 많지만, 정작 우리 땅에서 땀 흘리며 요리하는 요리사의 고민과 현실은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자담큰>이 독자의 눈을 대신해 논현동 한 레스토랑의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선규


“오더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한국-그리스 전이 펼쳐지는 6월 12일. 홀을 담당한 안지현 씨가 주문서를 주방에 전했다. 정현진 요리사는 위생모를 잠깐 매만지며 주문지를 확인한다. ‘Alfredo 1, Pescatora 1’ (크림소스 해산물 파스타, 토마토소스 해산물 파스타) 축구는 저녁 8시 30분에 시작한다.
월드컵이 벌어진다고 사람들이 하루 동안 밥을 굶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서울 논현동의 레스토랑 ‘올리브 앤 팬트리(Olive & Pantry)’의 적지 않은 단골들도 이곳을 찾는다는 얘기다. 오전 11시 58분 주문을 확인한 정 요리사가 프라이팬을 집어든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켰다. 가스분출구가 이중이다. 가정용 가스레인지의 세배 넘는 불꽃이 솟는다. 성인 2명이 지나다닐 정도의 폭인 주방은 금세 열기로 가득 찼다. 밖에선 비가 내렸지만, 주방은 뜨거웠다. 칙! 올리브유와 마늘을 볶는다.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프라이팬을 잡았다. 불꽃이 거대한 벙어리장갑처럼, 정 요리사의 손목까지 덮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능숙하게 가스레인지 밑에 달린 서랍식 냉장고를 열었다. 생물 조개와 홍합을 꺼냈다. 치이익! 올리브유가 달궈진 프라이팬에 조개와 홍합을 넣자마자 짭짤한 바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파스타가 익자 정 요리사는 긴 젓가락을 집었다. 왼손에 프라이팬을 집어들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파스타에 푹 찌른 뒤 손목을 두 번 돌려 접시에 담았다. 그렇게 담아야 면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주방 오른쪽 피자 오븐 위에서 미리 데운 흰 접시 위에 파스타를 담았다.



오픈 키친이 유행이다.
손님들은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화염과 연기가 오르는 모습을 자리에 앉아 다 본다. 기자 역시 ‘다 본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시야의 폭과 깊이라는 측면에서, 홀과 주방은 학생 책상과 선생님 교탁의 그것과 같다. 주방에 서서 홀을 보면 모든 게 보였다. 손님의 표정과 몸짓 그 모두가. 정 요리사는 자신이 만든 파스타가 무사히 전달되는 모습을 보자마자 다시 프라이팬을 집어 들었다. 요리 직후 설거지는 불문율이다. 주문이 폭주하지 않는 한, 요리를 끝내자마자 요리사는 자신의 ‘무기’를 닦는다.
“저 시키실 일 있으면 시키세요. 취재만 하는 게 아니라 주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려고 왔으니까요.”
“그래요? …, 그럼 오이 좀 씻어주세요.”
정 요리사는 과묵했지만, 수줍은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슬며시 웃으며 곧바로 일을 시켰다.나는 한 상자 가득한 오이를 하나하나 흐르는 물에 씻었다. 내가 씻은 오이를 곧바로 정 요리사가 썰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심재성 요리사가 허리까지 오는 거대한 냄비를 낑낑거리며 날랐다. 통 속에는 계피와 월계수 잎이 들어 있다. 조금 전까지 팔팔 끓인 통을 식혀야 한다. “형, 식초 한 통 다 넣으면 되죠?” 정 요리사 뒤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심재성 요리사가 물었다.



그는‘막내’다.

정 요리사와 오너 셰프인 김신 주방장이 ‘사수’다. 미국 월간지 <뉴요커> 편집장을 하다 3년간 주방에서 요리사 체험을 한 기자 빌 버포드는 주방이라는 공간을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욕설과 명령이 난무하는 마초들의 공간이라는 뜻이다.
불과 칼을 다루니 어쩔 수 없는 걸까? 심재성 요리사도 테스토스테론을 느낄까? 그는 다 썬 오이와 당근, 양배추를 큰 통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만 한 깔때기를 썰린 오이 사이에 푹 찔러 넣었다. 깔때기로 미리 준비한 절임 물을 천천히 부었다. 손님들은 그저 “피클 조금만 더 주세요”라고 말한다. ‘조금만 더’ 피클을 담그는 일은 이처럼 복잡하다. 
“재성아, 라즈베리 빨리빨리 준비하자!” 어느새 주방에 김신 주방장이 섰다. 일순 주방에 테스토스테론이 흐르기 시작한다. 주방은 다시 과묵해졌다. 침묵을 깨려 나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제가 뭐 또 할까요? 오이 잘 씻죠?” 다행히 정 요리사는 또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것 좀 도와주세요” 주방 문 앞에 작은 의자 두 개를 놓았다. 그 사이에 거대한 스티로폼 상자가 있었다.



거대한 상자의 뚜껑을 열자 작은 조약돌처럼 생긴 홍합이 가득했다.

올리브 앤 팬트리의 식재료는 매일 남은 양이 체크된다. 정 요리사의 일이다. 야채, 고기류와 나머지 기타 식재료 등 크게 세가지로 분류한다. 모두 직접 통화하고 오래도록 거래한 단골들이다. 믿을 수 있는 거래처가 아니면 공급받지 않는다. 홍합은 마산에 사는 김신 요리사의 지인으로부터 직접 공급받는다. “현진아, 홍합 알이 솔찮이 괜찮다.” 김신 요리사가 한 줌 가득 홍합을 쥐고 냄새를 맡았다. 이어 작은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불을 켜고 2분쯤 지난 뒤 홍합 한 알을 팬에 올렸다. 아무것도 간하지 않은 홍합의 냄새를 맡고 맛을 봤다. 제대로 된 녀석이 왔는지 체크하는 이 과정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홍합 분류 작업이 시작됐다.
“알이 너무 작거나 깨진 건 이쪽 바구니에 넣으시고요, 쓸만한 건 이 통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홍합을 쥐고 냄새를 맡았다. 홍합 안에서 바닷물이 떨어져 검지와 약지를 부드럽게 훑어 내리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홍합을 쥔 손에 코를 갖다대자 두고 온 고향 바다에서 아침 9시에 피어나는 냄새가 피어 올랐다. 짭짤하되, 서늘하고 청량한 풍미가 코를 찔렀다. 신선했다. 하나하나 홍합을 고르는 나를 보며 김신 요리사는 툭, 던지듯 말했다. “홍합은 정성이라니까요.”



식재료를 다듬는 일 가운데 가장 귀찮은 게 홍합을 고르는 일이다.

일주일에 1~2회 홍합을 받는다. 오늘이 그날이다. 홍합 한 상자 가운데 실제로 손님들에게 제공할 홍합은 1/3이 채 안됐다. 알이 작거나 껍질이 깨진 ‘불량’ 홍합은 ‘스톡(국물)’을 내는 데 사용된다. 홍합을 골라내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뻐근한 허리 근육을 두드리며 시계를 봤다. 오후 2시.
다시 몇 명의 손님이 들이닥쳤고, 그때마다 정 요리사는 불꽃을 장갑처럼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양손에서 ‘플람베(프라이팬에 술을 끼얹어 불꽃을 피워 향을 살리는 요리 기법)’를 했다. 김신 요리사는 플람베를 할 때 해산물의 경우 꼬냑을 쓰고 향을 살릴 땐 진을 썼다. 물론, 어떤 술로 플람베를 하든, 요리사가 땀을 뻘뻘 흘리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두 청년은 잠시 눈을 붙였다.

기자는 취재 수첩에 ‘오후 4시 45분 요리를 마치고 잠시 가게 문을 닫는 시간, 두 요리사는 의자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인다’라고 썼다. 꿈을 꿀까? 어떤 꿈을 꿀까? 한국 축구 대표팀과 함께 잔디밭 위를 내달리는 꿈? 
“3번 테이블 주문이요!” 주문이 몰리는 저녁 6시 30분, 그때부터 주방은 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쉴새 없이 몰려드는 주문 외침과 그와 지극히 대조적으로 요리사들은 점점 과묵해졌으며, 손은 바빠졌다. 열기는 뜨거웠고 기름이 튀었다. 정현진 요리사는 프라이팬 4개를 동시에 올렸다. 오른손에 쥔 프라이팬에서 플람베를 하다 새우를 해동하고 닭고기를 썰었으며, 그러다 다시 프라이팬으로 돌아가 플람베를 한 뒤 불을 줄이고 플람베를 한 프라이팬 위에 홍합 스톡을 한 국자 놓은 뒤 스틸 접시로 프라이팬을 덮고 약불로 익혔다. 김신 요리사는 그 와중에 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홍합 가운데 열리지 않고 닫혀있는 홍합을 일일이 손으로 열었다. “홍합이 싱싱하면 안 열려요.”
“와!” 저녁 8시가 넘어 이정수 선수가 첫 골을 넣은 순간에도 올리브 앤 팬트리의 주방은 아직 뜨거웠다. 대형 냉장고, 그라인더, 기름 튀김통, 전자레인지, 피자 오븐, 커피 드립 머신, 에스프레소 머신, 와플 머신, 브로일러(위에서도 열이 나오는 직화구이 기구) 등 주방을 빼곡히 채운 9개의 주방기기 모두 여전히 열을 토했다.
“접시는 따로 놓지 말고 겹쳐놔, 식으니까.” 정현진 요리사가 심재성 요리사에게 말했다. 담은 음식이 식지 않도록 접시도 미리 데워놓는다. 예약 손님이 늦어지면 접시를 겹쳐 놓는다. 그래야 접시가 식지 않는다.



전반전이 끝나가는 저녁 9시, 마지막 손님이 나갔다.

김신 요리사 등 6명이 작은 휴대전화로 축구중계를 틀었다. 그들과 함께 기자는 작은 휴대전화 화면으로 축구를 봤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월드컵 첫날도 올리브 앤 팬트리의 요리사들은 불을 켜고 땀을 흘렸다. 시인 발레리는 “시는 영혼의 음식이다. 그러나 먹을수록 배고파진다. 그것이 시의 위대함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기자는 자신의 글이 정현진 요리사의 요리보다 위대하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날도 올리브 앤 팬트리를 찾은 사람들은 파스타를 먹고 배불렀고 즐거워했다. 기자는 자신의 글이 단 한 사람이라도 배부르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 요리사의 파스타처럼.


일러스트레이션1 김선규  취재협조1올리브 앤 팬트리 02-549-4698
1본 컨텐츠는 풀무원 사외보 <자연을 담는 큰 그릇>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글을 쓴 고나무가 좋아하는 것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기, 맥주, 옷 잘 입은 사람 훔쳐보기. 증오하는 것은 시키는 대로 따르기, 옷 못 입는다는 이유로 사람 무시하는 사람. <한겨레> 주말섹션 esc에서 음식담당기자를 할 땐‘음식’보다 ‘음식 문화’를 쓰려했고, 정치부로 옮긴 지금은 ‘정치’보다 ‘정치인 또는 정치적인 것’을 쓰고자 한다.

 

posted by 풀반장